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를 보는 이유 외 1편 / 문보영

[신작시]     가구를 보는 이유     문보영       명암을 넣기 전에 형태를 바로잡아 주세요. 그림 선생은 빠진 앞니의 형태를 바로잡으며 너에게 말한다. 빠진 앞니의 인간은 철봉에 매달린 채 웃고 있다. 그 옆에는 개가. 길을 잘못 들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흰 개가, 매달린 채 웃는 인간을 올려다보고 있다. 회피적인 꼬리를 흔드는 그것은. 무엇이든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형태가… 그림 선생은 더러워진 지우개를 갈색 앞치마에 문대고. 그것을 빠진 앞니에 갖다 댄다. 끝까지 안 보시는군요, 당신은. 어디까지 봐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지요. 철봉의 형태는 직접 고쳐 보세요. 너는 더[…]

가구를 보는 이유 외 1편
문보영 / 2018-06-01
다시하자고 / 임솔아

[단편소설]     다시하자고     임솔아           다시 하자고 지은이 말했다.     “이걸 세워야겠어.”     지은은 침대를 가리켰다. 옆방에서 건너오는 소음을 줄이려면 매트리스를 벽에 세워 놓아야 한다고 했다. 바닥에서 자면 내 허리 통증도 완화될 거라 했다. 빗소리를 들으며 자고 싶다며 침대를 오른쪽으로 옮겼는가 하면, 화장실에서 먼 곳에서 자는 것이 풍수에 좋다며 왼쪽으로 다시 옮겼다. 배우의 일상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서는 침대를 방 한가운데로 옮겼다. 드넓은 전면 창을 바라보며 배우는 기지개를 켰다. 드넓은 방 한가운데에 드넓은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 침대가 우리 방보다 넓어 보였다. 이 방에서[…]

다시하자고
임솔아 / 2018-06-01
거짓말 외 1편 / 이린아

[신작시]     거짓말     이린아       희망하는 것들을 거울에게 몽땅 들켰을 때 너와 나 둘 중 누가 깨져야 하니.   우리는 지금 거울에 들킨 거니? 마주 보는 것들은 믿을 수 없어. 거울 속 반대를 약속장소에 내보낸 거니. 나의 거울에 묶어 둔 네 왼뺨이 내 오른뺨이라 우기면서 우리는 얼룩말의 붕대를 풀어 각인刻印을 새긴 거니.   딱 반만 붕대를 감고 있는 얼룩말을 보러 거울 속 동물원에 갔었지. 한 번도 트럼펫 소리가 나지 않는 트럼펫 피시를 잡으러 바다에 갔었지. 트럼펫 피시의 오해와 아말감의 이빨 자국과 서로의 미간을 들이키고 얼룩을[…]

거짓말 외 1편
이린아 / 2018-06-01
원피스인문학 – 고고학자 로빈과 ‘실재’ / 권혁웅

[기획-원피스인문학]     “내겐 너희들이 모르는 어둠이 있어” – 고고학자 로빈과 ‘실재’     권혁웅           1.     밀짚모자 일당 가운데 가장 신비에 싸인 인물은 로빈일 것이다. 루피에게 최초의 패배를 안긴 적이 칠무해 중 하나인 크로커다일인데(루피는 모래인간 크로커다일에게 물기를 뺏겨, 말 그대로 미라가 되어버린다), 로빈은 크로커다일의 파트너였다. 그녀는 크로커다일이 설립한 비밀조직 바로크 워크스의 조직원으로 『원피스』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조직은 회사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상 국가를 세우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비밀스러운 결사체였다. 조직원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고 코드네임으로 불리며, 그중에 최고위 간부들은 ‘미스터 + 넘버’(남자 사원들의 경우),[…]

원피스인문학 - 고고학자 로빈과 ‘실재’
권혁웅 / 2018-06-01
지속과 유예 / 천희란

[단편소설]     지속과 유예     천희란           깨진 유리파편이 튀어 올라 눈동자에 박히면 그 눈으로는 무엇을 보게 될까. 여자는 생각했다. 광역버스 한 대가 정류장을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던 승객들이 우르르 버스 앞머리로 몰려갔다. 버스의 뒷문은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이른 아침 시각 여자가 버스를 타는 정류장에서 사람이 내리는 일은 흔치 않았다. 여자는 바닥에 발을 지치며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계단을 오르던 갈색 하이힐 한 짝이 도로로 굴러 떨어졌다. 곧바로 길이가 다른 두 다리가 절룩대며 계단을 내렸다. 줄지어 서 있던 사람들이 원을 만들며 뒷걸음질을 쳤다.[…]

