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리
모르는 기억 / 조우리

바닥에 앉자. 양말을 신어야 하니까. 오른쪽 먼저. 그리고 왼쪽도. 이제 일어난다. 뒤로 돌면 거울. 거울 옆에 선반. 손을 뻗어 빗을 꺼낸다. 머리를 빗는다. 오른쪽을 먼저 빗고. 왼쪽이랑 뒤쪽도, 꼼꼼하게. 지금 뭘 하고 있지?

모르는 기억
조우리 / 2015-03-09
정영효
분명한 밤 외 1편 / 정영효

    분명한 밤       정영효           밤이 되면 우리는 아는 곳에서만 놀았다   아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아는 맛을 느낄 때 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사람들에 섞여 무한히 이어지는 불빛 속을 아는 사이라서 우리는 충분히 걸었다 걷고 있었다 그러다 모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부분적으로 의견이 없었고 전부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서로의 이름을 빼면 지어 줄 결론이 많다는 게 기뻤다   여태 쌓인 일들을 고민하는 동안 해야 할 일들이 차츰 첨예해졌다 과거를 떠올리면서 내일을 위한 용건을 기다렸다 우리가 천천히 따르던 골목의 눈빛   친구들은[…]

분명한 밤 외 1편
정영효 / 2015-03-09
장은석
[차세대 선정작 리뷰] 명암의 단면을 저미는 칼의 언어 / 장은석

미세한 무늬를 완성하느라 계속 밤을 새던 그들이 눈이 멀지 않기 위해 일부러 먼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 같은 것. 흐릿한 불빛과 오랜 침묵을 견디며 하나의 선과 그것이 만드는 문양에 몰두하는 사람의 표정과 자세와 호흡 같은 것이 연상된다.

[차세대 선정작 리뷰] 명암의 단면을 저미는 칼의 언어
장은석 / 2015-03-09
방현희
밤의 환대 / 방현희

어둠 속에서 윤곽만 남은 그를 내려다본다. 그의 가슴이 일정하게 오르내린 지 이십 분.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손을 얹지 않아도 일정해진 호흡을 알아볼 수 있다. 환의 대신 깔끔하게 다린 푸른 피케 셔츠 위에 두 손이 가지런히 올려 있다.

밤의 환대
방현희 / 2015-03-04
박사랑
울음터 / 박사랑

아기는 오늘도 울지 않았다. 말간 눈을 깜박거리며 그 작은 손으로 내 손가락을 꼭 말아 쥘 뿐이었다. 다음 달이면 돌을 맞는 이 남자 아기는 잘 울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울지 못했다. 생후 삼 개월, 고열로 성대에 염증이 생겼고

울음터
박사랑 / 2015-03-02
서동찬
부재중 / 서동찬

쏟아지는 햇빛에 눈을 떴다.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앞이 희뿌옇게 보인다. 고개를 돌려 옆자리를 확인한다. 늘 아내가 누워 있던 그곳에는 있어야 할 아내 대신 빈 소주병이 뒹굴고 있다. 한숨을 쉬어 본다.

부재중
서동찬 / 2015-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