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여름방학 / 윤성희

  [단편소설]     여름방학     윤성희           *       퇴직을 하던 날, 나는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을 했다. 이병자. 그게 내 본명이었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남은 명함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도장은 버리려다 따로 챙겨 두었다. 한자로 새긴 도장도 하나 있었던 것 같았는데 책상 서랍을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칫솔과 슬리퍼도 버렸다. 이만 하면 오래 다녔지. 오십이 넘은 뒤로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으므로 퇴직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다만 내 의지로 그만두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붓고 있는 적금이 만기가 되면 사표를 쓸 계획이었다. 목표 금액까지는 몇 달 남지[…]

[단편소설] 여름방학
윤성희 / 2016-08-04
시인의 죽음 외 1편 / 이현승

[신작시]     시인의 죽음     이현승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하나도 놀라는 눈치가 아니어서 되레 놀라는 방식으로     문자를 본다. 시인이 죽었다.     마른 흙에서 몸을 뒤트는 지렁이가 그렇듯     분별하기 어려운 고통과 쾌락으로 새겨진 한 생이 멈춘 자리       열정에 사로잡힌 병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열정이란 신념에 종사하지 않으므로     시인들은 바람이 고무풍선을 빠져나가듯이     천천히 저 무미의 내를 건너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이란 가장 빛나던 순간으로 기억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보다 몇 배는 더 길고 무의미한 기다림으로 기억되어야 하는가[…]

시인의 죽음 외 1편
이현승 / 2016-08-04
[단편소설] 캐치볼 / 김남숙

  [단편소설]     캐치볼     김남숙         나는 공원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내 오랜 습관이었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눈꺼풀 사이로 그리고 눈꺼풀 자체가 마치 얇은 복숭아 껍질이라도 된 것인 양 햇살을 완전히 빨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햇살이 어느 때보다 좋았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여간해서 비 소식이라곤 보이지 않는 날의 연속이었다. 나는 실눈을 뜨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강렬한 햇빛에 시야가 흔들렸다. 여름 햇빛은 자주 죽어 있는 사물들을 성큼성큼 다가오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곤 했다. 누군가 멀리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에게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어차피 누군가 나타나[…]

[단편소설] 캐치볼
김남숙 / 2016-08-01
‘취향 공동체’라는 문제틀의 전환에 대한 단상 /

[비평 in 문학]   비평 기획– 한국 문학에 불만 있다?       2016년 한국 문학은 어느 위치에 자리하고 있을까요. 문학을 둘러싼 최근의 담론들 그리고 2010년대 중반 현재의 한국 사회 문화의 종합적 환경을 고려한다면 한국 문학은 어떻게 생각되고 이야기될 수 있을까요. 그보다 먼저, 현재의 복합 다층적인 사회 문화적 조건과 더불어 한국 문학은 어떤 형태와 어떤 맥락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한국 문학에 대한 불만은 기실 개별 텍스트, 즉 어떤 소설, 어떤 시, 어떤 산문, 어떤 글쓰기에 바로 드러나 있는 요소들로만 환원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한국 문학을 구성하는 개별 텍스트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취향 공동체’라는 문제틀의 전환에 대한 단상
/ 2016-08-01
[미국의 현대시인9] 엘리사 가버트 (Elisa Gabbert) / 제이크 레빈

  [미국의 현대시인]     미국의 현대 시인 ⑨ ― 엘리사 가버트 (Elisa Gabbert)     제이크(Jake Levine, 시인)     < 미국의 현대 시인을 소개하며 >       21세기 미국 시의 주요 쟁점은 정서가 미국 문학과 함께 잘려 나가더라도 개념시가 정서의 본질에 담고 있는 역할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시의 권위자인 칼빈 베디언트(Calvin Bedient)는 보스턴 리뷰지에서, 그들이 쓴 시는 개념시가 비윤리적인 것이라고 교활하게 말하면서 ‘삶의 가치를 무시하라’와 같은 개념 프로젝트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썼다. 개념론자들은 개념시가 표현하는 것은 감정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찰스[…]

