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언캐니한’ 귀환, 그리고 그 속의 여성들 / 신샛별

[문학더하기(+)]     일본의 '언캐니한' 귀환, 그리고 그 속의 여성들     신샛별           1. 일본, 친숙하고 낯선       유년기에서부터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둘러싸여 성장한 한국의 청년세대는 국가 사이의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소박한 의미에서조차 이미 트랜스내셔널하다.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1) 세대라고 부를 수 있을 그들이 경험하는 한일 관계 역시 기본적으로는 그럴 것이다. '일본'이라고 하면 불가피하게 과거사의 상처를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청년세대는 일본 문화에 거리낌이 없다. 자신들이 향유하고 전파하는 문화에 일본(일본적인 것)이 직‧간접적으로 내포돼 있음을 인식하기도 전에 이미 그들은 그 문화의 일부로[…]

일본의 ‘언캐니한’ 귀환, 그리고 그 속의 여성들
신샛별 / 2019-09-05
순정의 영역 / 함정임

[단편소설]     순정의 영역     함정임           삼계탕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해주 출신이라고 그는 말했다. 만난 지 13개월 뒤에 그는 조부모와 부모의 존함을 그녀에게 알렸다. 조부 박현복, 조모 오순정. 부… 모… 그날 둘은 혼인 신고 차 구청에 갔다. 그의 제안이었다. 결혼식 같은 것은 없었다. 그녀의 제안이었다. 그는 아주 어려서 부모를 여의었다. 동료이자 부부였던 그의 부모가 미국 유학 중에 안데스 산중으로 지질 탐사 갔다가 타고 있던 경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두 살 때 고아가 되었고, 조부모를 부모처럼 여기고 자랐다. 4·19 기념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의 조부모 집이 있었다.[…]

순정의 영역
함정임 / 2019-09-02
말들의 정류소 / 조현

[단편소설]     말들의 정류소     조현       🔊 KBS 라디오 문학관에서 오디오북을 만나볼 수 있어요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서로의 고통과 상흔을 정답게 다독인다. 나는 방금 '정답게'라는 낱말을 썼다. 정답다는 것은 미워하지 않고, 지루해하지 않으며, 머뭇머뭇 손을 내밀고, '난 잘 있어요.'라고 눈인사를 하고, 사물에 애정이 담긴 이름표를 붙여 주고, 체온을 담아 악수를 하고, 그리하여 일용할 양식처럼 그 기억을 나의 살로 취하고, 나의 존재를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당신에게 온전히 내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언어는 말들의 정류소에 고여 있다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현현한다. 진심을[…]

말들의 정류소
조현 / 2019-09-02
살구 외 1편 / 이은규

[신작시]     살구     이은규           살구나무 아래 앉아 그늘에 대해 생각한다       손차양, 한 사람의 미간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이 만들어준     세상에서 가장 좁고 가장 넓은 그늘     그 아래서 한 사람은     한낮 눈부신 햇빛을     부음처럼 갑자기 들이치는 빗발을     괜찮다 괜찮지 않다 내리는 눈송이를     기꺼이 바라보며 견뎠을까, 견딤을 견뎠을까     한 생이 간다 해도 온다 해도 좋을       이제 다른 한 사람은 없고     긴 그늘을 얼굴에 드리운 한 사람만 남았다     살구나무는 잘 있지요    […]

살구 외 1편
이은규 / 2019-09-02
돌돌 외 1편 / 고찬규

[신작시]     돌돌     고찬규           돌과 돌이 만나 탑이 되니     두 손 모으고 소원을 빈다     돌과 돌이 만나 비석이 되니     그 앞에 엎드려 절을 한다     돌과 돌이 만나 계단이 되고        돌과 돌이 만나 난간이 되고     돌과 돌이 만나 담벼락이 되고     돌과 돌로 안팎이 된다     돌과 돌이 만나거든     파편을 주의하라     돌과 돌이 만나는 것도     돌고 도는 것     돌만 돌이 아니었으니     돌이 돌만도 아니었으니     꿈꾸는 돌     철학하는 돌     다윗이 던진[…]

