허공 외 1편 / 이진명

[창작시]     허공 – 소파     이진명            네가 소파구나    네가 소파라는 거구나    허공에서는    태어나지 못할 게 없다    창조되지 못할 게 없다    허공은    좋이 6인용은 될 기역자 소파를 척 만들어내고    말도 안 되는 장소에다 말도 안 되게    육중한 그 커다란 기역자를 척 앉혀야 한다    어떻게 어떻게    이고 지고 메고 끌고 찻길 없는 산속 길로    해발 600미터 뱀이 노는 산속 길로    나뭇가지 부러뜨리며 덤불에 미끄러지며    누구한테 누구한테    산속에서 비뚜름 흙집 짓고 사는 자연인한테    마지막으로 깊은 병 다스려 보자고    홀로 산에 든 오십줄 여자 자연인한테    어인 날[…]

허공 외 1편
이진명 / 2022-03-01
직립 호수 외 1편 / 신용목

[창작시]     직립 호수     신용목            서 있는 사람에게 창은 내다보는 문이지만, 누워 있는 사람에게는 발아래 호수처럼 펼쳐진다    누워 있는 사람으로서 창문을 내다보면 환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치는 불빛들, 물고기들도    뛰어내렸을까 누워서 살고 싶어서, 혼잣말을 하다 보면 정말 말을 한 것인지 그 저 생각만 한 것인지 헷갈리고    누워 있는 사람으로서    몸을 일으키는 일은 호수를 향해 몸을 숙이는 일이지, 그조차 생각만 한 것인지 정말 움직인 것인지 헷갈려서    호수를 열고 밤을 만진다 남들이 보면, 내가 창밖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 줄 알 겠지    생각한 것을 중얼거리다 보면, 생각은[…]

직립 호수 외 1편
신용목 / 2022-03-01
홀가먼트 외 1편 / 김민지

[창작시]     홀가먼트     김민지            뼈가 보호하는 방식    살이 보호하는 방식    털이 보호하는 방식    우린 그걸 어떻게 지켰나 싶어    시접이 없는 니트를 입은 듯    안감의 기분을 모른 채    솔기솔기    꿈에서 꿰맨 잔상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함께하겠다    곁꾼으로서 할일을 하겠다    약속을 하고    보풀을 떼서 뭉치고 놀았다    각자 몸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일이었다                       구근류            한국형 신파가 있다    내가 너보다 내가 너보다    내 슬픔의 맥락은 무 마    당근 우엉 연근 그[…]

홀가먼트 외 1편
김민지 / 2022-03-01
Little Boy / 김솔

[단편소설]     Little Boy     김솔       독자들이 다 사라지고 작가들만 남으면, 우린 누구한테 책을 팔지? 그땐 책 대신 독자들을 팔면 되지. – 김솔, 「소설작법」, p. 50,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 번째』, 문학과지성사, 2014         “내가 사업에 성공한 이후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으니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테고.”     알려지지 않은 비밀 사업체를 제외하고도 7개의 제조회사와 4개의 금융회사, 3개의 언론사, 2개의 대학교, 병원과 문화재단까지 소유하고 있는 W회장이 자서전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은 이미 2년 전부터 세상에 회자됐다. 대통령[…]

Little Boy
김솔 / 2022-03-01
논 거울 외 1편 / 김호균

[창작시]     논 거울     김호균            모내기 전 논에 고인 물을    백로 같은 새들은    제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강에서 저 강으로    얼마나 고고히 날아갔겠는가.    날아가는 제 모습을 보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날아갈 때 그림자는    몸에 붙어 있었나.    저 거울 속에 빠져버렸나.    궁금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점점    근심 걱정으로 번져 갈 때,    한 번은 들렸을 것이다.    자신이 날아다닌 하늘과    거울 속의 하늘을    뚫어지게 바라다보고 싶었을 것이다.    네모난 논 거울 속에    두 발을 담그고    쨍그랑하고 깨질지도 모를    푸른 하늘과 구름과 제 모습을[…]

