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의 방 외 1편 / 김재근

[신작시]     장마의 방     김재근       여긴 고요해 널 볼 수 없다 메아리가 도착하려면 아직 멀기에 당신의 방은 침묵을 기다린다 시간의 먼 끝에 두고 온 목소리 하나의 빗소리가 무거워지기 위해 빗소리는 얼마나 오랜 침묵을 배웅하는지 몸 안에서 몸 바깥을 들여다보는 고요를 거슬러 오르는 눈동자 아직 마주친 적 없어 침묵은 떠나지 않는 것이다 말없이 서로의 몸을 찾는 일 말없이 서로의 목을 매는 일 빙하에 스미는 물소리처럼 여린 식물의 초록 잠 속처럼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기에 당신의 몸은 빗소리를 모은다            […]

장마의 방 외 1편
김재근 / 2018-04-01
원피스인문학-삼두인간 바스카빌과 '변증법' / 권혁웅

[기획-원피스인문학]     “셋이 붙어 있었던 것뿐인가? 무슨 이유로?” “단짝이지롱” ― 삼두인간 바스카빌과 ‘변증법’     권혁웅             1.     『원피스』가 상정한 지구 표면은 대부분이 바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바다를 가로질러 지구를 감싸는 육지를 레드 라인(Red Line)이라 부르고, 레드 라인과 직각으로 놓인 항로를 그랜드 라인(위대한 항로, Grand Line)이라 부른다. 두 라인에 의해 바다는 넷으로 분단되어 있으며(각각 이스트 블루, 사우스 블루, 노스 블루, 웨스트 블루라 불린다), 이스트 블루와 사우스 블루로 이루어진 쪽 표면을 그랜드 라인의 전반부, 노스 블루와 웨스트 블루로 이루어진 쪽 표면을 그랜드 라인의 후반부 또는[…]

원피스인문학-삼두인간 바스카빌과 '변증법'
권혁웅 / 2018-04-01
나의 기린에게 외 1편 / 김지녀

[신작시]     나의 기린에게     김지녀       “등 좀 긁어 줘” 나에겐 닿지 않는 곳이었다   좋아하는 목소리는 아니지만 나는 고분고분했다   “거기 말고 그래 거기 아니 더 옆에”   잘 찾지 못하는 목소리는 한 마리 개처럼 누워 혀만 날름거린다   ‘너에게도 닿지 않는 곳이었구나’   갈증이 났다 한 달도 넘게 물 한 모금 안 마실 수 있는 인내가 내게는 없는데 좋아하지 않는 목소리를 들으며 지낸 저녁들은 목이 길어져 휘어지려 한다   긴 혀로 자신의 귓속을 청소하는 기린에게 저녁은 풀냄새가 귓속에 가득한 시간 긁지 않아도 시원한[…]

나의 기린에게 외 1편
김지녀 / 2018-04-01
동그란 말 / 강석희

[단편소설]     동그란 말     강석희           라디오를 들었다.     오늘 밤. 하늘에는 특별한 달이 뜬다고 합니다. 아주 크고 둥근 달이 보일 거라고 하네요. 크고 둥근 것은 아름다우니까 그걸 보는 일은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위로해 줄 거라고, 밤이 되면 우리는 조금씩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바라면서 이 오후를 보냅니다.     디제이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나는 그의 말처럼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생각했다. 오후의 햇살이 맺혀 있던 천장에 여러 가지 질문이 밀려 들어왔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동그란 말
강석희 / 2018-04-01
목련탕약 외 1편 / 유형진

[신작시]     목련탕약(木蓮湯藥)     유형진       목련 꽃망울이 가지 맨 끝 솜털 속에 자고 있다 이 아파트 단지엔 목련이 유난히 많다 목련꽃이 툭, 툭, 떨어지는 계절이 되면 온 천지에 탕약 달이는 냄새 집 안에 시름시름 앓고 있는 폐병 환자가 있는 듯   잎도 없이 알몸으로 봄을 앓는 목련이 흰 촛대 같은 꽃망울을 들면 마침내 뿌리 끝 탕기에 불이 오른다 검게 젖었던 탕기는 차츰 달구어지다 가장 서럽게 어두운 날, 마당 가장자리에 놓인 곤로 탕기 위 훈김에 서성이는 봄눈들이 어디로도 내려앉지 못하고 증발해 버리는, 가보지도 않은 북유럽 어느[…]

