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도착한 크레인이 끌어올리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목숨이다. 그리고 여기 도착한 많은 사람은 하나의 목숨이 마치 헐어버려야 하는 건물이거나 쓰레기처럼 다루어지는 순간을 구경하고 있다.
2015년 12월
한국 정착에 실패한 두 탈북 자매의 비극적인 인생을 그린 「밤의 나라」는 절망을 피해 한국에 왔으나 새로운 절망에 마주한 두 인물의 선택을 통해 국가 없는 인간의 무력과 좌절을 표현한 ‘탈북자 소설’이다.
삼촌이 돌아왔다. 백만장자가 될 것처럼 떠난 삼촌이, 8년 만에 백수가 되어 돌아왔다. 아홉 살짜리 꼬마가 열여덟, 자그마치 고등학생 2학년으로 성장하는 8년이란 시간 동안 삼촌은 어디서 뭘 하고 지낸 걸까?
사백 년 남짓 자다 깨어났다는 선녀는 아직 적응이 안 된다며 투덜댔다.
내가 잠들 때만 해도 국호가 조선이었거든. 말도 마, 어찌나 시끄러웠는지. 무슨 호란이다, 왜란이다, 민란이다 그런 난리도 없었어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물건이면 일단 사고 보는 나의 취향은 때때로 잘 만들어진 기성품 앞에서 벗어날 때가 많았다. 의미를 찾게 되고 가격표 앞에서 의미를 상실하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고민은 많아졌다.
‘사랑’은 문학의 영원한 테마다.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 인간의 삶이니, 문학이 ‘사랑’을 말하지 않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문학’과 ‘사랑’의 만남은 성공보다는 실패의 가능성이 훨씬 크다. 한 작품이 ‘사랑’에 관한 문학적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
내 취미는 사랑인데 막상 그렇게 적으려니 정말 그런가, 정말 취미가 이것뿐인가, 싶어서 망설여졌다. 사랑밖에 몰라서가 아니라 취미가 사랑이라는 게 적합한가, 하는 맥락에서였다.
빨래를 걷고 개고 창문을 닫는 너의 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다른 행성으로 건너가다가 미끄러진 꿈 새벽에는 미열에 시달리고 답답하고 외롭다는 너의 중얼거림이 멍청해서 세탁기를 돌립니다
남겨진 나날들 ― 권태1 장이지 ……생각해 버렸다! 적기(敵機)는 근거리까지 육박해서 파동 공격을 감행한다. 가까스로 피한다.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공간이 크게 동요하더니 구체(球體)의 대미지 아공간(亞空間)이 만들어진다. 나는 철갑 블레이드를 기동하여 적기를 향해 날린다. 적기는 우주 저편으로 물러났다가 블래스터 다섯 발을 연사한다. 철갑 실드를 기동하여 네 발은 막아냈지만 한 발이 허공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다리의 장갑 부분이 날아간다. 동체가 공중으로 크게 회전하면서 튕겨져 나간다. 나는 대미지 아공간 사이를 이리저리 건너뛰면서 스매시 빔을 발사한다. 개의 머리뼈처럼 생긴 적기의 중앙부에 빔이 직격하더니[…]
페르가몬의 양피지 안웅선 갓 벗긴 새끼 양 가죽을 무두질하는 소리 이 집의 슬픔을 두드리고 있는 거야 난, 이것으로 신발 한 짝 만들기도 힘든 거겠지만 오래, 두고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는 것 곁에 두고 싶지만 둘 수 없는 것 더는 가죽 위에 아무것도 쓰지 못하겠지 너무 많은 비밀이 배어들었거든 내가 나로 뒤섞이는 게 두렵다구 땅 위에 그림자가 사라졌어요 그래요 모두 거짓말이에요 하나의 냉정을 펼쳐 귀를 곧게 박으면 펼쳐지는 곳에 나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