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0일, 2014 서울국제도서전이 한창이던 삼성동 코엑스에서 황정은 작가와 독자들의 만남이 있었다. 황정은 작가는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후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파씨의 입문』과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를 펴내며 독특하고 뚜렷한 개성으로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
2014년 8월
부슬비 내리던 7월 9일 수요일 오후 7시,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 스페이스 필룩스에서 ‘문학 특!기자단’이 모였다. <작가와의 만남, ‘나는 왜?’>의 행사가 이곳에서 매달 열리기 때문이다. 이 달의 작가는 시집 <구두코>의 저자 조혜은 시인.
[8월_시_면] 서교동 술집의 마스크들* 석지연 콜롬비나Colombina 단 한 번도 빛나는 로맨스는 없었다 나는 하녀근성을 타고나서 양복 차림의 백발노인에겐 자장가를 불러주고 가슴에 파묻히려 들면 팁을 요구하게 돼 치와와처럼 눈을 빤짝이고 썩은 이빨을 드러내며 선생님 같은 분은 안 늙으실 줄 알았는데… 연민은 가난한 웨이트리스가 내오는 디저트일 뿐 당신이 술잔을 엎질러도 에이프런은 내 원피스가 아니다 아를레키노Arlecchino 쉽게 사랑에 빠지는 자는 유머를 압니다 쇼를 벌일 줄 알아요 거울에 머리를 박아 대며 꼽추를 흉내 냅니다 그럴 때 계집애들의 모성이란 제 배를 찌르는 흉기처럼 발휘되지[…]
낮은 하늘 아래에 콘크리트 상가 건물이 서 있었다. 어둡고 쌀쌀한 날씨였다. 4월 초의 날씨는 변덕스럽고 우울하고 여리다. 봄은 그리 밝게 빛나지 않는다.
“희생자가 두 명 더 늘었대.”
녀석은 떠났다. 경찰관을졸졸 따라갔다. 가자는대로가고, 타라는대로타는 녀석한테서 난동부릴 객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속된말로돌아버려서 국화를어떻게폭행했는지. 경찰차 두 대가 내려다보였다. 녀석을태운차가 떠났다. 경광등이시각적으로 만들어준 안정감 덕에 국화를 고즈넉히바라볼수있게되었다.
교실 안 형광등이 두어 번 깜빡거렸다. 곧이어 문이 열리며 교생 선생님이 등장했다. 선생님 손에는 반 아이들이 먹을 아이스크림 서른다섯 개가 든 묵직한 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와아 환호하며 달려들었다.
나는 책가방에서 파란색 수첩을 꺼내 방금 벌어진 일을 연필로 적었다.
아이가 없어졌다. 버스에서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빈 의자를 멍하니 쳐다봤다. 나윤아, 하고 크게 불러보았지만 어디에서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눈앞이 흐릿했다. 손을 내밀어 빈 의자를 더듬었다. 버스에 있는 모든 자리를 기웃거리며 아이를 불렀다. 나윤아! 우리 나윤이 못 보셨어요?
한 조는 오늘도 편의점에 들러 종이박스를 얻었다. 아르바이트생인 낙영이 귀찮다는 듯 종이박스를 넘겨줄 때마다 한 조는 바닥에 닿을 것처럼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다. 날짜 정해서 오세요. 아저씨 기다리느라 못 버리고 쌓아 둔단 말예요. 낙영이 말했다. 한 조는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였다. 종이박스를 받아든 한 조의 손톱이 까맸다.
강한 바람이 불며 모래가 흩날린다. 조용한 주택가의 2차선 도로 양쪽에는 드문드문 주차된 자동차가 있지만, 길 위를 달리는 자동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조금씩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등지고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마을 어귀로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남자는 머리에 상처가 있는지 얼굴이 피로 붉게 물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