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없습니다 외 1편 / 박규현

[창작시]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없습니다     박규현            문을 도둑맞았다 태평한 오후였다    해안가로 밀려오는 동물 여러 마리는 거의 죽어 있었고    그중 하나를 데려와 쓰다듬었다    털이 빠지고 앙상해질 때까지    가족이 될 때까지    체하면 손을 따주었다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핏방울    그달에도    그달에도    그달에도    떨어졌다    욕실 타일과 타일의 틈으로 피가 번지면 그 위로 물을 끼얹었고    자면서 피 흘리면 안 되었다    꽤 다정하고 정겨운 모양새로    창밖으로 화재가 난 건물이 보여    구경했다 주민들이 옥상으로 대피하고 있었다    구조는 신속하게 진행되었으나    출구가 없다는 이유로 이사할 수는 없었다    보증금도 가구도 문도[…]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없습니다 외 1편
박규현 / 2021-12-01
사춘기 외 1편 / 김미소

[창작시]     사춘기     김미소            집을 짓다 쓸모없어진    벽돌처럼 엄마는 앉아 있었다    힘껏 내려치지 않은 마음의 균열    나를 괴물이라 놀리는 아이의 이름을    벽에 적고 빨간 줄을 긋는다    완벽한 거미집, 사람을 찌를 수 없으니까    한 사람의 이름을 가두고 조금 웃는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선명해진다    깨진 창문에 붙여놓은 테이프가 이탈한다    검은 봉지 속의 벽돌, 이대로 은폐할 수도 있다    손끝이 닿는 곳에 두고 천장을 응시한다    나는 중얼거린다    방 안 가득 외로운 포자가 떠돌았지만    벽돌은 교감을 모른다 교감 선생님이 잡아당겼던    귓불이 따갑다 벽돌은 가만히 듣는다    슬픔은 가공되지 않아[…]

사춘기 외 1편
김미소 / 2021-12-01
ㅎㅇㅅㄴㄷ 외 1편 / 나하늘

[창작시]     ㅎㅇㅅㄴㄷ     나하늘            이거 무슨 뜻일까    활엽수 농담한 이상 너도    형용사 냉동하였습니다    허언 세뇌 대학원생 난데    핫이슈는 다회용 수납대    여러 번 수납할 수 있다는 뜻이야    한 번만 수납할 수도 있다는 말이니    휴일 시낭독회에서 늙다    헛 예술 노동 후 읽습니다    흑역사 낭독했어 신난다    땡. 정답입니다.    꿈을 몇 개 꿨어?    많이    많은 얼굴    많은 열쇠    많은 너    행운 샀는데 하얗습니다    하연수는 동행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    우리가 잘하는 건 둥글고 넓은 농담    여러 번 담을 수 있는 비유    네가 우릴 어떻게 읽을지 궁금해    발음해[…]

ㅎㅇㅅㄴㄷ 외 1편
나하늘 / 2021-12-01
꽃꽂이 외 1편 / 이기리

[창작시]     꽃꽂이     이기리            어쩌면 며칠    생활을 잠시 두고 온 것뿐인데    오늘은 새벽에 눈을 떴습니다    날이 벌써 밝아지고 있어서 수평선이 보일 것 같아서    숲을 걷다 노래를 부르고 생선 구이를 먹다 혼자라는 단어에 가시가 박혔길래    그냥 살다 보면 다 넘어가겠지 싶었는데    그런 결론은 너무 무책임했는데 책임지는 건 또 왜 이리 싫은지    보기만 해도 좋을 이 삶을 누가 꺾어 갔으면 하는 바람에    모르는 사람에게 말도 걸어보았습니다    갑판 위에 올려놓은 말린 오징어들    뜯은 빵 부스러기들    나날들    모두 당신 것이지요    눈빛을 부러뜨리고 도망쳤습니다    구두를 벗으니    살갗이 까진[…]

꽃꽂이 외 1편
이기리 / 2021-12-01
핀셋과 물고기 / 문서정

[단편소설]     핀셋과 물고기     문서정           “핀셋 훔치는 거 다 봤어요.”     2층 계단 벽에 어떤 여자가 비스듬히 기대고 서 있다가 내가 지나가자 툭, 말을 던졌다. 나는 4층에 있는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마치고 계단으로 내려오던 참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그 여자를 째려봤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눈빛으로. 이어 턱을 높이 쳐들었다. 한 번만 더 무슨 말인가를 내뱉었다가는 계단 밑으로 처박히게 해주겠다는 표정으로. 나는 항공 점퍼 주머니에 손을 급히 넣었다. 끝이 뾰족한 핀셋이 손끝에 만져졌다. 내 주머니 속에 휴대폰 대신, 지갑 대신 지녀야 할 것이[…]