논 거울 외 1편
김호균 / 2022-03-01
바양작에서 그가 본 것 / 김연수

[단편소설]     바양작에서 그가 본 것     김연수           1.       코로나 이전, 그가 마지막으로 찾은 외국은 몽골이었다. 당분간 외국을 여행할 일은 없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방송 프로그램 외주업체로부터 여행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던 것이다. 핑계삼아 잠시 한국을 떠나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목적지도 제대로 듣지 않고 바로 승낙했는데, 마침 몽골의 고비사막이라고 했다. 사막이라니까 또 그녀와의 일들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떤 시절이 떠올랐다. 제작팀과 촬영 방향에 대한 회의를 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불쑥불쑥 옛일들이 떠올랐다.      오래전에 그녀에게서 들은 이야기 중에[…]

바양작에서 그가 본 것
김연수 / 2022-03-01
감귤모텔 부흥회 / 백가흠

[단편소설]     감귤모텔 부흥회     백가흠           1.      57회 기도회는 제주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이른 아침, 나는 제주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 렌터카를 찾고 일행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석윤 형, 그럼, 이번 모임에 참석자가 우리 둘뿐이라는 거예요?”     원희가 조수석에 앉으며 씩씩거렸다.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신앙심이 없어서야.”     내가 차에 시동을 걸며 답했다.     “우리처럼 모임에 간절하지 않은 거죠.”     그렇게 57회 모임은 열리지 못했다. 나와 원희를 빼고는 아무도 제주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형, 그럼 연락책인 나한테 먼저 얘길 했어야지, 일정을 취소하고 알려주지도 않으면[…]

감귤모텔 부흥회
백가흠 / 2022-03-01
파도무덤 외 1편 / 신두호

[창작시]     파도 무덤     신두호            무엇이 쌓여서 무덤을 만드는 걸까?    죽음을 안내하는 표시는 그것을 흩어버리는 물살들로 자유로워지지 않았는가?    계절의 물결    물결의 계절들로 이루어진 찰나에는    수포로 돌아간 시간의 흔적 이외에 씻을 것이 없었는데도    한 번의    단 한 번 밀려오는 파도를 맞이하려 수평선에 늘어선 불빛들로부터    혼을 부르는    나직이 속삭이는    목소리와 목소리들은    쌓여 가는 것들을 쌓을 수 없는 것으로 쌓기 위해    모래로 귀결 되는 자의 숨을 해변이라는 허공에 흩어버렸을 뿐    죽음은 아직 썰물을 들을 수 있는 두 귀에 선 채로 그 소리들을 감당하는 자를 불러내려 한다[…]

파도무덤 외 1편
신두호 / 2022-03-01
파도에게 외 1편 / 장혜령

[창작시]     파도에게     장혜령         1. 프랑시스 퐁주는 바다가 누구에게도 깊이 읽힌 적 없는 거대한 책이라 했다. 바다가 책이라면 파도는 바다의 무수한 페이지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해안가를 서성이며 파도를 넘겨다보거나, 배를 타고 물살의 표면을 오르내리며 그것을 읽었다고 믿을 뿐이다. 퐁주는 파도가 먼 곳으로부터 와서 말을 꺼내며 죽음을 맞는다고 썼다. 파도의 뒤를 따라 밀려오던 것들 또한 파도를 따라 말하며 마지막 숨을 거둔다. 모두가 서로 다른 상대를 향해 단 한 번 이름을 부른다.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는 그래서 수천의 이름들이 맞부딪히는 소리다. 2. 안개 낀 새벽, 인적 없는[…]

파도에게 외 1편
장혜령 / 2022-03-01
3월호 / 윤예지

[커버스토리] ※ 기획의 말 2022년 커버스토리에서는 웹툰, 사진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을 모시고, 《문장 웹진》 과월 호 수록작 중 1편을 선정해 시각화 해주시기를 요청 드렸습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임지은, 「눕기의 왕」을 읽고(《문장 웹진》 2022년 2월호)         이 그림은 지금 누워 있고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작가소개 / 윤예지 출판,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간과[…]

3월호
윤예지 / 2022-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