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 권여선

그는 인태초밥의 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했다. 바닥과 바와 테이블을 닦고 수저통과 술잔, 냅킨 박스를 적당한 자리에 놓았다. 바의 왼쪽 끝자리에서 낯선 휴대폰을 발견했다. 켜보려 했으나 방전되었는지 켜지지 않았다.

권여선 / 2015-11-01
한민규
[2015_차세대2차_희곡] 누가 그들을 만들었는가 / 한민규

교화 프로그램은 안정, 순화, 심화의 3단계를 거쳐서 시행합니다. 안정 단계는 음악치료, 명상치료, 부모님께 편지쓰기 등 프로그램에 대한 참여의지를 고취시키며, 순화 단계는 준법의식 함양을 위해 폭행 및 범죄 예방교육과 자신의 미래의 모습 그려 보기 등 희망적인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015_차세대2차_희곡] 누가 그들을 만들었는가
한민규 / 2015-11-01
배수연
바람부는 날의 미소 외 1편 / 배수연

  바람 부는 날의 미소       배수연             미소는 바람이 불면 얼굴을 움켜쥐었지만, 벌렁 후드가 벗겨지면 금세 대머리가 되고 말았다 두상이 예쁜 미소야 잘나가는 중국 화가의 작품 속에서 꼭 너를 본 것만 같아 날려간 머리카락들은 그림 속의 누구에게 씌워졌을까 입 꼬리는 꼭 금방 불면 사라질 것처럼 흔들리네 턱 아래로 하나하나 단추를 열어 볼까! 너의 유니폼은 언제나 단추가 많지 앗, 차가! 안주머니에 꽂힌 빛나는 냉동 거울- 매일 얼굴을 비추는 미소는 거울 속에서 자꾸만 성에가 끼는 걸 마침 이렇게 바람이라도 불면, 똑똑 세상 뒤편에서 네 안부를[…]

바람부는 날의 미소 외 1편
배수연 / 2015-11-01
김윤이
공용 코인워시 24 빨래터 외 1편 / 김윤이

    공용 코인워시 24 빨래터       김윤이         정적 찾아든 밤 아홉시 주택가 빨래방 어둠에 멱살 잡힌 부랑객이 고성을 지르고 통속으로 뛰어든다 몸의 거뭇한 구멍을 들여다보듯 행인을 낚아챈 골목통을 들여다보면 전운이 감돈다 깊숙한 곳일수록 유리문 밖에선 더 선명히 보이는 곳 반경 몇 미터 내 사십 줄 접어든 여자와 웅녀처럼 오래전부터 앉아 있던 여자, 합 둘이 골목을 지켜본다   좁은 가게를 점령하는 것은 침묵이다 서로 아는 게 별로 없으니 전자동 빨래로 처리되는 시간 여섯시 아무도 없던 텅 빈 곳은 퇴근 지나 발길이 잦아들고 여자는 생활이[…]

공용 코인워시 24 빨래터 외 1편
김윤이 / 2015-11-01
주원익
눈 속의 가을 외 1편 / 주원익

    눈 속의 가을       주원익         소리가 증발하는   울음   잠에서 깬 저녁,   창 저 멀리 새들이   되돌아오는 무렵에서   어둠을 끌어당기는   몸 안의 동굴 물밀어오는   투명한 어둠,   새들이 다녀간 귓가엔   하늘과 울음이 남아   보이는 메아리는   보이지 않는 눈동자라고   사이를 다스려 가는   가을이어서   글자들의 살이 들어차는   동공의 방   스러지는 그림자들을 담는   눈 속의 하늘               그림 책       모래가 녹아[…]

눈 속의 가을 외 1편
주원익 / 2015-11-01
남길순
붉나무가 따라왔다 외 1편 / 남길순

    붉나무가 따라왔다       남길순         슬쩍 스쳤을 뿐인데   네가 옮았다   방이 울렁거리고 탁자가 흔들리고 밤의 블라인드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뿔난 짐승   집이 불타오르는 꿈을 꾸었다   몸에 물을 끼얹다가 잠이 든 것 같다   앞산이 창문까지 다가오고   능란한 몸짓에   나도 모르게 내가 벗는다   밤새 긁어댔을 뿐인데 녹이 슬었다고   먼 훗날 단풍 든 산을 보며 말할 것이다   옻을 먹은 수탉,   나를 삼킨 황홀한 가을을 빠져나올 때               소피와 루체의[…]

붉나무가 따라왔다 외 1편
남길순 / 201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