핀셋과 물고기
문서정 / 2021-12-01
허공에 걸터앉은 나의 구체적 자세 외 1편 / 황성희

[창작시]     허공에 걸터앉은 나의 구체적 자세     황성희            최승자를 읽을 때 가장 두려웠던 건    시가 들려주고 보여주는 세계보다는    자신의 시를 살아낸 한 여자 때문이었다    그런 식으로 감당해야 하는 게 실존이라면 나는    누구에게도 내가 살아있음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사물의 귀퉁이가 투명해진다 싶은 날에는    얼른 뛰어가 텔레비전을 켠다    거기에는 이국의 전쟁고아들도 있고    불치병으로 투병하는 환자들도 있다    후원단체의 스케치북에 감동하는 아버지와    주민센터의 도배로 곰팡이가 숨겨진 방에서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는 가족도 있다    그들 옆에서 잠시 나의 허공을 잊고    옷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후원계좌를 받아적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허공에 걸터앉은 나의 구체적 자세 외 1편
황성희 / 2021-12-01
너만 아는 농담 / 이정연

[단편소설]     너만 아는 농담     이정연           “다음 주 목요일은 어때? 화요일이면 프로젝트도 끝나 갈 테고…… 우린 금요일이 좋긴 한데 네가 가족의 날이라고 번번이 거절하잖아.”     전화기에 정적이 이어졌다. 나는 건우의 물음에 바로 답하지 않고, 목요일이 안 되는 이유를 생각했다.     “널 생각해서 날도 맞춘 거야. 코로나 때문에 한참 못 봤는데, 넌 그전부터 안 나온다고 얼마나 씹어대는 줄 아냐? 우리가 뭉친 게 네 결혼식이 마지막 아니었어?”     “그게, 그렇게 됐나?”     축의금석에 봉투를 건네고 식권을 받느라 몰린 사람들, 나를 알은체하고 호기심에 두리번대던 얼굴들, 문득[…]

너만 아는 농담
이정연 / 2021-12-01
플라이 외 1편 / 최세운

[창작시]     플라이     최세운            직선은 곡선이 되고 곡선은 직선이 되고 허공을 가르는 살갗이 찢어지는 그리고 붉은, 플라이 벌어진 틈새로 갈라진 형태로 깊게 파인직선과 곡선으로 원스트라이크투볼 쓰리아웃체인지 다시는 아물지 않을 형태로 어둡지 않을 자세로 그대로 가만히 플라이 플라이 교실에서나와 운동장을 가르는 기울어진 의자의 모습으로 더 깊이 플라이 형은집에 없었고 직선은 곡선이 되고 곡선은 직선이 되고 허공을 가르는살갗이 찢어지는 붉은, 플라이 글러브 안으로 손가락을 구부리면서 주머니칼을 가만히 쥐면서 신발이 벗겨지고 머리가 감기고 허공을 가르면서 더 깊이 플라이 플라이 급커브를 그리면서 킥, 킥, 머리 위로 쏟아지는[…]

플라이 외 1편
최세운 / 2021-12-01
12월호 / 김라온

[커버스토리] ※ 기획의 말 2021년 커버스토리에서는 웹툰, 사진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을 모시고, 《문장 웹진》 과월 호 수록작 중 1편을 선정해 시각화 해주시기를 요청 드렸습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서윤후, 「아무도 없는 우리」를 읽고(《문장 웹진》 2021년 11월호)         사랑의 자세만 남겨 둔 채 우리는 방으로 돌아갑니다                       작가소개 / 김라온 건조하고 선명하게 낯선 풍경을 그립니다. 반년간 산책하듯 그린 그림에 짧은 시를[…]

12월호
김라온 / 2021-12-01
식물인간 / 어단비

[창작 – 희곡]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식물인간     어단비           등장인물     남자     여자     기타     외 1명     무대      와이드한 무대 위, 센터에 침대, 침대 옆 협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무대 바닥 상하수 양옆으로 마킹테이프가 화살 표시처럼 붙어 있고.    군데군데 겹쳐진 선은 마치 너비와 길이 x, y같다.    암전 상태인 무대를 걷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    이내 들려오는 외 1명의 목소리   외 1명유엔 산하 IPPC[…]

식물인간
어단비 / 2021-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