[미국의 현대시인9] 엘리사 가버트 (Elisa Gabbert)
제이크 레빈 / 2016-08-01
문학평론가 서영인
‘대중적인 것’과 ‘문학적인 것’ / 서영인

[비평 in 문학]   비평 기획– 한국 문학에 불만 있다?       2016년 한국 문학은 어느 위치에 자리하고 있을까요. 문학을 둘러싼 최근의 담론들 그리고 2010년대 중반 현재의 한국 사회 문화의 종합적 환경을 고려한다면 한국 문학은 어떻게 생각되고 이야기될 수 있을까요. 그보다 먼저, 현재의 복합 다층적인 사회 문화적 조건과 더불어 한국 문학은 어떤 형태와 어떤 맥락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한국 문학에 대한 불만은 기실 개별 텍스트, 즉 어떤 소설, 어떤 시, 어떤 산문, 어떤 글쓰기에 바로 드러나 있는 요소들로만 환원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한국 문학을 구성하는 개별 텍스트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대중적인 것’과 ‘문학적인 것’
서영인 / 2016-08-01
졸음 외 1편 / 이영광

[신작시]     졸음     이영광         칠월 땡볕 속     전기톱 소리     쇠로 나무 자르는     악다구니     누가 저 소리 좀     그칠 수 없나     소리의 쇠 이빨 좀     뽑아갈 수 없나     불현듯 숨 멎은 내     눈을 내가 감기며,     염하는 꿈속의     고운 벌레가 되었는데     삶과 꿈 사이     해진 잠을 찢는 저     전기톱 소리,     두 손으로 허겁지겁     자르고 싶네     툭, 툭,     붙잡고 싶네     피가 철철 나는     이 졸음     이[…]

졸음 외 1편
이영광 / 2016-08-01
[커버스토리] ‘왜 사나……’ 망설여지는 대답을 찾으시거든 / 김륭

[커버스토리]     ‘왜 사나……’ 망설여지는 대답을 찾으시거든 ― 김달진문학관(경남 창원시 진해구 소사로 59번길 13)     김륭             이미 지난 세계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숨 쉬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은 구(球)를 닮았다고 쓴다. ‘왜 사나……’ 망설여지는 대답을 찾아 오늘을 멀쩡히 걷다가 순간 발목을 접힌 듯이 맞닥뜨리게 되는 과거의 시간 속으로, 흔들린다. 목탁을 두드리는 문장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페이지 속으로 삐끗해진 발을 접어 넣은 듯, 그렇게 나는 문득 흔들리다 가만히 앉았다. “조그마한 샘물을 들여다보며/동그란 지구의 섬 위에”(김달진,「샘물」中에서) 앉아서는 무엇으로 대체되지도 다르게 변형되지도 않는 ‘복원의 서사’를[…]

[커버스토리] ‘왜 사나……’ 망설여지는 대답을 찾으시거든
김륭 / 2016-08-01
플라나리아 외 1편 / 권창섭

[신작시]     플라나리아     권창섭         나의 반대말은     너도 아닌 우리도 아닌 나인데     나는 나밖에 낳을 줄 모릅니다     이렇게 부족한 나라도 괜찮겠습니까     그는 저 멀리서 모두 지켜보고 있고       이렇게 모자란 나라도 괜찮겠습니까     자꾸만 모자라서 나에게 말합니다     “아이를 낳아라 너 갖고는 부족하니까”ⅰ     나라는 나에게 나라도 낳아라고 말하고       I My Me Mine     아이 마이 미 미안하게도     나는 자꾸 아이 대신 나를 낳고       그런 나는 핑크 카펫에 앉을 자격이 못 됩니다     그는 저[…]

플라나리아 외 1편
권창섭 / 2016-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