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비울 때까지 / 최윤

[단편소설]     얼굴을 비울 때까지     최윤           어찌 보면 특수하다고 할 수 있는 내 직업으로 인해서 나는 인생의 매 단계에서 예외적인 사람들을 만났다. 예외적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상식적이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예외적이니 말이다. 그들은 나와의 관계에서 예외적이 된다는 뜻이다. 나는 초상화를 그려 주는 화가다. 초상화가의 관점으로는 매우 그렇다는 얘기다. 초상화만 그리지는 않지만 나의 생활원은 주로 내게 초상화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지불하는 작품 값에서 나오므로 사람들이 나를 초상화가라고 부른다 해서 서운해 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내가 초상화 이외의 그림들, 일테면 풍경화나 추상화 같은 여느 그림을 싫어한다고[…]

얼굴을 비울 때까지
최윤 / 2021-01-01
백발의 기수 / 최영희

[제38회 마로니에전국여성백일장 – 아동문학 부문 장원🏆 〈동화〉]     백발의 기수     최영희       🔊 수상자의 목소리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요.         가을 끼 발표회가 시작됐다. 강당 무대 단상 위로 붉은 색 막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다음 차례인 우리는 강당 뒤 대기실에서 마지막으로 동선을 확인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앞 무대가 끝났는지 박수소리와 함께 함성소리가 들렸다. 내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자, 하던 대로. 알았지? 긴장하지 말고. 파이팅!”     댄스부 선생님이 주먹을 꽉 쥐며 응원해주었다. 우리는 무대 위로 올라가 자기 자리에 섰다. 막이 쳐 있는[…]

백발의 기수
최영희 / 2021-01-01
종자는 먹어 치우지 않고 외 1편 / 김복희

[창작시]     종자는 먹어 치우지 않고     김복희           네게 있는 것을 전부 내놔     내     가방 속에는 그늘에서 말린 옥수수 살구 씨 복숭아 씨     해바라기 씨 파뿌리가 들었다       내놔     나는 신발을 벗고 겉옷을 벗고 가방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더 없어? 내놔       나는 손을 내밀었다       뭔가 더 없을까     독 없는 것     깨끗한 것       손을 탁 치는 소리가 들렸다       신발을 신고 겉옷을 다시 입고 가방을 들었다     그 모든[…]

종자는 먹어 치우지 않고 외 1편
김복희 / 2021-01-01
달리기 / 김현진

[제38회 마로니에전국여성백일장 – 시 부문 우수🏅 ]     달리기     김현진       🔊 수상자의 목소리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요.         바람이 구멍 난 나뭇잎사귀 곁을 지날 때마다     잎맥을 갉아먹던 애벌레가     나뭇결 같은 갈색 주머니 안에서 흔들리며 꿈을 꾼다.       그 곁으로     사소한 발길질에도 구르는 돌멩이처럼     그녀의 구부린 등허리가     꺾어진 그늘을 이루며 언덕을 오르고     숨소리마저 햇살의 거미줄에 사로잡혀 소거되는 오후,       길 위를 지나는 분주하고 소란한 세상의 소리를 등지고     달팽이 같은 그녀가 손수레를 머리에 이고 느린[…]

달리기
김현진 / 2021-01-01
도서관은 마지노선 / 백민석

[단편소설]     도서관은 마지노선     백민석           우리는 가끔 좀 같을 때가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갉아 먹는 좀.     책 먹는 좀이 15년이나 살 리는 없으니까 우리가 진짜 좀은 아니다.     우리는 Z세대 다음에 온 A세대다. Z 뒤로는 알파벳이 더 없으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A가 된 것이다.     우리는 A세대, 아포칼립스 세대다.       Y와 Z세대가 우리 부모 세대다. 상이 부모님은 Y세대고 소월이 부모님은 Z세대다. 유정이는 Y와 Z의 결합에서 나왔는데, 그 Y와 Z가 작년에 갈라섰다. 유정이는 이혼하는 날에도 도서관에 나와 우리와 함께 책을 쏠아 먹었다.[…]

