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 콤플렉스 / 김태호

[글틴 스페셜 – 동화]     선녀 콤플렉스     김태호               좁은 거실, 창가 구석이 엄마의 자리다. 고개를 떨군 스탠드 밑에 붉은색 나무 소반이 있고, 소반 위에는 반짇고리가 놓여 있었다. 엄마는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이는 그 자리에 앉아서 늘 손바느질을 했다.     “실을 길게 꿰면 게으르고, 멀리 시집을 간대. 엄마가 그래서 이렇게 멀리까지 왔나 보다.”     엄마가 바느질하던 손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파란색 하늘이 아니라 그 너머 어딘가를 보는 듯한 아련한 눈빛이었다.     “얼마나 먼 데서 왔는데?”     엄마의 무릎을 베고 있던 동생 벼리가[…]

선녀 콤플렉스
김태호 / 2018-05-01
한 겹의 어둠이 더 / 김수온

[단편소설]     한 겹의 어둠이 더     김수온           해가 저문다. 소리가 사라지고 바람이 멎는다. 온갖 먼지가 차분히 가라앉는다. 매번 같은 자리에 운반되어 쌓인다. 땅은 좀 더 단단하고 견고해진다. 일련의 성장이 진행되어 간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이다. 밤은 매일 찾아온다. 몇 겹으로 된 어둠을 몰고서 온다. 늘 홑겹의 악몽을 동반한다. 때에 따라 불면이 된다. 그래서 어떤 밤은 길고 깊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있다. 어떤 빛도 산을 넘어오지 못해서 마을은 온전하게 고립되어 있다. 마을을 밝힌 빛이 한 겹씩 덮인다. 유일하게 남아 있던 빛마저 어둠이 된다. 일곱 번째[…]

한 겹의 어둠이 더
김수온 / 2018-05-01
오래 자란 아이 외 1편 / 배수연

[신작시]     오래 자란 아이     배수연       내게 날개가 있다면 그 날개를 고치겠어 내게 자전거가 있다면 그 자전거를 고치겠어 만일 선풍기가 있다면-   오래 자란 뒤   내게 말을 거는 것들에게 나는 많은 것을 물었다고 많은 것이 변했지 그런 날들은 많은 것을 사랑했던 하얗고 부드러운 가시 고양이 입가에서 웃으며 길고 가늘게 흔들렸다고   지구는 네 계절의 선풍기니까 * 푸른 얼굴 위로 흰 날개 돌아가고 자전거의 동력으로 회전하는 그곳에서 함께 흔들리면서 “나는 많은 것을 고쳤어요.”라고 입이 있다면     *  박민재의 미발표 소설 「지구 선풍기」    […]

오래 자란 아이 외 1편
배수연 / 2018-05-01
물구두와 달 외 1편 / 신영배

[신작시]     물구두와 달     신영배       구두가 나에게 달을 설명하고 있었다 또각또각 어딘가를 열고 있었다   당신은 떠나며 다리를 둥글게 말았다 달이 뜨지 않고 달에게 던진 말들도 뜨지 않는 창가에서 다리는 어두워졌다   꿈에서 달, 달이 책상 위에 앉았다 말을 건질 때마다 책상이 출렁였다 달이 옷걸이에 걸렸다 말을 벗느라 안간힘을 쓸 때 옷걸이엔 내 비틀린 사지가 걸렸다 물이 뚝뚝 떨어졌다   구두가 여전히 나에게 달을 설명하고 있었다   당신은 어둡고 멀고 둥글다   당신과 나의 간격엔 달빛 달빛엔 강이 흐르고 나도 둥글게 만 다리를 안고[…]

물구두와 달 외 1편
신영배 / 2018-05-01
고무인간 루피와 ‘연장(延長)’ / 권혁웅

[기획-원피스인문학]     “몸이 또 늘어났다!” ― 고무인간 루피와 ‘연장(延長)’     권혁웅           1.     오늘은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 얘기다. 어렸을 때 해적 빨간 머리 샹크스가 적에게서 빼앗은 악마의 열매를 멋모르고 먹어서 능력자(악마의 열매를 먹은 자를 이렇게 부른다)가 되었다. 악마의 열매를 먹으면 그 열매에 해당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악마의 열매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가 자연계 열매다. 자연계 열매를 먹으면 빛, 불, 얼음, 지진 등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이나 현상으로 변신할 수 있으며, 무장색 패기를 통한 공격 외에는 일체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강력한 능력을 얻게 된다. 둘째가[…]

