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입니다영] 문장입니다영(제4-2화) 그래서 어떻게하면 시를 조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요…? EP 4-2 : 그래서 어떻게하면 시를 조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요…? 시란 무엇일까. 우리는 시를 어떻게 이해하고 향유할 수 있을까. 기초교육과정에서 학습했던 것처럼 어휘 하나하나에서 시대와 정신을 함축한 상징성을 포착하고 기계를 뜯어 살피듯 그 구성과 작동원리를 분석해내는 일은 과연 시를 받아들이기에 알맞은 태도일까? 시를 대면하는 '올바르고 건강한 자세' 같은 것이 따로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
2020년 2월
[신작시] 팔판동 전호석 편의점 앞 플라스틱 탁자에 둘러앉아 우리는 생일파티를 한다 촛불이 누웠다 일어서는 동안 개 짖는 소리 회오리가 낙엽을 그러모은다 유리문이 열린다 작은 종이 울리고 담배를 쥐고 걸어 나온 사람은 플라스틱 탁자의 얼룩을 잠시 바라본다 일행이 하나 둘 도착한다 나는 고깔모자의 부재를 생각하며 유치한 짓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낯선 일행에게 소곤거린다 촛농이 케이크를 덮어 간다 눈이 먼 일행이 플라스틱 칼을 들고 일어난다 그는 추위로 몸을 떨며[…]
[신작시] 살갗아래 이용훈 탕 그릇에 수저 휘저으면 식구라 불렀다 킁킁 냄새 맡고들 기어 나오는지 어제 왔다는 걔 손놀림이 빠르다는 걔 장반장 밑에서 일 시작하는 걔 홀연히 사라지는 걔 그저 걔 너를 걔라 불렀다 목청껏 울었고 미친 듯이 짖었다 종종 내 옆에 존재 했다 했지만 보고 있자니 멀어서 형태만 가늠해 본다 저게 사람 새끼인지 건설되는 꼴 콘크리트 들보에 황혼이 깃든다 온통 붉어서 너까지 타오른다 너가 울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는 재수없다 침을 뱉는다 신발을 세워 흙 바닥을 툭툭 내리쳤다 패이는[…]
[신작시] 불 꺼진 눈 김명리 마당 한 귀퉁이 얼어붙은 죽은 길고양이 한 마리를 묻어 주었을 뿐인데 온몸에 마른 잎사귀 돋아나고 있네 눈은 영혼이 들고 난 창구였는지 죽은 짐승은 눈부터 썩어 들어간다 한때 사랑의 욕망이 한때 살육의 욕망이 넘나들었을 눈 언제 폐쇄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이 우체국 창구에서 돌연 건재약 냄새가 난다 내 고통 나의 괴로움에 그 누구도 손대지 말라는 듯 지금은 다만 불[…]
[신작시] 보행 신호 시 유턴 이병국 좁은 길 안쪽, 숨어 있던 걸음이 머뭇거리면 생선 굽는 냄새가 저녁놀처럼 퍼졌다 희미한 술렁거림이 낮게 가라앉고 먼 데서 바람은 투명했다 속수무책으로 나는, 길을 망설였다 골목을 메운 거짓이 한 무더기의 불빛을 비껴가고 흰 종이를 채우는 하루가 밀려나고 주린 말을 돌이켜 문장 속에 밀어 둔다 목차가 순서를 잃었다는 듯 폐허가 된 도시의 그림자처럼 깊게 새겨진 우연의 습관 계속된 기다림 곁으로 누군가 빈 걸음을 짓는다 비스듬히 흐른 것들을 피해 몸을 옮긴다 […]
[단편소설] 계시, 꽃 고진권 ○ 계시 사진 속 보디빌더는 안경을 썼고 맨바닥에 옆으로 누운 채 왼쪽 팔꿈치를 세워 벽에 비스듬히 기대었다. 왼손에 책을 들고 멀리 저쪽에 시선을 두었다. 검은색 경기용 트렁크를 입은 몸에 청재킷만 걸친 채 앞을 풀어헤쳤다. 빨간색 벽돌로 된 바닥과 벽 앞에서, 보디빌더의 몸은 벽돌보다 짙은 갈색으로 빛났다. 이 모습을 본 요한은 그 아름다움에 큰 충격을 받았다. 90년대 초반, 요한은 중학생이었다. '왜 그 사진을 오려 두지 않았을까.' 몇 년이 흘러도 그 사진이 잊히지 않았다. 요한은 그[…]
[신작시] 드문 김안 마음으로, 마음의 최대치로 만든 방 안에서 밤새도록 아이가 놀고 있다 아이의 놀이는 언제 끝날까 이 징그럽고 끔찍한 방 안에서 너와 나는 무엇을 만들어낸 것인지 붐비고 들끓고 징그러울 만치 하얀 폭설을 뚫고 도착한 책 더미들 속에서 나는 입부터 망하기 시작하지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무렴요 건강하셔야죠 전 진정 아무 일 없습니다 아, 옆에 아이가 있어서요 밤마다 천장에는 자꾸 구멍이 뚫리고 물이 떨어진다 아이야, 이 방은 안전하단다 이 방에만 있으면 우리 집은 떠내려가지 않을 거야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단편소설] 메켈 정비공의 부탁 나푸름 잠에서 깬 너는 순간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그러다 곧 이곳이 시칠리아 섬 서쪽 해안에 있는 작은 호텔이라는 걸 깨닫지. 너는 눈을 감고 오늘의 일정을 되새겨. 오전에는 바닷가의 염전 지대를 따라 산책을 할 거야. 정오에는 마을 광장에 있는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어제 읽다 만 소설을 마저 읽는 거지. 해가 질 무렵이 되면 예약한 식당에서 정어리와 회향을 곁들인 파스타에 와인을 마시며 지역의 미식 전통을 즐길 거야. 밤에는 호텔로 돌아와 매춘부와 사랑을 나누는 거지. 너는 곧 상황을[…]
[커버스토리] ※ 기획의 말 2020년 커버스토리에서는 웹툰, 사진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을 모시고, 《문장 웹진》 과월 호 수록작 중 1편을 선정해 시각화 해주시기를 요청 드렸습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건비치 나미나 – 「벽의 반대말」(나희덕, 《문장 웹진》, 1월호)을 읽고 여러 해변을 앞에 두고 이곳의 역사에 대해 생각한 날이 오래다. 을 읽고 기댐에 대해 생각해 봤다. 기댈 곳을 찾는 것은 내 마음에 달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신작시] 대설주의보 ― 낭광증(狼狂症) 기혁 버려진 인형 위로 눈이 내린다 버려진 강아지가 인형을 따라 눈을 맞는다 행인이 우산을 씌워 주자 인형을 물고 와 뺨을 핥는다 밤사이 폭설이 내린다고 했다 버려진 것들이 자꾸만 사람을 닮아 간다 저 여린 것들도 에둘러 안부를 묻고서 사소한 종말 따위를 알리려 애쓴다 내가 늑대였을 때도 그랬을 것이다 피로 물든 일상을 앞에 두고 자주 눈을 맞았다 뜯어진 감정의 곁에서 사람의 눈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