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은 왜 녹색인가 외 1편 / 김신숙

[신작시]     독은 왜 녹색인가     김신숙       언니는 푸르고 왜 멍들어 기어왔을까   어머니 망치를 들고 뛰쳐나가는 아버지를 왜 막아섰을까   뺨을 맞고도 성 한 번 내지 않고 아이들과 조용히 숨어버렸을까   마당으로 나가 계곡을 깨뜨리는 아버지 그 밤   별과 가장 가까워 투명했던 창(窓)들은 모두 별로 내리쳐지고 우리는 별을 피해   감자가 삭삭 숨 쉬는 지하 창고에나 머물렀다   높낮이가 다른 아이들 마음속으로   망치 닮은 감자 한 알씩 쿡 들어와 녹색으로 독(毒) 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날 단단히 깨진 사람은 푸르게 멍든 언니뿐인데[…]

독은 왜 녹색인가 외 1편
김신숙 / 2019-02-01
개에 관한 명상 / 권희철

[문학 더하기+(시)]       개에 관한 명상       권희철         짐 자무시, 〈패터슨〉, 2017 박솔뫼, 『사랑하는 개』, 스위밍꿀, 2018 권민경,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2018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2017)이 개봉했을 때, 나는 약간 주눅이 들어 있었다. 내가 신뢰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영화가 얼마나 근사한지에 대해 말할 때, 나는 이 영화에서 거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시인들이 좋아한다는데, 그러니까 "〈패터슨〉은 (···) '영화적인 것은 무엇인가'와 '시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아름답고 생기로운 답이라는 걸 온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1)는데,[…]

개에 관한 명상
권희철 / 2019-02-01
우주비행사의 밤 / 강태식

[단편소설]     우주비행사의 밤     강태식           0     그날 캐럴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약간씩 삐걱대는 소파에 앉아 자기 나이가 일흔여섯 살이라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고 전화벨만 울리지 않았다면 자기 나이와 관련된 생각을 계속하면서 한 시간쯤 더 소파에 앉아 있을 작정이었다.     – 여보세요.     거실은 오래전에 버려진 폐광처럼 어두웠고, 커튼 틈새로 비치는 햇빛 속에서 먼지들이 떠다녔고, 아주 작은 소리들이 전부 뼈마디를 두드리는 소리처럼 크게 들렸고······. 캐럴은 전화벨 소리를 처음 듣는 사람처럼 한동안 전화기를 바라보다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 안녕하세요, 테일러 부인.[…]

우주비행사의 밤
강태식 / 2019-02-01
2170년 12월 23일 외 1편 / 성윤석

[신작시]     2170년 12월 23일     성윤석           흐린 겨울저녁인데 죽은 자의 글을 따라가는 앳된 소녀가 롤러스케이트 같은 기계를 타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땅은 좁아졌고 사람들도 줄었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문장도 하늘로 떠올랐다 * All's Well That Ends Well 결과가 좋으면 다 좋아요 공중에서 눈이 내렸다 검은 구름에서 흰 눈은 여전했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구름 위를 한 사내가 바바리코트를 입은 채 걷고 있었다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신인류였다 속도 중력 감정들이 비틀어졌다 우리가 본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여성과 사내들은 주로 공중에[…]

2170년 12월 23일 외 1편
성윤석 / 2019-02-01
마지막 이기성 / 김금희

[단편소설]     마지막 이기성     김금희           그가 없던 출장을 만들어 도쿄행 비행기를 탄 것은 배추밭 때문이었다. 유키코가 "배추밭이 곧 없어진다고 해" 하며 인문동 맞은편 사진을 첨부해 이메일을 보냈고 얼마 뒤 그쪽 대학 동아리에서도 연락이 왔다. 그가 교환학생으로 도쿄에 가서 일구었던 그 밭은 유학생활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이기성은 없었을지 몰랐다. 그리고 그런 그가 없었다면 현재의 많은 부분이 없었을 거였다. 그가 부단히 보태서 마련한 아버지의 개인택시라든가. 아버지는 택시를 그만두면 정리해서 그에게 돌려준다고 했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회사택시를 해온[…]