고무인간 루피와 ‘연장(延長)’
권혁웅 / 2018-05-01
추후의 세계 / 염승숙

[단편소설]     추후의 세계     염승숙           손님도 없고 해서 티백 하나를 꺼냈다. 커피를 마실까 했지만 날도 찌뿌듯하니 히비스커스를 골랐다. 찻잔 밖으로 끈을 늘어뜨리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달아오르듯 이내 붉게 우러나는 찻물을 바라보았다. 딱히 시간을 재진 않고 적당히 붉어졌다 싶을 때 즈음 티백을 건져냈다. 오디오의 볼륨을 높이고 찻잔을 손에 쥔 채 창 가까이로 다가갔다. 겨울이고 종일 구름이 많았다. 히터가 가동되고 있는데도 어깨를 에워싸는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쏟아지겠는걸…… 중얼거리며 한 모금 마셨다. 뜨끈한 것이 혀끝에 닿았다가 목을 타고 내려갔다. 얼마 전 내린 눈이 미처 다[…]

추후의 세계
염승숙 / 2018-05-01
제13회 문장청소년문학상 대상-틸란드시아 / 마소현

[제13회 문장청소년문학상 대상상 수상작/소설]     틸란드시아     속도(마소현)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의 안에 살았다. 그는 내가 밖으로 나올까 봐 언제나 전전긍긍하며 나를 숨겨두었다. 나는 절대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그가 나를 눈치 챘을 때 그는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영원히 떼어놓을 수도, 분리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걸. 나는 꽃을 피워낼 날을 고대하며 그의 안에서 조용히 줄기를 뻗고 있었다. 나는 그의 일부였고, 그는 나였다. 우리는 온전히 하나였다.       *       아줌마가 음료수 잔을 건네주었다. 오렌지 주스였다. 거실에 앉아 티비를 보며 나는 누나를, 아줌마는[…]

제13회 문장청소년문학상 대상-틸란드시아
마소현 / 2018-05-01
제13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최우수상-연극이 끝나기 전에 / 윤예원

[제13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최우수상 수상작/수필]     연극이 끝나기 전에*     윤별(윤예원)           어쨌든 공연은 올려야 한다. 그게 이학년들끼리 비상회의를 소집해 나온 결과였다. 축제까지는 이제 고작 이 주밖에 남질 않았고, 원래대로라면 소품까지 전부 준비되어 들고 동선을 맞춰야 하는 시점이었다. 박스도 몇 번만 더 주우면 그만 주워야 할 정도로 꽉꽉 차 있어야 했다. 그러나 대본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은 전년도 축제를 준비한 입장에서 보자면 축제에 공연을 올리고 싶기는 한 건지, 귀신의 집을 운영하려고 하는 건 맞는 건지 의문을 품기 충분했다.     저녁에 삼학년 선배들이 내려왔다. 동아리 시간에 삼학년 기장[…]

제13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최우수상-연극이 끝나기 전에
윤예원 / 2018-05-01
진술인 / 유재영

[단편소설]     진술인     유재영       1       그 무렵 새벽 5시면 눈이 떠졌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와 식탁 의자에 앉아 있다가 냉장고에 있는 찬으로 간단히 허기를 채우곤 했지요. 그날은 일요일이었으므로 출근 준비 대신 텔레비전을 틀었습니다. 현관 벨이 울릴 때만 해도 텔레비전에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찰입니다. 이정운 씨 좀 뵈러 왔는데요.”     경찰이란 말에 놀란 나머지 보안 줄도 걸지 않고 문을 열었죠.     “무슨 일이시죠?”     “회사 일 때문에 왔습니다. 이정운 씨 안에 계시죠?”     경찰은 정운의 이름을 재차 확인하며 문틈으로 한 발짝 다가왔습니다. 짧은 시간에[…]

진술인
유재영 / 2018-05-01
변양 외 1편 / 이서하

[신작시]     변양     이서하       서북부 연안의 작은 나라에 살던 왕의 아들은 왕이 된다   어느 날 길을 걷던 어린 왕은 우연히 생기로 가득한 올리브나무 숲을 보았다   한 곳을 보며 걸어가는 사람처럼 어떤 그리움도 슬픔도 없는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은 나무의 일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주변이 되는 것은 시의 일이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주변으로 만들고 우리는 서로 다른 모종의 역사를 가졌으니   네가 걸으면 모두가 뒤를 따를 것이며 광활한 초원은 죽음의 무도가 될 것이다   그것은 올리브의 예언이자 부왕의 유언이었다   스무[…]

변양 외 1편
이서하 / 2018-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