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현
6. 1980년 4월 20일 출생 ~ 2004년 5월 20일 사망 / 박주현

예쁜 얼굴, 날씬한 허벅지, 길고 반짝이는 손톱,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 친구, 돈 많고 관대한 부모,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도 질투하지 않는 친구들, 샤넬 핸드백과 디올 향수,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 직장, 나이가 들어도 괜찮은 표정과 몸가짐, 뭐 그런 것들. 아무튼 예쁘고 여유 있고 좋은 것들.

6. 1980년 4월 20일 출생 ~ 2004년 5월 20일 사망
박주현 / 2014-10-01
장은진
종이 무덤 / 장은진

드디어 삼일 만에 강아지를 찾는 인쇄물이 벽에 붙었다. 컬러로 출력한 전단지에는 늘 그렇듯 강아지 이름과 잃어버린 장소, 특징, 연락처가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맨 밑줄 ‘사례금 있음’이란 문장에는 놓치지 말라는 듯 빨간색으로 밑줄이 두 개나 그어져 있었다.

종이 무덤
장은진 / 2014-10-01
이태형
물고기들 / 이태형

작은 물고기들은 천적에 대항하여 무리를 이룬다. 무리는 한 마리의 살아 있는 거대한 개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가장 먼저 포식자를 발견한 물고기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리 속으로 파고든다. 포식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대한 무리의 허리를 물어뜯는다.

물고기들
이태형 / 2014-10-01
이병승
연어 외 1편 / 이병승

    연어       이병승           딸아이처럼 앳돼 보이는 햄버거 집 알바생 래퍼처럼 경쾌하게 주문을 받고 달인처럼 손가락을 움직인다 틈틈이 테이블을 닦는 손걸레질도 제집 밥상 닦듯 야무지다 요리 뛰고 조리 뛰면서도 말갛게 웃는 얼굴 그 아이를 보며 햄버거 페티와 도살된 소, 환경파괴 최저임금 신자유주의를 운운하기 난처하다 흐르는 강물이 더러워도 강줄기를 비틀거나 방향을 바꾸지 않고 저 혼자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저 즐겁고 씩씩한 한 마리 말간 연어 고민을 고민 없이 끌고 가는 싱싱한 웃음 앞에서   아, 정답이 따로 없다!          […]

연어 외 1편
이병승 / 2014-10-01
강은교
시월,궁남지 외 1편 / 강은교

    시월, 궁남지       강은교           시월, 궁남지에 가면 보아 두게 시드는 것의 위대함을 지는 것의 황홀함을 저무는 것의 눈부심을 푸르르 푸르르 어둠이 오는 소리 들어 두게   보아 두게, 애인은 찬란하다 순간은 찬란하다 절망도 찬란하다   궁남지에 가면 보아 두게 구불거리는 길로 가는 한 사람, 저물녘에 열린다                 즐겁게 한없이 가벼워져서               어느 햇볕 눈부신 날, 즐겁게 한없이 가벼워져서, 무덤가 검은 덧창을 여는 한 사람을 생각한다, 덧창이 된 한 사람을[…]

시월,궁남지 외 1편
강은교 / 2014-10-01
이상협
오하이오 오키나와 외 1편 /

    오하이오 오키나와       이상협           추운 비행기를 타고 나는 봄에 미리 와서 흰옷을 입고 나이를 세다   손톱을 주웠네 반짝이는 바닷가 끝에서 끝으로 비행기가 날고 오 분에 한 번쯤 귀를 만졌네   서울은 눈이 많고 추위가 길고 기후가 나를 출발하게 하는데   아무도 모르고 벚꽃까진 멀다 하는데 나는 무수히 무수히 눈을 뜨고 여기는 봄으로 건너뛰는 길인데 기후가 나를 발견하는데   우는 사람을 보았네 우는 사람이란 무엇일까 여행지에선 길 잃은 골목이 반갑고 술집이 있네   얼음은 울음처럼 덜컥 내려앉네 잔속에 술을 녹여 먹었네[…]

오하이오 오키나와 외 1편
/ 2014-10-01
김해자
몰라 가는 길 외 1편 / 김해자

    몰라 가는 길       김해자           ㅇ이 깎여 ㅁ이 된 길 몰라도 올라갔지 물 아래 오래 헤엄쳐온 아가미로 숨 쉬는 발 따라 어젯밤에도 난 물밑을 다녀왔어, 거긴 통증관리실이란 게 없더군, 내일도 살아 아침밥을 먹을 수 있을까, 모레도 깨어나 아침이불을 개야 하나, 유통기한을 알 수 없어 몰라도 가는 길 몰라서 가는 길 이번 생은 아흐, 통증저장소 다시 또 태어나야 한다면 다음 생엔 상추 씨앗으로나 태어나 빨리 솎아져 버리고 싶어, 세상과 기-일게도 불화한 에움길에 동백꽃 떨어져서도 곱구나, 한 줌의 붉음 겨울 발치에 묻어 주고[…]

몰라 가는 길 외 1편
김해자 / 2014-10-01
백은선
청혼1 외 1편 / 백은선

    청혼 1       백은선               돌아보는 순간 혼자 남겨진 남자의 이야기를.     예감할 수 없는 예감을 기록하는 사람의 숙명을.     이 빛은 지운다.     첫 줄에서 지시하는 것과 같이     병들기 전에 했던 병에 대한 발화는 진실을 거느릴 수 없다고.       눈금이 달린 커다란 유리병에 투명한 액체를 쏟아 부으며,     이제 겨울이다.     멀리서 눈이 공중을 휘젓는 냄새가 난다.       나의 피는 정확한 청력 아래 흐른다.     팔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빛이 시작된다.     마른 땅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청혼1 외 1편
백은선 / 2014-10-01
함명춘
벽시계 외 1편 / 함명춘

    벽시계       함명춘               소년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방에 걸린 벽시계를 날마다 닦기로 했습니다       닦으면 닦을수록 벽시계는 시간을 빠르게 걷게 한다고 믿었습니다       해도 달도 별도 산속의 나무들도       때가 되면 꼬박꼬박 밥도 주었습니다       소년과 벽시계는 한 몸같이 살았습니다       소년이 곧 담장키를 훌쩍 넘을 해바라기가 될 무렵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석 달 후엔 할머니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소년은 벽시계를 날마다 닦아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처음으로[…]

벽시계 외 1편
함명춘 / 2014-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