마지막 이기성
김금희 / 2019-02-01
옛날 귀신 외 1편 / 이민하

[신작시]     옛날 귀신     이민하       죽은 사람이 밤마다 따라왔다 하루 이틀 사흘 나는 눈을 감고 달리다가 백 일이 되던 날 눈을 뜨고 달렸다 천 일이 되던 날 달리기를 멈추었다 발끝에 힘을 주자 나는 날았고 내 발로 꿈속을 걸어 나왔다   #   누나, 자각몽이 뭐야? 내가 우물거리자 아버지는 채널을 돌렸다 커트 머리 엄마와 쌍둥이 동생과 오빠들이 나란히 앉아 납량 드라마를 시청했다 나는 뒤돌아 앉았다 커다란 벽거울 속에서 여섯 개의 뒤통수가 검은자위처럼 마주 보았다 나는 할머니 방으로 뛰었다 마루가 강처럼 깊어서 푹푹 빠졌다 방문을 잠그고[…]

옛날 귀신 외 1편
이민하 / 2019-02-01
패터슨, 웬디, 그리고 이기호 그들의 빛 / 염승숙

[문학 더하기+(소설)]       패터슨, 웬디, 그리고 이기호 그들의 빛 – 이기호, 「최미진은 어디로」,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2018, 문학동네       염승숙             패터슨. 그는 '패터슨 시'의 버스기사이고, 매일같이 시를 쓴다. 패터슨 시에서 살아가는, 일하며 시 쓰는 패터슨 씨. 이 리듬감 있는 문장마저도 영화 에서는 시적으로 차용되고 있다. 패터슨 씨의 특별할 것 없는 그러나 분명히 특별해 보이는 어느 일주일을, 감독 짐 자무쉬는 특유의 성실한 제스처로 직조해 낸다. 눈을 뜨고 아내에게 키스하고 씻고 시리얼을 먹고 스탠리 도시락을 손에 든 채로 회사로 걸어가는 것,[…]

패터슨, 웬디, 그리고 이기호 그들의 빛
염승숙 / 2019-02-01
마리 / 김기홍

[단편소설]     마리     김기홍           내가 아는 한 여자는 말에 미쳐 있다. 어느 정도냐면 말이라면 밥을 먹다가 딸꾹질을 할 정도이다.     작년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TV를 켜둔 채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 집에선 식사 시간에 늘 TV를 켜두곤 했는데, 딱히 식탁에 둘러앉아 나눌 만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TV에 말이 등장하자 그녀가 숟가락질을 멈추더니 화면에 시선을 못 박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말 떼가 무리지어 초원을 달리는 동안 그녀는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말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사자 가족이 버펄로[…]

마리
김기홍 / 2019-02-01
“참되게” ‘집’을 살고 있는가 / 김영임

[문학 리뷰(시)]       "참되게" '집'을 살고 있는가       김영임             예전에 나나와 나는 그런 집에 산 적이 있었다.     (······) 그러니까 ······ 벽 이쪽과 저쪽에 사는 사람들은 각자의 집을 한 개씩 가진 것이 아니고 반씩 나눠 사는 집이었던 거지. 벽 끝에 현관, 벽의 다른 쪽 끝에 화장실이 있는 구조로 현관과 화장실은 오른쪽에 속하기도 했고 왼쪽에 속하기도 했다. 이상하지만 그런 집도, 세상엔 있는 것이다.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에 나오는 "이상하지만 그런 집"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기 위해 앞 페이지들을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참되게” ‘집’을 살고 있는가
김영임 / 2019-02-01
독자모임 – 책방곡곡 제주 시옷서점 2편 – 우리가 맞닥뜨리는 세계의 소설 / 현택훈 외

[독자모임-책방곡곡]   ※ 기획의 말 2019년 독자모임 코너 [책방곡곡]에서는 전국 방방곡곡의 독립서점들을 방문하고, 그 지역의 문인 및 독자의 목소리를 청취하고자 합니다. 각 지역의 문학 생태계와 특수한 현안들이 곳곳에 계시는 독자들에게 서로 공유되어, 사유와 비평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주 시옷서점 2편 – 우리가 맞닥뜨리는 세계의 소설     사회 : 현택훈(시인, 시옷서점 대표) 참여 : 안민승(사진작가), 홍임정(소설가), 김진철(제주대 강사, 동화작가), 허유미(시인), 김신숙(시인), 오승주(인문학 강사, 작가)               현택훈 : 오늘 시옷서점에서 두 번째로 모이네요. 오늘은 홍임정의 소설 『먼 데서 오는 것들』(파우스트,[…]

독자모임 - 책방곡곡 제주 시옷서점 2편 - 우리가 맞닥뜨리는 세계의 소설
현택훈 외 / 2019-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