지속과 유예
천희란 / 2018-06-01
모눈종이 외 1편 / 박은영

[신작시]     모눈종이     박은영       나는 한 칸으로 눈을 떴다   일흔두 칸을 검게 칠한 할머니의 눈이 오목했다   히말라야 인들은 첫 칸과 마지막 칸, 딱 두 번 초를 켠다는데 나는 한 칸에 한 번씩 생일초를 켰다 고깔모자를 쓴 엄마가 캄캄한 창문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공포는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곤 했지만 그건 모두 네모 안의 일   또, 사각팬티야?   나는 선물상자를 머리에 뒤집어썼다 할머니의 눈에서 네모 난 바람이 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같은 간격의 말이 빠져나왔다 먹구름 낀 거리, 나는 미움과 마음 사이의 미음을 생각하며 보도블록을[…]

모눈종이 외 1편
박은영 / 2018-06-01
독자모임-언제나 다층적인 읽기를 위한 좌담 5 / 김주선 외

[기획 – 문장웹진 독자모임]     언제나 다층적인 읽기를 위한 좌담 5     참여 : 김주선(사회, 문학평론가), 김영삼, 송민우, 이다희, 이서영             김주선 : 다섯 번째 《문장 웹진》 좌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에 다룰 작품은 지혜의 「개명」(《문장 웹진》 4월호), 김수온의 「한 겹의 어둠이 더」, (《문장 웹진》 5월호), 정지우의 『정원사를 바로 아세요』(민음사, 2018)입니다. 지혜 작가의 「개명」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개명」을 즐겁게 읽었습니다. 화자의 기억에 등장하는 연인이 관성적인 만남을 이어 가고 있는데요. 남자 캐릭터가, 며칠 전 금정연 서평가에게 들은 말인데, ‘예술맨’적인 기질을 갖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다희 :[…]

독자모임-언제나 다층적인 읽기를 위한 좌담 5
김주선 외 / 2018-06-01
바깥의 세계 외 1편 / 변선우

[신작시]     바깥의 세계     변선우       발작이 입술처럼 흩어지는 대낮이었다 공장과 놀이공원이 다소 빗장을 걸었을 뿐 인류의 건강과 토양이 무언가에게 잠식당하는   *   자본주의를 쏙 빼닮은 남매가 있었다. 사탕을 얻어먹기 위해 토마토 짓밟으며 아양을 떨었다. 사탕 한 알에 키스. 사탕 두 알에 삽입하거나 삽입당하거나. 어른의 입맛을 그렇게 배웠다. 남매는 알사탕을 빼곡하게 물고 있었다. 혹시 허니 브레드라고 알고 있는가? 어른들이 뱉고 간 물음의 형태를 꼭 쥐었다. 남매는 머리 위에 유리접시를 두고 앉았다 일어났다, 를 반복했다. 일종의 훈련이었고 접시에 새겨진 무늬가 흘러내릴 때마다 남매의 안면근육은 땀구멍을[…]

바깥의 세계 외 1편
변선우 / 2018-06-01
초록코트 아줌마 / 임어진

[글틴스페셜 – 동화]     초록코트 아줌마     임어진               골목 끝 작은 집에 초록코트 아줌마가 살고 있었어. 아줌마는 수요일마다 인형가게에 갔어.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서 만든 인형들을 갖다 주고 새 일거리를 가져오는 거지. 아줌마는 인형 만드는 사람이었거든.     “인형들 얼굴이 모두 똑같네요.”     인형가게 주인이 아줌마에게 말했어. 전에는 그렇지 않았거든. 그래서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는 말하지 않았어. 아줌마도 묻지 않았지.       아줌마는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았어. 사람들과 나눌 말이 이상하게 잘 생각나지 않았거든. 집 밖으로도 잘 나오지 않았어. 일거리를 가지러 큰길 인형가게에[…]

초록코트 아줌마
임어진 / 2018-06-01
연애의 감정학 / 백영옥

[단편소설]     연애의 감정학     백영옥             1.         태희가 종수와 헤어진 건 1년 2개월 전이었다.     태희에겐 세 번째 이별이었다.     이별이 힘든 이유는 매번 늘어났다. 첫 번째 이별은 재수를 고려할 때라 그랬고, 두 번째 이별은 입사 후 첫 프로젝트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세 번째 이별에는 복병이 찾아왔다. 활짝 핀 목련과 흩날리는 벚꽃을 바라보며 세상 밖 풍경과 마음속 계절이 이렇게 달라도 되나 싶었다. 퇴근 길 지하철 플랫폼에서, 회사명이 적힌 설악산 워크숍 깃발 아래에서 “딱 한 발만 내딛으면 이대로 갈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연애의 감정학
백영옥 / 2018-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