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D 외 1편 / 강지이

[신작시]     VOID*     강지이           그 산책의 시작은 놀이터였다.       우리는 작고 푸른 오리 모양의 흔들의자에 몸을 넣은 채 아이의 그네를 밀며 노래를 불러 주는 여자가 노래를 끝마친 후 아이를 그네에서 내려 주고, 손을 잡고, 아파트 쪽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볼 때까지 그곳에 앉아 있었고 너는 일어나서 곧바로 여자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네가 흥얼거리는 소리가 아무래도 잘 들리지 않아 어디 바람도 불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걸었고       첫 번째와 두 번째 골목     한낮인데도 가로등이 깜빡거리고 누군가가 버린 담배꽁초와 깡통들이 심각한[…]

VOID 외 1편
강지이 / 2019-04-01
/ 이화정

[단편소설]     문     이화정           아버지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침대에 앉아 있다. 은영이 팔꿈치로 툭 건드리자 몸이 비스듬히 기울더니 허리를 중심으로 상반신은 침대에 발은 바닥에 닿은 채 엎어졌다. 은영은 대통령을 꿈꾼 적도 없지만 벌거벗은 아버지의 시신 앞에 서 있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산다는 것이 조금씩 발랄함과 멀어지는 일이라면 지금 은영은 아주 오래 산 기분이었다. 털썩, 바닥에 앉았다. 접은 무릎을 팔로 감쌌다. 창밖의 구름이 아버지 몸에 음영을 만들며 돌아다니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버지의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항문이 드러났다.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았다. 양쪽 엉덩이에 길이가[…]

이화정 / 2019-04-01
의자들 외 1편 / 박은지

[신작시]     의자들     박은지       선생님에겐 의자 세 개가 있다 나는 적당한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거나 끝나지 않는 라디오를 들었다   그럴 때면 셀 수 없이 많은 미래가 주위를 맴돌았다 그것들을 하나씩 펼쳐 보는 일은 즐거웠다 녹조가 흐르거나 파스스 흩어지거나 빛을 뿜거나 따뜻하게 녹아내리거나 살아 볼 만한 미래에겐 빈 의자를 내어주고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도 멋진 의자가 갖고 싶었다 창밖을 내다보거나 더 많은 미래를 펼쳐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멋진 의자를 세 개나 들여놓기에는 어느 쪽이든 여유가 없었다 고민 끝에 낚시의자와 욕실 의자를 꺼내 놓았다[…]

의자들 외 1편
박은지 / 2019-04-01
축복 / 기준영

[단편소설]     축복     기준영           그녀가 아들 나이였을 때 일이다. 문고판 연애소설을 읽으며 사랑은 그런 것이라 생각했었다. 여자가 바다가 보이는 별장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면 남자는 밤낮으로 그녀를 그리워하며 바싹 말라가는 것.     그가 아들 나이였을 때의 일이다. 아버지는 짐을 싸서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재혼했다. 형은 아버지를, 누나는 어머니를 따라갔지만, 그는 할머니와 시골에 남았다. 그는 이별이란 그런 것이라 생각했었다. 떠나간 것과 남겨진 것 사이에서 많은 질문을 꺼내놓지 않는 것.     이제 그 날들로부터 걸어와 한 침대를 쓰는 그와 그녀는 여느 부부들처럼 서로에 대해서 어떤 부분은[…]

축복
기준영 / 2019-04-01
어제는 태풍이 왔다 / 송호정

[제14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수장작/시]     제14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 어제는 태풍이 왔다     여전사 캣츠걸(남)(송호정)       뉴스는 호우주의보를 보도했다.   잠가 놓았던 난민들이 쏟아졌다. 철새처럼 무리지어 수근거렸다. 간밤에 301호가 무너져 내렸다고 302호와 303호는 속닥였다. 십자가 위에 걸린 비바람처럼 웅성거렸다   무너져 내린 길목을 걷느라 어른들은 아이가 되었다. 모두의 무릎이 축축했다.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만 보인다는 비벼락은 낯 익은 소문이었다. 다 헤진 야상을 걸치고. 사람들은 자주 주머니 속에서 뒤척거렸다. 가게들은 전부 닫혀 있거나 닫혀 버렸다   내일은 내일의 태풍이 올 것 아무데나 버려진 바람을 한 움큼 훔치고 길목은 아무[…]

