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6 / 김엄지

[단편소설]     예지6     김엄지       1     누구든지 이상하다.     이상한 모두를 피하고 싶었던가.     이상한 눈, 코, 입을 본 적이 있다.     이상한 사람의 눈은 이상하기 마련이다.     이상한 사람의 코와 입은 이상한 사람의 눈보다 더 이상할 수 있다. 어떻게?     어떻게든.     이상한 자가 이상한 자에게 다가가 말할 수 있다.       지금 참고 있는 게 뭐예요?     참고 있는 표정인데 허심탄회하게 말해 봐요.     말하고 나면 훨씬 후련할 텐데요.     후련해질 텐데요.       나는 후련해지지 못했다. 내가 끌고 다니는 두 다리가[…]

예지6
김엄지 / 2019-05-02
민들레 시인 외 1편 / 장옥관

[신작시]     민들레 시인     장옥관           그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히브리어나 갑골문자 같은, 뜻을 풀 수 없는 말     매듭으로 묶어 보내왔습니다     그제 저물 무렵에     lйg     3ФБ     t6yy     보내더니 다음날 늦은 밤에     ccxxe3     사흘 뒤에 다시     ??,*     벌벌 떨리는 손가락으로 타전했을     그 문자     달을 사타구니에 끼고 북으로 두드리던 그, 설마 남파 공작원은 아닐 테고 따에 엎드려 즐겨 들여다보던     노란 민들레에게     통신문을 보낸 건 아닐지     머지않아 몸 빠져나와 가야 할 별에[…]

민들레 시인 외 1편
장옥관 / 2019-05-01
빈 둥지 증후군 외 1편 / 오성인

[신작시]     빈 둥지 증후군*     오성인           허공에 머무르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둥지는     자주 공허해진다       삶을 영위하는 법에 대하여 더는 일러줄     일 없는 입은 쉽게 단내가 나고     오랜 규율을 잊은 몸은 단조롭다       둥지 안 여전히     스며 있는     더운 숨들, 회상하듯 차례로 짚으면       필름 흐르듯 눈뜨는 시간들       여린 발로 겨우 균형을 잡은     어린 것들을 앙상한 가지로 내몰아     떨어뜨릴 듯 호되게 다그친 뒤     휑한 뼈가 창공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돌아서서[…]

빈 둥지 증후군 외 1편
오성인 / 2019-05-01
스크린 도어 외 1편 / 박정은

[신작시]     스크린 도어     박정은           나는 기차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투명한 문은 어느 불투명한 문보다 견고했다. 커다란 바람소리와 함께 기차는 국경을 넘었다. 산으로 향했다. 나의 내면은 길고 좁고 캄캄한 통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자정에는 불을 켜지 않았다. 어둠속에 웅크린 몸이 있었으니까. 낮고 어두운 곳을 계속 걸으면 다음 기차역에 도착하지 않을까. 깬 잠을 다시 청했다. 음악을 켜두었고, 핸드폰 불빛이 머리맡에서 빛났다. 잠이 들면 나는 다시 투명한 문 앞에 선다.       먼 산속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투명한 문 앞에서 서면, 절벽이 훤히 다 들여다보였다.[…]

스크린 도어 외 1편
박정은 / 2019-05-01
신체포기의 각서 외 1편 / 류진

[신작시]     신체포기의 각서     류진           여름이 되겠다고 딱딱해진 가로수가     녹말이 되겠다고 녹는다 여름이 되겠다고 내가       목말이 되겠다고 눕는다 잘린 풀 비린내에 파묻혀       몇 번을 생각했다 몇 번을 생각해도     좋은 일이다 마음을 접는 일이란       은행이 장갑을 벗는다 초록을 그만 포기하려고       박살난 빗물을 주워 맞추려고     은행잎은 허둥지둥 뒹군다       여름이 되겠다고 눕는다 준비하시고     쏘세요! 가슴에서 파란 피가 떠난다     불리는 중국인, 그래 나다 그것은 말뚝에 묶여 있다       그것은 메아리를 던지고[…]

