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에세이] 소소한 연극에세이 – 프롤로그 정유정 ‘클릭’ 한 번이면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킨 영화나 TV드라마를 볼 수 있고, ‘터치’ 한 번이면 이동하면서도 실시간으로 웹 드라마를 볼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다. 그런데 연극을 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격식을 갖춘 옷을 입고, 공연 시작 10분 전에 극장 안에 도착해서 지정된 자리에 앉아서 작품을 볼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평소에 연극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희곡을 읽고 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요즘은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소극장은 여전히 다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의자에 앉아 80분[…]
2015년 1월
[여행 에세이] 어떻게든 되겠지 – 프롤로그 양재화 할 일이 너무 많다. 돈이 부족하다. 함께할 사람이 없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어떻게든 되겠지.’ 여자 혼자 위험하지 않을까? 자전거도 못 타고 수영도 못하는데 괜찮을까? 말도 안 통하는데 잘 다닐 수 있을까? 그렇게 불안해질 때마다 생각한다. ‘어떻게든 되겠지.’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이런 수많은 선택의 순간마다 ‘예스’와 ‘노’로 갈리는 프로그램 순서도(flow chart)에서 몽땅 예스를 누르는 일이다. 어리석고 무모해 보일지 모르지만, 반대로 아주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에서 나온 결과였다. 모두가 꼭 여행을 해야 한다거나,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채황이의 머릿속에 동글 초등학교 친구들의 얼굴이 휙휙 스쳐지나갔어요. 지금 와 생각해보니 친구들의 행동이 그렇게 못되지도, 나쁘지도 않았던 것 같았지요. 오히려 자기가 고자질로 괴롭힌 것 같아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어요. 다시 만나게 된다면 제대로 사과하고 잘 지내고 싶었지요.
21세기 미국 시에 있어 주요 쟁점은 정서가 미국 문학과 함께 잘려나가고 있더라도 개념시가 정서의 본질에 담고 있는 역할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시의 권위자인 칼빈 베디언트(Calvin Bedient)는 보스턴 리뷰지에서, 그들이 쓴 시는 개념시가 비윤리적인 것이라고 교활하게 말하면서 ‘삶의 가치를 무시하라’와 같은 개념 …
나는 지금 소설을 쓰려 한다. 아마 이 글이 내 첫 소설이 될 것이다. 길이로 봤을 때 경장편 이상의 분량이 나올 것 같다. 처음부터 단편소설을 쓰며 작법을 익히고 싶지만 도저히 원고지 80매 내외로 끝날 얘기가 아니다. 줄이고 또 줄여도 그 이상은 족히 넘고도 남을 이야기다.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모두 아홉 명이었다. 한 명을 빼고는 모두들 턱시도 차림이었고 눈가와 이마에 깊거나 얕은 주름이 나 있었다. 다섯 명은 콧날이 높고 동공이 파랬으며, 세 명은 모래색 살빛에 눈매가 가늘었고, 나머지 한 명은 콧수염을 입술에 닿을 만치 기른 흑인이었다.
사람들 몸에 가방이 혹처럼 붙어 있다. 굴곡진 허리를 메우려는 것처럼. 큰 백팩을 등에 메거나 커다란 숄더백을 어깨에 걸친 사람들. 특히 검은색 기타 가방을 메고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사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초국가적 커머셜 단체를 일컫는 말이었다. 자본시장의 원리 따위를 일컫는 명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가 그의 저서에서 그 명칭을 사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세현과 윤희는 뮤지컬을 보기로 했다. 세현의 친구가 오르는 무대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두 사람은 이층 오른편에 자리를 잡았다. 공연장의 벽은 노란빛을 띤 갈색이고 좌석은 짙은 붉은색이었다. 착석한 사람들은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뮤지컬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