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면한 인생의 고소미 외 1편 / 김현

[신작시]     근면한 인생의 고소미     김현       주인님 오늘은 출근하며 저도 모르게 말해버렸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우수에 젖어서 바늘로 손목을 흠뻑 찔렀습니다 과연 제게 한이 있을까요 주인님은 한이 있는 사람을 매질하고 싶다고 하셨죠 울음이 없는 사람을요 매미 울고 작은 개 한 마리가 화단을 뛰어 다녔습니다 저는 죽을 결심을 하였습니다 주인님은 싫어하시겠죠 살아 있는 것이 한을 쌓는 것이니까요 핏방울을 꿰뚫어보면 보입니다 저의 밑바닥 숙변이요 냄새는 지독해도 먹음직스러워서 주인님이 제 숙변을 저의 가장 나중 지닌 것으로 여겨 주면 간질이면 해죽해죽 웃었습니다 인간의 우주란 이토록 광활하지요 저는 주인님이 일하고[…]

근면한 인생의 고소미 외 1편
김현 / 2018-11-01
읍니다 외 1편 / 이진희

[신작시]     읍니다     이진희       토끼들이 들판을 지나 갔 에서 나의 받아쓰기는 멈췄습니다 마지막 교시의 세 번째 문장이었습니다   소풍에 나선 나의 토끼들은 지우개의 무차별 공격을 피하느라 고운 꽃이 핀 꽃밭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탁 트인 풀밭에서 놀지 못했습니다 배낭 속 점심은 엉망이 되어버리고 뉘엿뉘엿 마지막 문장이 끝나버렸습니다   그날은 하필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학교에 들른 아버지가 교실 창밖에서 나를 지켜본 날   읍니다에서 습니다로 바뀐 읍니다는 웁니다와 비슷한 말일까요? 학습전과에 제시된 비슷한 말과 반대말을 그대로 의심 없이 외우던 때가 있었습니다   한때 그토록 읍니다였으나 이제는[…]

읍니다 외 1편
이진희 / 2018-11-01
21세기 뷰티풀 엑스라는 변종들 / 전영규

[젊은 비평가 특집]   최근 몇 년 간 한국문학의 흐름은 그야말로 숨이 가쁠 정도였다. 얼마나 많은 사건과 변화가 있었는지 머릿속에서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다. 한국문학은 달라져야 했고, 달라지고 있으며, 또 계속해서 달라져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해도 더 많은 것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고, 수많은 변화의 외침은 지금도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이제 막 자리매김한 '젊은' 비평가들에게 한국문학에 관한 자유로운 글을 부탁했다. 이들의 글 속에서 꿈틀대는 변화에 대한 열망과 관습을 비트는 다른 시선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목소리들이[…]

21세기 뷰티풀 엑스라는 변종들
전영규 / 2018-11-01
사적 기억의 역사, 그 사소함의 윤리 / 이병국

[젊은 비평가 특집]   최근 몇 년 간 한국문학의 흐름은 그야말로 숨이 가쁠 정도였다. 얼마나 많은 사건과 변화가 있었는지 머릿속에서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다. 한국문학은 달라져야 했고, 달라지고 있으며, 또 계속해서 달라져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해도 더 많은 것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고, 수많은 변화의 외침은 지금도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이제 막 자리매김한 '젊은' 비평가들에게 한국문학에 관한 자유로운 글을 부탁했다. 이들의 글 속에서 꿈틀대는 변화에 대한 열망과 관습을 비트는 다른 시선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목소리들이[…]

사적 기억의 역사, 그 사소함의 윤리
이병국 / 2018-11-01
흰 죽 외 1편 / 김경후

[신작시]     흰 죽     김경후       심장이 하얀 새가 날고 있어 여기, 이것 봐 아이는 차가운 숟가락을 휘적대고만 있다   반 친구들은 스키 타러 간대 펑펑 눈송이 쏟다 얼었다 다시 녹아 흐르는 동안 점점 말갛게 묽어 가는 흰 죽 다 식은 죽   심장이 하얀 새는 너무 멀리 가는 새 이것 봐 누군가 가리킨다 텅 빈 침대 투명하게 남은 날갯자국들   창밖엔 활강하며 쏟아지는 흰 죽 냄새 나는 벚꽃들                           원룸전사    […]