목련탕약 외 1편
유형진 / 2018-04-01
개명 / 지혜

[단편소설]     개명     지혜           회색 가림막 위로 큼지막한 문구가 쓰여 있었다.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정류장 맞은편에 자리 잡은 백화점의 증축 공사 때문인지 도로는 어수선했다. 대기 행렬이 터미널 정문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서둘러 줄을 섰다.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정류장은 북적였다. 백화점은 주변의 야트막한 건물과 달리 높고 화려했다. 가로등마다 지난 시즌의 세일을 알리는 광고 현수막이 펄럭였다. 현수막 너머 ‘좋은’과 ‘모습’이 번갈아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마치 백화점이 시민들에게 크게 잘못한 일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택시 한 대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나는 뒷좌석에 타 식장[…]

개명
지혜 / 2018-04-01
독자모임-언제나 다층적인 읽기를 위한 좌담 3 / 김주선 외

[기획 – 문장웹진 독자모임]     언제나 다층적인 읽기를 위한 좌담 3     참여 : 김주선(사회, 문학평론가), 김영삼, 송민우, 이다희, 이서영           김주선 : 세 번째 《문장 웹진》 좌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에 다룰 작품은 우다영의 「노크」(《현대문학》 3월호), 이주혜의 「아무도 없는 집」(《창작과비평》 2018 봄호), 현대문학 핀 시리즈로 나온 양안다의 첫 시집 『작은 미래의 책』(현대문학, 2018)입니다. 먼저 우다영 작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제가 읽기에 이 소설은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키는 장르적 매력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집중해서 따라 읽다 보면 기이하고 낯선 두려움 속에서 어떤 긴장감을 계속 느끼게[…]

독자모임-언제나 다층적인 읽기를 위한 좌담 3
김주선 외 / 2018-04-01
CHTO DELAT에서 옥인 콜렉티브까지 / 이수정

[비평in문학]       ‘여성, 노동’같은 전통적인 주제에서 시작해 ‘문체, 주체’와 같은 비평 키워드나 ‘번역, 상호텍스트성’같은 문학적 키워드, ‘환상, 무의식’같은 인접학문 그리고 ‘빅데이터, 가상현실’같은 미래용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문학의 키워드는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비평in문학]의 새로운 비평 기획입니다.     광장, 거리, 미술관과 인터넷. 그 어디에서든 존재하는 예술가들의 실천     이수정             최근 우리 사회의 주요한 현안으로 대두된 ‘미투(me too)’ 운동과 관련해서 대표적 가해자로 지목된 예술가들이 여러 분야의 사람이 함께 작품을 만드는 것이 보편적인 연극이나 영화에서 먼저 터져 나왔다. 영화나 연극 모두 한 사람의 힘으로[…]

CHTO DELAT에서 옥인 콜렉티브까지
이수정 / 2018-04-01
마리아주 외 1편 / 조동범

[신작시]     마리아주     조동범       당신의 반지는 모든 약속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불현듯 사랑이 시작되는 것처럼, 잊을 수 없을 미래는 어느덧 펼쳐집니까. 예언서에 당신의 음성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신성의 모든 날들은 오늘을 예비하고자 당신을 기원합니다.   나는 당신의 음성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래전의 기억처럼 형체를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문을 열면 나와 당신의 배후는 보다 선명해지려 합니다. 당신의 배후로부터 상류는 비롯되고,   나의 배후는 어느새 바다를 예비하려고 합니다. 기착지마다 폭풍은 몰려오고 사라지고, 종착지를 향하는 길목마다 짝을 이룬 기쁨과 슬픔, 평화와 갈등은 그러나 하나의 영토 안에서[…]

마리아주 외 1편
조동범 / 2018-04-01
인터뷰-패션모델 박민지 “모델은 비어 있는 육체, 요즈음의 아름다운 것들을 거기 채워 넣는 일” / 박민정

[기획 – 인터뷰]     패션모델 박민지 “모델은 비어 있는 육체, 요즈음의 아름다운 것들을 거기 채워 넣는 일” 인터뷰 일시: 2018년 3월 5일     소설가 박민정       * 코너 소개: 소설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인물을 취재하고, '팩트'와 '디테일'을 확보해서 그것을 변주할까? 본 코너에서는 소설가가 작품을 쓰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취재했던 직업인을 만나 작품 속 특정 직업에 대한 묘사와 소설을 쓰게 된 경위를 이야기한다.            작년에 출간한 소설집 『아내들의 학교』의 표제작인 「아내들의 학교」를 구상하던 2013년 여름, 나는 친동생에게 몇 차례 자문을 구했다. 「아내들의 학교」에는 동성혼 합법화가 이루어진[…]

인터뷰-패션모델 박민지 “모델은 비어 있는 육체, 요즈음의 아름다운 것들을 거기 채워 넣는 일”
박민정 / 2018-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