어제는 태풍이 왔다
송호정 / 2019-04-01
책방곡곡 부산 영도 손목서가 1편 ㅡ 어른이 되어 어린이책을 읽다 / 유진목 외

[독자모임-책방곡곡]   ※ 기획의 말 2019년 독자모임 코너 [책방곡곡]에서는 전국 방방곡곡의 독립서점들을 방문하고, 그 지역의 문인 및 독자의 목소리를 청취하고자 합니다. 각 지역의 문학 생태계와 특수한 현안들이 곳곳에 계시는 독자들에게 서로 공유되어, 사유와 비평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책방곡곡 부산 영도 손목서가 1편 ㅡ 어른이 되어 어린이책을 읽다     사회/정리 : 유진목 참여 : 서은주, 최진경, 황선화           부산 영도 바닷가에 서점 '손목서가'를 연 지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열 평 남짓 작은 서점의 서가를 꾸리면서 잘 팔리는 책이라든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을[…]

책방곡곡 부산 영도 손목서가 1편 ㅡ 어른이 되어 어린이책을 읽다
유진목 외 / 2019-04-01
에덴으로 보내는 편지 / 김규리

[제14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수필]     제14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 에덴으로 보내는 편지     김한세(김규리)           에덴으로, 딸에게     작년은 내가 처음으로 너를 자각했던 때란다. 지상에 떨어진 내가 낙원에 있을 너를 느낀다는 건 곧 내 존재가 그만큼 상처입고 불안정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겠지. 환경에 종속된 인간은 그를 둘러싼 세계가 위태로워지고 휘청거리는 순간에야 비로소 자신 존재의 오롯함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야. 용서를 하나 구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를 자각했던 그 순간에 편지를 보내지 않았어. 내가 두려웠던 탓이야. 그 어떤 생각도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고 심지어 일종의 박탈감마저 느끼는 상황에서 내가 이성을[…]

에덴으로 보내는 편지
김규리 / 2019-04-01
4월호 / 강호연

[커버스토리]   ※ 기획의 말 2019년 커버스토리에서는 웹툰, 사진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을 모시고, 《문장 웹진》 과월 호 수록작 중 1편을 선정해 시각화 해주시기를 요청 드렸습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수퍼 수퍼 드라이     강호연           장류진,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문장웹진》, 3월호) 중 'DAY 1.'를 동기로 작업. 맥주 맛에 있어서 드라이(Dry)는 스위트(Sweet)의 반대 개념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생맥주가 단맛이 강하며 도수가 약한 반면, 드라이 맥주는 톡 쏘는 쓴맛이 강하며 알코올 농도가 높다 한다.[…]

4월호
강호연 / 2019-04-01
익명대담 5회 – 문단 권력에 대하여 / 김남숙

[익명대담]     익명대담 5회 – 문단 권력에 대하여     ㅇ 기획 : 《문장웹진》 청년 작가 간사(김남숙 소설가, 양안다 시인)               김남숙과 양안다는 혜화에서 만났다. 익명대담이 진행되면서 계절이 세 번이 바뀌었다. 변한 게 있었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변한 것은 없고 그저 벌써 5회째 진행 중이다. 등단제도, 편집 시장, 평론가의 역할, 문단 권력까지. 예민한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익명임에도 많은 말들을 걷어냈다. 그들이 친절한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지나치게 친절하고 누군가는 지나치게 불편하고 불친절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김남숙과[…]

익명대담 5회 - 문단 권력에 대하여
김남숙 / 2019-04-01
수선화 피는 망월28-2번지 외 1편 / 조성국

[신작시]     수선화 피는 망월28-2번지     조성국           1 늦눈 내린 북향에 한데 뭉쳐져 감싸듯이 희게 빛나서, 푸근한 무덤 앞 어매가 심었다는 수선화 촉에 금이 벌어졌다 벌어진 금으로 틈 생겨 땅거죽이 열렸다 좀 더 넓은 넓어서 좀 더 낳은 세상으로 가는 통로와 같이 어매의 수선화가 한껏 피었다       2 술 한 잔 치다가 막소주 한 모금에도 금세 붉어지는 얼굴이 문득 생각나 묏등에 쑤실쑤실 욱은 잡초 솎는데, 묘비명 읽던 딸애 눈동자 호동그레진다   매 맞고 불로 지져진 듯이 그을린 자국의 웃통을 드러낸 채 가까스로 왼눈동자[…]

수선화 피는 망월28-2번지 외 1편
조성국 / 2019-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