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내려와 잠자리에 누웠을 때 L은 옆방에서 C와 Y가 뒤엉키는 소리를 들었다. 열대지역 게스트 하우스는 방음시설이 형편없었다. 벽 하나를 건너서 그들이 속삭이는 음성과 움직이는 기척과 삐걱대는 침대 소음이 고스란히 들렸다. 여자는 톤이 맑고 높으며 남자는 굵고 낮았다.
2016년 2월
[파문] 팟캐스트 시즌2_제10회(박송아 소설가편) 박송아 (소설가) – 1988년 광주 출생. 동덕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현재 고려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휴학 중. 2012년 세계일보 단편소설부문 당선. [2015년 AYAF 2차 소설 선정작 ] 빅매리 ▷작품 보러가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등단 5년 미만의 신진작가들을 지원육성하는 차세대 예술인력 육성 사업, 즉 AYAF에 선정된 작가를 초대,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고 대담무쌍하고 시시껄렁하게 나눠보는 팟캐스트입니다.
어머니는 까마득하게 높은 건물의 유리마루 위에서 여든 번째 생일을 맞았다. 높기로 세계에서 순위를 다툰다는 그 건물은 그날 위쪽이 안개에 묻혀 두 동강난 듯 기이해 보였다. 어머니는 차마 그곳을 딛지 못하겠다고 눈을 가리고 물러섰다.
스물 김재현 여름숲의 끝을 알려온 것은 가지 끝에서 뎅뎅 울던 붉은 종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갔을 교정의 언덕을 올라 떨어진 종을 쥐어들었을 때 나는 왜 이토록 많은 그늘이 학교에 필요한지 아직 몰랐다 스승이 알려준 건 오직 써선 안 될 단어들뿐이었으므로 술과 담배, 어머니와 나, 꽃과 피, 구름과 삶. 세련된 것들은 끊임없이 도망쳐가고 가진 것들은 모두 촌스런 것이었으므로, 예술가 흉내를 내던 내게 젊음은 가누기 힘든 의무였다 그러나 땡볕이 내려꽂히는 강의실 앞자리에선 숨 막히는 목화만 자욱했고 붓통 속에 그 꽃씨를 훔쳐[…]
21세기 미국 시의 주요 쟁점은 정서가 미국 문학과 함께 잘려 나가더라도 개념시가 정서의 본질에 담고 있는 역할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시의 권위자인 칼빈 베디언트(Calvin Bedient)는 보스턴 리뷰지에서, 그들이 쓴 시는 개념시가 비윤리적인 것
그러니 시작에서 시작해 보자. “그리고 버려진 성당에 종이 울린다.” 『ㅅㅜㅍ』의 시작에 쓰인 김소형 시인의 말이다. 성당은 예배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대개는 내일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이 찾는다. 그러나 발화가 이루어지는 시점
평균 연령 20세가량의 빌라 골목이다. 엊그제 막 신축이 끝나 건축 자재와 도배장판 냄새가 나며 카드키를 댈 때마다 LED 센서가 발광하는 빌라 옆으로, 마당에는 감나무가 열리고 장마철에 때때로 물이 차는 반지하방에 서로 모르는 이들이 세 들어 사는
건식은 적당히 취한 상태로 어둑어둑한 재래시장 거리를 걷고 있었다. 상가들은 대부분 셔터를 내린 시간이었다. 문을 연 곳은 허름한 야식집과 노래방 정도였다. 재래시장은 세월이 흐를수록 어둠이 빨리 내리는 것 같았다.
부음을 듣고 대구로 내려가면서 송은 희극배우의 잘못된 선택들에 대해 생각했다. 희극배우는 자기 인생이 그런 선택의 연쇄이며 그런 연쇄들 끝에 희극배우가 됐다고 했다. 시작은 아주 작은 세포에 지나지 않았을 때 실수로 남자가 돼버린 것이었다.
트램에서 내렸다. 그랑플라스 광장까지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내린 거다. 창밖을 구경하다가 민이 말했다. “저 언덕에 가보자. 달리는 속도가 이렇게 느리니 뛰어내릴 수도 있겠다, 그지?” 축축한 아스팔트 위를 조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