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독성에 관하여 / 윤경희

[비평in문학]       ‘여성, 노동’같은 전통적인 주제에서 시작해 ‘문체, 주체’와 같은 비평 키워드나 ‘번역, 상호텍스트성’같은 문학적 키워드, ‘환상, 무의식’같은 인접학문 그리고 ‘빅데이터, 가상현실’같은 미래용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문학의 키워드는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비평in문학]의 새로운 비평 기획입니다.     가독성에 관하여     윤경희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따금 사용하는 상투어들 중 하나는 가독성이다. 그런데 가독성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가독성의 뜻을 “인쇄물이 얼마나 쉽게 읽히는가 하는 능률의 정도. 활자체, 글자 간격, 행간(行間), 띄어쓰기 따위에 따라 달라진다”2)라 풀이한다. 거기에 “대체로 가로쓰기가[…]

가독성에 관하여
윤경희 / 2018-03-07
허블 외 1편 / 안웅선

[신작시]     허블 – 반사경의 지름     안웅선       나는 여전히 나를 탓하며 나를 망치고 있습니다   그 여름밤 내가 놓쳐버린 별똥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번의 보정을 거치고야 한 장 손에 쥐게 되는 사진 한 달 이상 어둠에 버려둔 눈으로   시간에 속기 위해 우주를 향해 굳게 편 십자가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나선들과 서넛쯤 많은 희미한 타원들과 사라져 간 백하고도 삼십억 년 전의 빛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일은 그만 멈추려고 했지만 홀로 남은 거울 위에서 빛은 빛으로 남기 위해 온몸으로 부서지는 중이고   날카로운 빛의[…]

허블 외 1편
안웅선 / 2018-03-01
흰 비둘기 아파트 외 1편 / 고형렬

[신작시]     흰 비둘기 아파트     고형렬       오랜만에 찾아온 그 아파트는 따뜻하였다 양평에선 광열비가 무서워 이불 속에서 장자를 읽고 여행을 간다 십 년   파란 하늘 아래 어느 낯선 이의 한 구절이 지나가는 아파트는 언니 집 근처에서 구름과 사는 칠층 하늘 바라보고 누워서 늘 눈 감던 그 창과 그 발코니와 그 거실들   남의 아파트 사이로 김포 강안이 내다보이는 서울 서쪽은 늘 불안하게 해가 떨어지던 곳 흰 페인트칠한 한낮의 아파트 너머로 정오는 몇 마리 흰 비둘기를 넘겨주고 있다   다치지 않은 머리 위 높은 옥상[…]

흰 비둘기 아파트 외 1편
고형렬 / 2018-03-01
참외 / 이승주

[단편소설]     참외     이승주           고모가 또 집을 옮겼다. 이번엔 분당이었다. 남편은 회사에서 바로 오기로 했고, 나는 미용실에서 차를 몰고 갔다. 주소를 확인하고 내비게이션을 따라갔는데도 두 번이나 골목 입구를 지나쳤다. 고모부가 골목 앞까지 나와 표지판처럼 서 있는 걸 보고 나서야 겨우 집을 찾을 수 있었다.     헤맸다면서?     고모는 주차장 앞에 서 있었다. 나를 마중 나온 줄 알았더니 마침 그때 집에 들어오는 길이었다. 고모 뒤로 사촌동생들이 터덜터덜 걸어왔다. 첫째 니나, 둘째 윤하. 둘은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양 볼이 부루퉁했다. 고모부가 심란한 얼굴로 고모와 두[…]

참외
이승주 / 2018-03-01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 / 김혜나

[단편소설]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     김혜나           해질 무렵, 메이는 차문디 언덕을 거슬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차문디 언덕 정상에 자리한 차문데쉬와리 사원1)을 찾는 이들이 새벽녘 태양빛을 받으며 하염없이 오르는 천일(千一) 계단을 메이는 매번 늦은 오후 시간에 찾아가 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해 뜨는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마이소르 관광지를 구태여 저물녘에 찾아가는 데는 그녀 나름의 이유가 없지 않았다. 우선 아직 해가 뜨기 전의 어두컴컴한 거리를 돌아다니는 일이 위험천만하게만 느껴졌다. 특히나 외국인 여자라면 유난히도 뚫어질 듯 쳐다보는 인도 남자들의 끈덕진 눈빛을 메이는 피하고만 싶었다. 훤한 대낮에도 조심스레[…]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
김혜나 / 2018-03-01
“우린 친구니까” ― 밀짚모자 해적단과 ‘우정’ / 권혁웅

