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증평에서 보내는 편지 / 김석희

이 에세이는 [2016년 문학집필공간운영지원사업] 협력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습니다. 각 집필공간의 추천을 받아 해당 공간에서 창작활동을 했던 작가의 에세이를 게재합니다.     증평에서 보내는 편지     김석희         김형,     하 수상한 시절에 안녕하신가요?     나는 지금 증평에 와 있습니다. 좀 생소한 이름이지요? 나도 처음 들었을 땐 그랬습니다. 지도를 보면 청주와 진천과 괴산에 둘러싸여 있는데, 좀 더 들여다보니 참 묘한 위치에 있군요. 바다와 동떨어진 충청북도, 그 안에서도 타도(他道)와 동떨어진, 그러니까 내륙 속의 내륙에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증평은―섬인 울릉군을 빼면―전국에서 가장 작은 군이기도 합니다.     읍내에서 버스를[…]

[에세이] 증평에서 보내는 편지
김석희 / 2017-01-02
묵시적 비평을 위한 서언 / 박인성

[비평in문학]   비평 기획– 한국 문학에 불만 있다?       2016년 한국 문학은 어느 위치에 자리하고 있을까요. 문학을 둘러싼 최근의 담론들 그리고 2010년대 중반 현재의 한국 사회 문화의 종합적 환경을 고려한다면 한국 문학은 어떻게 생각되고 이야기될 수 있을까요. 그보다 먼저, 현재의 복합 다층적인 사회 문화적 조건과 더불어 한국 문학은 어떤 형태와 어떤 맥락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한국 문학에 대한 불만은 기실 개별 텍스트, 즉 어떤 소설, 어떤 시, 어떤 산문, 어떤 글쓰기에 바로 드러나 있는 요소들로만 환원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한국 문학을 구성하는 개별 텍스트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이야기될 수[…]

묵시적 비평을 위한 서언
박인성 / 2017-01-02
낙산 / 강영숙

[단편소설]     낙산     강영숙         철진과 나는 병원에서 나와 골목길에 세워 둔 자동차를 탔다. 앞좌석 문을 열어 주는 철진의 배려를 무시하고 나는 굳이 뒷자리로 가 앉았다. 철진은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차를 몰았다. 옷가게 앞 일자 행거에 걸린 분홍색 잠옷바지, 난전 위에 탑처럼 쌓아올린 귤 바구니, 중고 가구점 앞에 놓은 콘솔이며 수납장, 의자와 소파 따위가 지나갔다. 서울이지만 동네 이름조차 들어 본 적 없는 이곳으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바짝 마른 입술을 물고 창밖을 내다봤다. 자동차가 골목을 벗어나 큰 도로에 접어들 때까지 여러 차례 보도 턱을 넘었고 그럴[…]

낙산
강영숙 / 2017-01-01
노인 교본 / 편혜영

[단편소설]     노인 교본     편혜영         뜨거운 걸 잘 마시면 처복이 있다. 국물이나 차를 벌컥벌컥 마시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외할아버지는 속담을 인용해 말했다. 쏘아붙이는 말투여서 듣고 있으면 깜짝 놀랄 정도였다. 외할아버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를 몰아세웠고 뭔가 받아야 할 게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아버지는 전전긍긍하거나 비위를 맞추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든 아버지의 태도는 비슷했다. 무슨 대화에서건 보일 듯 말 듯 가벼운 미소를 지었고 제 의견을 내세우는 일이 거의 없었으며 성량 변화 없이 단조롭고 침착하게 말했고 의견이 영 다를 때에도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노인 교본
편혜영 / 2017-01-01
무지개가 뜨는 동안 외 1편 /

  [신작시]     무지개가 뜨는 동안     신철규         여기는 그늘이고, 저기는 환한 빛 속이야.       커튼이 쳐진 교실은 어둑하고     커튼 틈으로 들어온 햇살이 촛대처럼 길게 늘어져     교실 바닥을 두 쪽으로 쪼갠다       우리는 창틀에 팔꿈치를 괴고 무지개를 바라본다     처음과 끝이 희미해서 아슬아슬한 무지개     손으로 잡기에는 너무 멀고 뛰어가면 사라져버릴       운동장에서 단체 줄넘기를 하는 아이들은 한 마리의 벌레 같다     지구가 생기고 난 뒤 한 번도 멸종된 적이 없는     구름에 대해 생각하는 오후       먼지 속에[…]