돌돌 외 1편
고찬규 / 2019-09-01
5인 가족 외식 출행기 외 1편 / 문신

[신작시]     5인 가족 저녁 외식 출행기     문신           나는 한 명의 아내와 세 명의 아이들이 있다     ―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나는 아직 이십 세기의 사유에 갇힌 모양이다. 나에게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한 명의 아내, 세 명의 아이들과 산다     ― 이렇게 말하는 것도 만족할 만하지 않다 굳이 개체를 헤아리듯 한 명 한 명 세어야 하나     나는 아내와 세 아이들과 더불어 산다?     아니, 나와 아내와 아이들 셋이     ― 그렇다, 부족하나마 이 표현이 그래도 마땅해 보인다[…]

5인 가족 외식 출행기 외 1편
문신 / 2019-09-01
인형 병원 외 1편 / 박세랑

[신작시]     인형 병원     박세랑           불량품으로 태어나 흥청망청 놀고 다녀요       기계처럼 뛰던 심장이 지직거리고       시끄러워진 수다나 치료하러 병원 가야지!       울어야 할 순간에 웃음이 폭발하던 날       여기저기 당한 일은 많은데······ 갈 데가 없어서 나풀나풀 돌아다녀요       새로 산 물건처럼 포장도 뜯기 전에 부서져 버리고       떨어진 영수증은 멀리 날아가는데          거울 속에서 얼룩덜룩 웃음이 흩어져 나와요       여러 갈래로 찢어진 내 목소리를 침대 위에 묶어 둔       의사는 진찰을 시작해요  […]

인형 병원 외 1편
박세랑 / 2019-09-01
신도시 외 1편 / 유수연

[신작시]     신도시     유수연           바다는 바다이고 바다는 바다이며     그리움은 그리움이 아니었다 눈물은 모두 눈물이 아니듯     슬픔이 어디 모두 슬픔일까       지옥에 사는 이들이 불길이 덜 닿는 곳을 분양하고 있었다       시인은 모두 자기가 만든 신에 관해서 얘기하기 바빴고     종교인들이 모여 건물을 짓고 있었다     모이면 기도를 하기로 했지만       하루도 기도하지 않으며 벽돌만을 날랐다       바다는 바다이고 바다는 바다이며     그리움은 그리움이 아니었다 눈물은 모두 눈물이 아니듯     슬픔은 모두 어디서 슬픔이 되었을까       오빠![…]

신도시 외 1편
유수연 / 2019-09-01
비생산 외 1편 / 안미옥

[신작시]     비생산     안미옥           *     들어 봐     이제부터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할 거야       중요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시작되지 내가 어제 혼자 거실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       열쇠를 돌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다 계속되다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다       아무도 없어도 계속될 수 있다       유리 안에 든 모래 알갱이가 하나씩 떨어지다가     시간을 알게 해주듯이       *     빈 유리병에 깃털을 담는다       그러니까[…]

비생산 외 1편
안미옥 / 2019-09-01
북해와 향유고래 외 1편 / 이병일

[신작시]     북해와 향유고래     이병일           수평선이 굵어지면 북해보다 큰 무지개가 떠오른다       한 삼백 년 거뜬하게 사는 향유고래     북해의 물속에서는 오래 숨을 참지 못해 음파는 커진다     검은빛이 밝은 곳에서는 음파의 색과 방향마저 잃었다     그때 경랍(鯨蠟)이 뇌를 갉았지만 괴로워하지 않았다       해 뜨고 달지는 심해; 그 아늑한 시간 속을 헤치면서     아가리 크게 벌리고 죽어야 큰 무지개 하나 짠다는 것을 안다     저 향유고래,     옆으로 누워 있으니까 조용한 백양나무 두 그루,     더 이상 물거품 내뿜지 않았다  […]

북해와 향유고래 외 1편
이병일 / 2019-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