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너의 이름 / 김호연

준성을 처음 만난 건 봄날의 야구장이었다. 새 시즌이 시작되었고, 라이벌 팀과의 경기를 응원하러 인천 문학경기장에 간 날이었다. 나는 운영자로 있는 야구커뮤니티에서 단관을 주도했다.

너의 이름
김호연 / 2015-08-01
이용한
가지 마 외 1편 / 이용한

    가지 마       이용한             너의 골목에 아픈 몰골이 번진다 신길동이거나 통영이어도 관계없는 밤은 혼자 깊어졌고, 내가 평생 흘릴 눈물을 너는 단숨에 쏟아냈다 바람이 언덕을 흔드는 날엔 시집 속에서 묵은 나뭇잎을 건진다 어쩔 수 없다는 거 알아요 아침에 세 알, 저녁에 네 알, 알약이 없으면 잠도 없고, 이별도 없겠죠 밤마다 잠들지 못하는 너를 읽다가 나는 손가락 끝으로 반쯤 죽은 너를 만진다 너의 아픈 발목을 하염없이 들여다본다 너의 잠 속에 어떤 괴물이 사는지, 누가 망가진 너를 덮어 놓았는지, 어떤 페이지는 붉고, 어떤 독서는[…]

가지 마 외 1편
이용한 / 2015-08-01
장석남
문을 얻다 외 1편 / 장석남

    문을 얻다       장석남         명이 다한 헌 집에 쓸 만한 문이 하나 있다는 귀띔이 있어 찾아갔더니 문이 살아 있다 떼어내 지고 나왔더니 등 위에서 문은 비단 구름 무리가 되어 나를 데리고 다닌다   문을 내려놓지 못해 지고 다닌 지 오래 나는 아무데나 문이 되어 서 있곤 하였다                 문을 내려놓다       새로 짓는 집에 지고 다니던 문을 내려놓다   경첩을 달고 문을 맨다 수평자를 대고 문을 고친다   안팎으로 문은 사람과 사물을 가리지[…]

문을 얻다 외 1편
장석남 / 2015-08-01
권오영
중첩 외 1편 / 권오영

    중첩       권오영         부술 듯이 문고리를 흔들어대다가 사라지는 맨발의 바람소리 듣고 있었네   꿈에서 꺼낸 죽은 나를 보고 있던 중인데 지붕도 창문도 계단도 보이지 않고 한동안 정전으로 캄캄했어, 그때부터야   내용이 담기지 않은 흰 접시가 얼굴로 커다란 구멍이 입으로 보이는 순간, 가까이 문 닫히는 소리 집중할수록 어둠이 선명했네   어둠 속으로 숨자 벽들은 수군대기 시작했지 갈라지기 시작한 틈 사이로 뻗어 나오는 질긴 소리들이 수백 개 똑같은 상자 속으로 뿌리를 박기 시작한 거야   언 강 건너다 얼음이 되어버린 숨 끊어진 밤 느린[…]

중첩 외 1편
권오영 / 2015-08-01
윤성학
공손 외 1편 (윤성학) / 윤성학

    공손       윤성학         호각이 울리고 프리킥이 선언되자   파울을 저지른 자들 억울하다며 길길이 날뛰다가 억울한 자들이 그러하듯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서서 뭐 대단한 거라고 낭심 위에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 *      * 고영민의 시 「공손한 손」에서 빌려옴.                 훈김       오래 막혀 서 있다가 핸들을 꺾어 골목으로 들어갔다 눈 내리는 금요일 퇴근길 어둡고 외진 곳을 찾아 아무렇게나 차를 세우고 뛰쳐나와 참았던 것을 쏟아버린다 쌓인 눈을 녹이며 떨어지는 물줄기 하얀 김이 그득 피어오를[…]

공손 외 1편 (윤성학)
윤성학 / 2015-08-01
박형권
생활쓰레기매립장 가는 길 외 1편 / 박형권

    생활쓰레기매립장 가는 길       박형권         어제 나는 먹다 남긴 치즈 조각이었다가 오늘은 어디를 덧대어도 더러움을 빨아들일 수 없는 행주 조각이 됐다 유월 아카시꽃 주르르 흐르는 이 길은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길 꽃 따라 마지막으로 향한다면 그리 섭섭할 것은 없다 생활쓰레기매립장이 산중턱에 있어서 오르막을 오르면 내가 탄 오물 칸에서 운명처럼 꽃이 진다 나는 한때 잘나가는 사내의 백구두였고 결혼식장의 흰 목장갑이었고 처녀의 허리를 죄어 주는 코르셋이었고 뒷산 소쩍새 소리를 듣는 이어폰이었다 가끔은 애인이 나를 발견하게 되는 안경테였다 아주 잠깐이었다 꿈속의 꿈이었다 나는 생활쓰레기로 분류되어 당신을[…]

생활쓰레기매립장 가는 길 외 1편
박형권 / 2015-08-01
배용제
문고리의기원 외 1편 / 배용제

    문고리의 기원       배용제         속삭이듯 말해 볼까 둥글고 검고 친근한 고전적 거짓말에 대해 이것은 건너편의 세계, 그러니까 문고리의 은유에 대해   저녁이란 서로의 없는 건너편에 서서 입술로만 전해진 주문을 외듯 문고리의 호칭을 오독하며 달그락거리는   박자를 놓친 입술이 휘발하는 음표들을 게워낸다   아무도 모르지 월요일과 화요일의 술잔들은 없는 세계를 향해 비워지고 목요일의 길 끝에서 젖은 무덤을 움켜쥐는 방식으로 서로를 건너간다 더듬거릴수록 깊어지는 세계 그제서야 입구를 들킨 우물이 발굴된다 뜨거워지고 더러워지는 샘물을 토해 내는 눈먼 물고기들의 감옥   금요일은 붉은 빛깔의 서적을 펼치지만[…]

문고리의기원 외 1편
배용제 / 2015-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