흰 죽 외 1편
김경후 / 2018-11-01
Cafuné / 구효서

[단편소설]     Cafuné     구효서       *     당신을 본 순간 저는 욕조가 갖고 싶어졌습니다.     욕조라니요. 처음 본 사람에게서 욕조 같은 것을 떠올리다니, 기괴하지 않나요. 그날 고마신사의 어떤 부분이 욕조를 연상케 했을까요. 당신의 어깨 뒤로 신사의 처마 끝이 보였을 거예요. 그랬더라도, 그런 걸 떠올렸대도 갖고 싶다는 데까지 생각이 가 닿지는 않을 텐데, 그랬습니다. 당신을 본 순간 저는 욕조가 갖고 싶어졌어요.     봄이었고 이루마 시 경계의 고마신사에는 벚꽃이 피었고 버드나무 가지가 연록으로 물들었습니다. 그곳에 당신이 있었지요. 행사의 진행을 맡을 임원 두 사람과 함께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Cafuné
구효서 / 2018-11-01
인터뷰 – ‘랩’소디 인 블루: 여섯 개의 트랙 / 이민하

[기획-인터뷰]     '랩'소디 인 블루: 여섯 개의 트랙 ― 컨소울이라는 장르     이민하           어떤 실험은 자신의 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즉흥적으로 쏟아 내는 몸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기록하는 것이 실험의 전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만난 래퍼 컨소울은 컨소울 자신의 음악실이자 실험실이다. 그러니까 1992년 11월에 태어난 그는 딱 26년짜리 몸 안에 작업실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문 앞에는 'Konsole'이라는 문패를 걸어 두었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작업실은 한 평 한 평 평수가 늘어날 것이다.     컨소울을 만난 건 10월 1일, 우리 동네 '아나키브로스(Anarchy Bros)'에서였다.[…]

인터뷰 - ‘랩’소디 인 블루: 여섯 개의 트랙
이민하 / 2018-11-01
부드러운 것들 / 오현종

[단편소설]     부드러운 것들     오현종           왜 이제 내 이야기는 안 써.     윤호가 물었다.     잊어버렸어.     나는 그렇게 답했다. 술에 취한 사람에게 진심을 맨손바닥처럼 펼쳐 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헤어진 지 오래된 사람에게. 잊었다는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는 대꾸가 없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었지, 나는 머릿속으로 셈해 보았다. 금요일 밤, 아니 자정 무렵 누웠으니 토요일 새벽일 테다. 금요일 누군가와의 술자리. 자정 너머 전화. 모든 일들이 한번에 이해되었다.     술을 또 많이 마셨나 봐.     그렇게 많이 마시진 않았어. 이제 막[…]

부드러운 것들
오현종 / 2018-11-01
원피스인문학 ― 와포루, 빅 맘, 사카즈키, 호디와 ‘악’ / 권혁웅

[기획-원피스인문학]     "실체가 없는 공허한 적이다" ― 와포루, 빅 맘, 사카즈키, 호디와 '악'     권혁웅           1     연일 무서운 뉴스가 쏟아진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 이웃들을 잔인하게 해쳤다는 소식들이다. 전남편이 아내를, 혼자 된 남자가 헤어진 연인과 그 가족을, 예비신랑이 예비신부를, 고등학생이 이웃집 소녀를, PC방 손님이 아르바이트생을 무참히 살해했다. '치정'이나 '원한', '심신미약'과 같은 말이 범행동기 칸에 적히겠지만 그것은 원인이 아니라 벌어진 일의 '알 수 없음'에 대한 분식(粉飾)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희생자들이 지금의 처지로 자신을 내몰아서, 평소 자신을 무시해서, 1000원을 돌려주지 않아서, 심지어는 그저 호기심으로 죽였다고 말한다.[…]

원피스인문학 ― 와포루, 빅 맘, 사카즈키, 호디와 ‘악’
권혁웅 / 2018-11-01
미래진행 외 1편 / 최백규

[신작시]     미래진행     최백규           거리의 흰 여름은 해변 끝에서 밀려왔다 쓸려가고       지구가 있다       무사히 열대를 건축할 때마다 게스트하우스에 칠해져 바닷물만 나누어 먹는 미성년들 하나의       우리는 열사병이다     이국의 해수욕장에서 죽음을 연습하고     낯선 중앙선을 따라 교복의 맥박으로 휘청거리다 헤드라이트에 머리카락 적셔지듯 끝나지 않을 방학이다     이곳이 장마       신기루로 푸릇하면 인생에서 무중력만 골라 아름다울 수 있다       우주가 돌아서 슬프다       늙어도 힙합이나 아이돌을 좋아할 수 있을까 미래학자는 영원히 미래학자인가     더 이상 추하고[…]

미래진행 외 1편
최백규 / 2018-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