도서관은 마지노선
백민석 / 2021-01-01
1월호 / 허연화

[커버스토리] ※ 기획의 말 2021년 커버스토리에서는 웹툰, 사진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을 모시고, 《문장 웹진》 과월 호 수록작 중 1편을 선정해 시각화 해주시기를 요청 드렸습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이정임, 「도망자의 마을」(《문장 웹진》, 12월호)을 읽고           구름, 종이에 아크릴 잉크, 2020   시간이 많고 항상 심심했던 어렸을 적엔 구름을 보면 항상 모양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사람 얼굴이라든지 강아지, 말 같은 동물이든 닮은 모양을 찾으면 꼭 옆에 있는 사람에게는 손으로 그려 가며[…]

1월호
허연화 / 2021-01-01
문장입니다영 시즌2 (제2화) / 임국영, 정다연

[문장입니다영]           문장입니다영 시즌2 (제2화) 영화….어디까지 봤니? (김연덕, 서윤후 시인이 추천하는 인생 영화들!)         EP 12 : 영화….어디까지 봤니? (김연덕, 서윤후 시인이 추천하는 인생 영화들!)   EP 12     바야흐로 대 COVID-19의 시대……   해를 넘겨 2021년이 도래했으나 구원의 서광은 요원하고   도탄에 빠진 민중은 희망의 때가 올 때까지 문을 닫고 외출을 삼간다   그런 그들에게 몇 안 되는 위안을 주는 것은 바로……   왓X와 X플릭스였다!!!       2021년의 시작을 알리는   〈문장입니다영〉 시즌 2, 제2화!   작가들이 사랑해 마지않은 영화(그리고[…]

문장입니다영 시즌2 (제2화)
임국영, 정다연 / 2021-01-01
올해의 슬픔 외 1편 / 김경인

[창작시]     올해의 슬픔     김경인           요즘은 슬픔이 유행이라더군     바깥에 그냥 두어도 썩기는커녕     몇 달 동안 말랑한 떡 같다더군     주소지만 정확하게 적으면     눈물이 마르기 직전에는 도착한다더군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불탄 자리에도     지하철의 스크린도어와     쉴 새 없이 죽음을 돌리는 컨베이어벨트에도     울긋불긋 눈이 터진 매 맞은 여자와     심장이 터진 아이에게도     집집마다 위태롭게 올려 둔     종이 박스가 한순간 우르르 무너지는 것처럼     딱 그만큼의 슬픔이 제공된다더군     슬픔에도 사람마다     피와 분노와 고통의 농도가 제각기 다른[…]

올해의 슬픔 외 1편
김경인 / 2021-01-01
잘 자라, 우리 / 배지영

[단편소설]     잘 자라, 우리     배지영           바뀐 비밀번호 따위는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고작 세 번의 시도 끝에 알아냈다. 시시하게도 핸드폰 뒷자리 번호였다.     비밀번호를 누를 때 안에선 개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캥캥 짖으며 잔망스럽게 현관문을 긁어대고 있었다. 들어가서 보니 요크셔테리어였다. 유난히 까만 눈깔을 가진 하얀 솜뭉치는 팔짝팔짝 뛰며 짖어댔다. 안에선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거실 한복판엔 빨래건조대가 놓여 있었다. 제대로 탁탁 털고 널지 않아서, 수건은 주름진 상태에서 굳어지듯 말랐고 바닥엔 마른 지 한참 지난 양말과 속옷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남자 팬티도 보였다.[…]

잘 자라, 우리
배지영 / 2021-01-01
1월호 / 허연화

[커버스토리] ※ 기획의 말 2021년 커버스토리에서는 웹툰, 사진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을 모시고, 《문장 웹진》 과월 호 수록작 중 1편을 선정해 시각화 해주시기를 요청 드렸습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이정임, 「도망자의 마을」(《문장 웹진》, 12월호)을 읽고           구름, 종이에 아크릴 잉크, 2020   시간이 많고 항상 심심했던 어렸을 적엔 구름을 보면 항상 모양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사람 얼굴이라든지 강아지, 말 같은 동물이든 닮은 모양을 찾으면 꼭 옆에 있는 사람에게는 손으로 그려 가며[…]

1월호
허연화 / 2021-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