무지개가 뜨는 동안 외 1편
/ 2017-01-01
그곳 / 양윤의

[커버스토리]     그곳     양윤의             2017년 커버스토리는 <그곳>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떤 장소를 통해서만 드러납니다. 하이데거가 실존하는 인간을 ‘거기에 있음(현존재, dasein)’이라고 부른 것도 우리가 우리에게 할당된 특별한 장소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체가, 추억이, 무의식이, 기대가 그리고 정념이 모두 (‘공간’이라는 무한한 추상이 아니라) ‘장소’라는 구체적인 유한 속에 봉인되어 있습니다. <그곳>은 작가들이 텍스트 속에서 구현한 장소를 다른 작가들이 새롭게 읽어내는 기획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심상지리학(心想地理學)이자, 현실과 무의식이 접면하는 독특한 토포스(topos)가 될 것입니다.       2월에는 최인훈의 『광장』을 정홍수 평론가의 눈으로 다시 읽습니다. 모든 길이[…]

그곳
양윤의 / 2017-01-01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에 정원 하나씩을 가꾼다 / 백민석

[단편소설]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에 정원 하나씩을 가꾼다     백민석         내행랑 근처를 지나다 보니 아빠가 논문을 쓰는 소리가 들린다. 키보드의 키를 연달아 때리는 타격음이 하나로 붙어 와글거리며 흘러가는 정원 시냇물 소리처럼 들린다. 오늘도 아빠는 논문을 완성하느라 내행랑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 하고 긍정과 부정을 반복하는 아빠 목소리가 들린다.     틀렸어, 안 틀렸어, 하고 다시 부정과 긍정을 반복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옳아, 맞았어, 글렀어, 망했네, 하고 긍정과 긍정, 부정과 부정을 반복하는 목소리도 연이어서 들린다.     아빠 목소리가 키보드 와글거리는 시냇물 소리와 함께 내행랑 주변을[…]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에 정원 하나씩을 가꾼다
백민석 / 2017-01-01
중경삼림(重慶森林) 외 1편 / 장이지

  [신작시]     중경삼림(重慶森林)*     장이지     마음이 사물이 되는 순간이 있어요. 사물이 되어서 만지면 아픈 날이 있어요. 세탁기가 울어서 방에 홍수가 나고 인형은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날이 꼭 있어요.   방이 눅눅한 마음일 때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왕자웨이(王家衛) 영화를 보죠.   금색 가발을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트렌치코트를 입고 린칭샤(林靑霞)가 인도인들을 총으로 쏴 마구 죽일 때, 내 친구는 조금 겁먹은 표정을 짓지만…….   쫄지 마, 바보야. 린칭샤는 센 역을 많이 했지만 그건 변장일 뿐. 경찰 223이 호텔방에서 잠든 그녀의 신발을 벗겨줄 때 고단한[…]

중경삼림(重慶森林) 외 1편
장이지 / 2017-01-01
착하고 좋은 사람들 외 1편 / 신용목

  [신작시]     착하고 좋은 사람들     신용목         그렇지만 이렇게 많은 죽음이 한꺼번에 태어날 필요가 있나?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을 대신해 시들어가는 국화꽃 옆에서     둘은 싸운다.     좀 따뜻하게 안아주고 갈아주면 안 돼? 갓난쟁이면, 죽음도 여리고 가냘프니까.     둘은 우는데, 죽음은 죽지도 않아. 영생을 창조할 줄 아는 자에게 신은 말 걸지 않는다.       너무 투명해서 어두워지는 밤처럼       바다를 바다로 메울 만큼 비가 와.       망각은 돌잡이로 무얼 잡을까? 실타래는 쓸모가 없고 마이크면 좋겠다. 크게 떠들며, 둘은 웃는다.       비[…]

착하고 좋은 사람들 외 1편
신용목 / 2017-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