[기획-원피스인문학]     “우린 친구니까” ― 밀짚모자 해적단과 ‘우정’     권혁웅             대작 만화 『원피스』의 세계관과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인문학의 여러 지식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번이 첫 회니까 이 만화의 주인공인 밀짚모자 해적단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 보자.       1.     원피스 세계는 세계정부의 군대인 해군, 네 명의 대(大)해적인 사황, 해적이면서도 왕의 명령에 복종하는(그 대가로 공공연히 해적질을 일삼으면서도 처벌을 받지 않는) 왕하 칠무해의 세 세력으로 분할되어 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이 세계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원피스 세계의 악당들은 늘 이런 권력 내지 무력에 의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우린 친구니까” ― 밀짚모자 해적단과 ‘우정’
권혁웅 / 2018-03-01
애도 / 민승기

[비평in문학]       ‘여성, 노동’같은 전통적인 주제에서 시작해 ‘문체, 주체’와 같은 비평 키워드나 ‘번역, 상호텍스트성’같은 문학적 키워드, ‘환상, 무의식’같은 인접학문 그리고 ‘빅데이터, 가상현실’같은 미래용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문학의 키워드는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비평in문학]의 새로운 비평 기획입니다.     애도     민승기           라스 폰 트리에(Lars Von Trier)의 <멜랑콜리아>(Melancholia, 2011) 도입부. 지구와 닮은, 그러나 지구보다 큰, ‘지구의 짝패(double)’와도 같은 멜랑콜리아라는 행성과의 충돌, 세상의 끝. 그러나 엄마는 아이를 안고 이 마지막 때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멜랑콜리아의 영향력으로 모든 것은 땅 밑으로 꺼져 간다. 저스틴(Justine)이 아끼는[…]

애도
민승기 / 2018-03-01
일 퍼센트 / 김태호

[글틴 스페셜 – 동화]     일 퍼센트     김태호               이른 아침, 우리 가족은 지칠 대로 지쳐서 집에 돌아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하방은 차갑고 어두웠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대로 거실에 쓰러져 버렸다. 지친 몸은 바닥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조금씩 땅 밑으로 녹아내렸다.     다시 깨어났을 때, 오후를 넘긴 시간이었다. 잠들기 전 어둠은 그대로 방 안에 남아 있었다. 지하방의 어둠이 익숙해지며 조금씩 집 안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 누워 있는 엄마가 몸을 뒤척였다. 아빠는 아까부터 휴대전화를 들고 전파를 찾아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대었다. 휴대전화는 이미 어제부터[…]

일 퍼센트
김태호 / 2018-03-01
부용의 샹사곡 외 1편 / 송재학

[신작시]     부용의 샹사곡 *     송재학           공자 유성이 부용을 향하야, 내 작일에 낭자의 금셩(琴聲)을 듯고 흠탄하는 배니 가히 일곡을 엇어 드를쇼냐 부용이 사양치 아니코 향을 살으더니 세수하매 거문고를 무릅 우희 언꼬 아미를 숙이고 률려를 변하야 옥슈로 쥬현을 골나 한 곡됴를 알외니 그 소래 비원쳐졀하야 무한한 심사 잇나지라       유성 탄식하며 왈,     무거븐 률이 압헤 서니 깃털 가튼 률을 절로 다스리니     묘재라 이 곡이여     오랑케 따에는 꼿과 풀이 듬성하니     봄이 와도 봄 갓치 안하     자연히 의대가 헐거워지니    […]

부용의 샹사곡 외 1편
송재학 / 2018-03-01
독자모임-언제나 다층적인 읽기를 위한 좌담 2 / 김주선 외

[기획 – 문장웹진 독자모임]     언제나 다층적인 읽기를 위한 좌담 2     참여 : 김주선(사회, 문학평론가), 김영삼, 송민우, 이다희, 이서영           김주선 : 두 번째 《문장 웹진》 좌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에 다룰 작품은 조진주의 「베스트 컷」(《문장 웹진》 2월호), 김엄지의 「목격」(《릿터 9호》), 안웅선의 첫 시집 『탐험과 소년과 계절의 서』(민음사, 2017)입니다. 먼저 조진주 작가의 「베스트 컷」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아주 간단히 말해 이 작품은 기억의 불확실성 문제를 사진과 연결시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홍보용 제품 사진을 고르는 사람이 주인공인데, 그는 타인에게 보여줄 만한 사진 혹은 보여주고 싶은 사진을 추려내는 작업을[…]

독자모임-언제나 다층적인 읽기를 위한 좌담 2
김주선 외 / 2018-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