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외 1편 / 김은지

[신작시]     축제     김은지             술을 마시고 손을 맞잡고     가장 슬픈 이야기를 하나씩 털어놓았다       형이 잘못 사는 얘기     그녀가 잘못 떠난 얘기     질투, 못지않은 억울함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난       손잡은 사람 이야기에 울고 있는데     화장실에 갔던 한 명이 뛰어나와     이거 십오일 전에 삼켰던 약이 명치에 걸려 있었나 봐 라며     토해 낸 알약을 보여줬다       우리는 모두 기뻐 일어나     술상을 가운데에 두고 박수를 치며 춤을 추려는데     창가에서, 벽을 사이에[…]

축제 외 1편
김은지 / 2017-10-01
빙하의 다음 외 1편 / 강혜빈

[신작시]     빙하의 다음     강혜빈             울상을 짓기도 전에 얼어버리는, 눈송이를 모아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오늘은 우산을 잊어버렸어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지 잃어버리기 위해 다음을 준비했어 접었다 펼치면 튀어 오르는 물방울처럼 다음의 다음을 다음의 다음다음을…… 아니, 준비만 해서는 안 됐어 기지개 켜는 법을 떠올리려고 걸었어 얼어붙은 풀장처럼 뚱뚱해진 거리에서 속옷 위에 겉옷을 겉옷 위에 속옷을 입은 사람들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미끄러진다 옆 사람의 목도리를 잡아당기면서 서로의 뒤통수에 대고 악을 써       좋았니? 좋았어?       보라색 아침이었어 보타이를 맨 쥐들이[…]

빙하의 다음 외 1편
강혜빈 / 2017-10-01
썰매마을 외 1편 / 한연희

[신작시]     썰매마을     한연희             폭설이 내린 마을엔 인기척이 없다     운전사를 태운 버스만 간신히 지나다닌다       모두들 쥐떼처럼 처박혀서는 때를 기다린다       눈사람이 앞마당에 자라나기를 기다린다     발밑에 놓인 작은 썰매 안에서       숨소리 없이 너는 태어나고     말을 배우고 손짓을 한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나의 작은 쥐새끼, 하얗고 커다란 눈망울을 간직한 너는 이 앞마당에도 저 앞마당에도 태어난다 한껏 웅크린다 그러다 눈덩이처럼 굴러가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불어난다 아무도 밟지 않는 눈밭을 가로지른다       납작한 썰매들이[…]

썰매마을 외 1편
한연희 / 2017-10-01
휴일 외 1편 / 장수양

[신작시]     휴일     장수양             구름이 내려 사람들이 푹신해졌다.       모자의 밀회를 추적하던 사람들이 모자를 잊었다.     하늘의 빛깔을 세던 사람이 파도를 잊었다.       언젠가 한없이 쉬어도 이 휴일을 기억하리라.       부푼 롤빵처럼 사람들이 길을 구르고     아무도 조용한 어제를 시끄럽다고 말하지 않는       주유소에서 함장이 미끄러지고     수줍음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언덕을 고백하는       순간이 빛난다면 우리가 다 잊을 때쯤 우주에선 한 개의 조명이 켜질 테니까.       화려함이 단순해지고     모든 맹목이 존중받았으며     인파에 깔린[…]

휴일 외 1편
장수양 / 2017-10-01
독자모임 '이미 시작된 변화' / 정홍수 외

[기획]     독자모임 – 이미 시작된 변화     참여 : 정홍수(사회, 문학평론가), 장수라, 이영순, 김보배, 김지윤       정홍수 : 세번째 모임이네요. 오늘 이야기할 작품은 손홍규 씨의 「눈동자 노동자」(『현대문학』 2017년 2월호)), 임국영 씨의 「볼셰비키가 왔다」(『창작과비평』 2017년 가을호), 최은영 씨의 「601, 602」(『문학과사회』 2017년 봄호) 세 편입니다. 먼저 손홍규씨의 부터 시작해볼까요.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죠? 조금 어렵지 않았냐 하는 질문인데요. 작가가 이야기를 친절하게 배치해놓은 건 아닌 거 같고. 환각이랄까 시적인 이미지도 보이죠.       이영순 : 저는 그 복합적인 느낌이 좋더라고요. 처음 작품 읽으면서 회상 부분이 나오는데 회상이라기보다[…]

독자모임 '이미 시작된 변화'
정홍수 외 / 2017-10-01
우중비행 / 허희정

[단편소설]     우중비행     허희정             온실에는 항상 여분의 화분이 있었다.     그 건물을 온실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연히 온실에 쌓여 있던 물건들이 화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도, 화분이라는 말이 식물을 심어 키우기 위한 용기 일체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에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온실’도 ‘화분’도 너무 낯선 단어들이었고, 그런 단어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식물을 키우는 이유가 뭐야?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식용으로 쓸 수도 있고, 아름답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건 식물은[…]

우중비행
허희정 / 2017-10-01
一人詩爲(일인시위) ‘청년정신’ / Poetic Justice

[기획]   포에트리 슬램이란?   시를 쓴 후 이를 슬램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 2차 대전 이후 시인과 래퍼들이 이를 세상을 향한 발화형태로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一 人 詩 爲 (일인시위) ‘청년정신’ – Poetic Justice           수능시험   제이크     1 오늘은 사람이 아닌 것을 배우는 날 목숨으로 시험을 보는 것처럼 다리에서 뛰어내리지 강물 안 빈 답안에 몸을 넣으면 푸르게 부어져. 아니면 아파트 앞 보도블록에 빨갛게 납작 엎드려.   수업에 1등이 될 순 없지만 높이뛰기는 이길 수 있지. 수학 3등 영어[…]

一人詩爲(일인시위) ‘청년정신’
Poetic Justice / 2017-10-01
흩어지는 구름 / 조해진

[단편소설]     흩어지는 구름     조해진     [문장웹진 2017년 10월호] – 2017년 12월 5일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갑자기 로프웨이가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멈추면서 상체가 앞뒤로 흔들렸던 순간을 기억한다. 곧 로프웨이 문이 열렸고 구름의 일부에 잠식된 산 정상의 평원이 나타났다. 그 산은 홋카이도에 위치한, 우스(有珠)라는 이름의 휴화산이었다. 로프웨이에서처럼 산 정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파경보가 내려진 한겨울 오후에 그곳을 찾은 관광객은 나뿐이었다. 하산하는 마지막 로프웨이를 타기 전까지 십오 분 동안, 나는 그 누구의 발자국도 찍히지 않은 눈 쌓인 평원을 하염없이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고 내가[…]

흩어지는 구름
조해진 / 2017-10-01
나혜석, 몸의 회화 / 홍지석

[비평in문학]       ‘여성, 노동’같은 전통적인 주제에서 시작해 ‘문체, 주체’와 같은 비평 키워드나 ‘번역, 상호텍스트성’같은 문학적 키워드, ‘환상, 무의식’같은 인접학문 그리고 ‘빅데이터, 가상현실’같은 미래용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문학의 키워드는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비평in문학]의 새로운 비평 기획입니다.     나혜석, 몸의 회화     홍지석         폭풍우가 지나갔다. 맑은 하늘빛이 들 때 그에 비치는 산수초목은 얼마나 명랑한가. 다시 엄동이 닥쳐왔다. 백설은 쌓여 은세계가 되고 말았다. 저 수평선에 덮인 백설은 얼마나 아름답고 결백하고 평화스러운가. 그러나 그것을 헤치고 빛을 보자. 얼마나 많은 요철굴곡이 있는가?(나혜석, 1932)1)      […]

나혜석, 몸의 회화
홍지석 / 2017-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