신체포기의 각서 외 1편
류진 / 2019-05-01
실버라이닝 외 1편 / 조윤진

[신작시]     실버라이닝     조윤진           알 수 없는 구절이 레터링 된 티셔츠를 나눠입었지     뜻을 알고 나면 실망할지도 몰라       컵에 맺힌 물방울이 탁자를 적실 때까지     멀어지고 멀어지다     말라 가는 시간       지하철 틈 사이로 발이 빠지는 상상을 하자     네가 내게로 왔다       헐레벌떡 뛰어오른 마지막 승객처럼     어쩌다 씹어버린 입안의 살처럼       콧노래를 잘 흥얼거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함께 조금 먼 길을 가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늘 같은 메뉴를 고르던 내게     그런 건[…]

실버라이닝 외 1편
조윤진 / 2019-05-01
‘평화’를 쓰는 ‘글’ / 김신영

[글틴스페셜]     '평화'를 쓰는 '글'     김신영           군인들이 서 있고, 가시 박힌 쇠창살이 둘러싸고 있는 다리.     더 큰 상처를 막기 위해 상처를 주기 위한 무기를 들고 있고, 아직 가시지 않은 상처들이 가시가 되어 사람들을 막고 있는 민간인 통제선.     그게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캠프 그리브스의 첫인상이었다. 1일차의 조금 이른 저녁, 우리는 캠프 그리브스에 도착했다.     저녁 식사와 오리엔테이션이 끝나자, 캠프의 첫 프로그램인 '심심하지 않은 심야낭독회'를 시작하기 위해 대기하던 박찬세, 신철규 시인님이 단상에 올라와 자기소개를 시작하셨다. 두 시인은 자기소개가 끝나자 각자 가져오신 시를 몇[…]

‘평화’를 쓰는 ‘글’
김신영 / 2019-05-01
알바 앓이 외 1편 / 허유미

[신작시]     알바 앓이     허유미           부순다     물고기 눈물을 얼린     거대한 얼음을       쏟는다     좌판에 그물에 멍든     물고기들은     제 눈물로 만든     꽝꽝한 바다에서     차곡차곡 앓는다       앉는다     물고기들이 앓았던     차가운 좌판에     하교 종소리 시간 때쯤     종례 대신 받는 알바비를     기다리며       앓는다     주말마다 등과 어깨가     윗옷을 벗으면     얼음 위에서 앓았던     푸른 지느러미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

알바 앓이 외 1편
허유미 / 2019-05-01
지나친, 청춘의 색 / 안도연

[글틴스페셜]     지나친, 청춘의 색     안도연           희다       설렘의 색은 희었다. 흰 해가 떠오를 때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로의 이름을 모른 채, 버스의 짐칸에 서로의 캐리어를 옹기종기 모았다. 우리는 그렇게 흰 마음, 순수하게 설레는 마음을 안고 파주 캠프 그리브스로 향했다.     흰색에도 감정이 담길 수 있었을까. 통일대교를 지나며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불렸다. 그전까지 이야기를 하거나 단잠에 빠져 있었으므로, 우리는 우리를 조금만 알게 된 참이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글틴' 친구들은 흰 솜 같았다. 살짝 실밥이 삐져나온, 보송보송한 솜.       푸르다[…]

지나친, 청춘의 색
안도연 / 2019-05-01
수아 / 윤이형

[단편소설]     수아     윤이형           수아라 불리는 로봇들이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지난주 윤경이 위원으로 참석하기로 되어 있던 P시 산하 공동체분쟁조정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윤경의 위원직을 박탈해 달라고 요구했다. 위원회는 회의를 열어 숙고 끝에 ― 몇 시간 동안이었는지는 모르겠다 ― 윤경의 위원직을 박탈하고 대신 공문을 보낸 여덟 명의 수아들 중 한 명을 위원으로 발탁하기로 결정했다.     위원회가 로봇 편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나는 기가 막혀 물었다. 윤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가 걔네들 그냥 로봇 아니랬지, 하고 한숨을 쉬었다.[…]

수아
윤이형 / 2019-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