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 외 1편 / 김대호

[신작시]     당신의 마음     김대호           당신에게서 조금의 마음을 얻어 왔습니다       오늘 내가 얻어 온 이 마음은       처음이 아니라       두 번째 마음도 아니라       매일 얻어 온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이 마음들이 설풋 내 것인 듯도 합니다       아니, 내 마음이라고 착각한 채 평생을 살았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내 평수에 꼭 맞아서 덜컹대지 않았습니다       내 피부에도 붙어 있는 그 마음이 자연스러워서       몸을 씻으며 피부를 닦아도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마음 외 1편
김대호 / 2020-12-01
풋사과 속 방 한칸 외 1편 / 김창균

[신작시]     풋사과 속, 방 한 칸     김창균           몸의 가장 안쪽에 숨겨 놓은 까만 눈알     누군가 닿으면 미끄러지는 굴곡을 가진     너에게 눈을 맞춘다. 눈동자가 깃든 방     거기 깊숙한 곳에서 꺼내는 한숨     당신이 언젠가 내 입속에 넣어 준 말들이     일제히 밖으로 튀어나올 듯     침묵인 줄 알았던 것들이     커다란 아가리를 들락거리며 아우성이다       시월, 문 밖에는 주인의 발에 헐거운 신발이     밤새 처마의 빗방울을 받아내는데     오래전 집을 떠나 유기된 개들은 어둠을 끌어다     자신의 몸에 문신을[…]

풋사과 속 방 한칸 외 1편
김창균 / 2020-12-01
그게 무엇이든, / 임성용

[단편소설]     그게 무엇이든,     임성용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빨리 끝내는 게 낫다. 죽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칼끝에 가늘게 전해 오는 떨림과 예상만큼 가벼운 숨. 근수는 원장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뒤에서 감싸 안았다. 어느 한쪽에 힘이 너무 가해져 멍 자국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 썼다. 한쪽 손으로 막은 입에서 피가 역류하는 게 느껴졌다. 곧 피가 기도를 막아 질식할 것이다. 원장의 손톱에 붙은 큐빅이 창으로 들어온 가로등 불빛을 받아 파르르 떨렸다. 어두컴컴한 학원의 교무실처럼 원장의 목숨이 푸시시 꺼졌다.     일부러 거칠게 칼을 빼서 주위에 피를 튀겼다. 잡고[…]

그게 무엇이든,
임성용 / 2020-12-01
예쁜 남자 외 1편 / 박혜정

[신작시]     예쁜 남자     박혜정           예쁘다     예쁜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쁘다     이 남자의 생각이 예쁘다     이 남자를 보면 나까지 예뻐진다     목소리가 예쁜 남자다     목소리에는 흰 튤립이 나선형으로 피어 있다     작은 귀를 가까이 기울이면     사슴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사슴은 남자를 예쁘다고 한다     이 남자가 사는 제국에는     이름을 모르는 꽃들이 피어 있다     물이 없어도 자라는 꽃들이 있다     시든 적이 없는 꽃들이다       남자의 미래는 예쁜 길이 있다     예쁜[…]

예쁜 남자 외 1편
박혜정 / 2020-12-01
연민 외 1편 / 김남극

[신작시]     연민     김남극           한 번쯤은     별똥별이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냇가에서     그 별똥별을 모두 담아 그대에게 보내고 싶다는     그 별빛이 사그라드는 아주 잠시 동안만이라도     당신의 마음 가까이 가고 싶다는     근사하고도 유치한 시를 쓰고 싶었다       내가 떠난 뒤에도 별똥별은 가끔     소낙비처럼 앞개울에 쏟아졌을 것이다       내가 떠난 뒤 그 별똥별 묶음을 받을 사랑도     어디론가 사라졌을 것이다       무엇이라도 남은 것이 있지 않을까     사람이 다 떠난 마을에 가보았다       노을이 장엄하게 지고 있었다[…]

연민 외 1편
김남극 / 2020-12-01
거위와 인육 / 양선형

[단편소설]     거위와 인육     양선형           황금알을 위하여       아무도 그에게 대화를 시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한없이 말하는 일에 익숙하다. 그는 보통 한없이 말하는 일에 어떤 장애도, 어떤 단절도 겪지 않는다. 가짜 푸아그라 농장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그의 목소리는 어제의 산들바람처럼 사소하게 들린다. 공중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뜬구름을 응시하고 있으면 홀로 헤아리는 날짜들이 무균형의 칸막이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들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중얼거리는 그의 혼잣말은 오솔길의 구슬픈 어둠 속에서 나란한 위상을 차지한다. 사람들은 처음에 자신들의 귓전을 배회하는 말들이 누군가 보내는[…]

거위와 인육
양선형 / 2020-12-01
도망자의 마을 / 이정임

[단편소설]     도망자의 마을     이정임           마을버스는 구불구불한 언덕을 따라 한참 올랐다. 퇴근시간대라 사람이 많았다. 수현이 대학 졸업하고 마흔이 될 때까지 출퇴근 시간의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은 손꼽을 만큼 적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엉덩이, 어깨를 맞대고 서는 일이 어색했다. 한동안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은 없고 타는 사람만 있었는데 버스는 정차할 때마다 ‘차 문이 혼잡하오니 안으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안내했고 수현은 뒤로 떠밀렸다. 손잡이를 잡은 손이 몸에서 점점 멀어졌다. 운전대가 좌우로 돌 때마다 사람들은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모두 합심해서 한 방향으로 흔들렸다. 중학교 시절 수련회에서[…]

도망자의 마을
이정임 / 2020-12-01
이야기의 끝 / 홍지흔

[창작 – 그래픽노블]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이야기의 끝     홍지흔                                 작가소개 / 홍지흔 만화와 일러스트를 그리며, 독립출판으로 직접 책을 만들기도 합니다. 장편 〈건너온 사람들〉, 〈한 걸음 더〉 단편 〈다른 날의 기억〉, 〈재구와 콩나물〉 Instagram | @tabletoday      《문장웹진 2020년 12월호》  

이야기의 끝
홍지흔 / 2020-12-01
광주광역시 러브앤프리(제3회) / 광주광역시 러브앤프리

[책방곡곡]       광주광역시 러브앤프리(제3회) 높은 곳에 서려면 언제나 용기가 필요했다. – 백온유, 『유원』(창비, 2020) –     사회/원고정리 : 윤샛별(러브앤프리 책방지기) 참여 : 강성희, 구희진, 윤송일, 최미나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성장’이다. 누군가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는 건 뭉클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그 단어를 갖기까지 수많은 일들과 수많은 감정들을 겪어 왔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러브앤프리에서 마지막으로 함께한 백온유 작가의 『유원』의 주인공 유원을 지켜보며 응원의 마음을 보내며 함께했다. 유원은 내 곁에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일상에서 잘 들여다보지 못했던 우리 곁의[…]

광주광역시 러브앤프리(제3회)
광주광역시 러브앤프리 / 2020-12-01
질식 외 1편 / 정덕재

[신작시]     질식     정덕재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면서     인사를 놓치는 경우가 잦아졌고     이목구비 중에서 구비가 사라지니     입과 귀로 전하는 문학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었다       마스크에 익숙해지면서     알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얼굴에     멋쩍은 눈인사를 건넸고     보이지 않는 입과 보이는 눈은     서로 다른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눈으로 전하는 얘기들이     100와트 전등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깊은 밤에는 눈에서 빛나는 등불이     어둠을 밝혀 나갔다       상악골만 드러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질식 외 1편
정덕재 / 2020-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