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훈
[문학카페 유랑극장 후기]유랑극장에서 바라본 문학, 죄, 야만의 얼굴들 / 김재훈

마르크스 피카르트 식으로 말하자면, 문학의 기본적 속성은 과잉이다. 문학이 방법론적으로 내포하는 과잉 그 자체 혹은, 결핍의 과잉을 통하여 비로소 문학이라는 껍데기가 완성된다. 문학은 언제나 너무 멀거나 지나치게 가깝다. 그래서 문학은 낯설다. 익숙해질까 싶으면 한 발 빠르게 낯설어진다.

[문학카페 유랑극장 후기]유랑극장에서 바라본 문학, 죄, 야만의 얼굴들
김재훈 / 2014-06-01
이근일
해리 외 1편 / 이근일

    해리       이근일           나와 내가 분리되던 그 순간 그날의 나는 울지 않고 너를 껴안았다   이제 나를 기억하는 것은 오직 너뿐이니 너를 기억하는 것은 오직 나뿐이니   우리, 영원히 쪼개지지 말자.   이른 아침 우리는 반듯한 시간 위에 우유를 엎지른 뒤 사과 한 알과 무표정 하나를 쪼개지 않고 한 입씩 나눠먹었다   오후는 없었고 저녁엔 어둠과 함께 스멀거리는 그 불온한 검은 사건에 휩싸였다   그리고 깊은 밤 우리는 극심한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날마다 이렇게 같은 일상이 되풀이되었다.      […]

해리 외 1편
이근일 / 2014-06-01
서윤후
독거청년 외 1편 / 서윤후

    독거청년       서윤후               나는 집에서도 가끔 나를 잃어버립니다.       단 하나의 실핏줄로 터진 얼굴들을 생각하며 창백한 창문을 봅니다. 실내에서 유일하게 한 일은 웅크림이라는 도형을 발명한 것뿐입니다.       테라스엔 바깥을 서성이다 온 사람들이 있고, 그곳엔 버스나 기차가 정차하지 않습니다. 다만 조금씩 밀려나는 연습을 합니다. 경치 좋은 곳에서 감히       나는 나를 슬퍼할 자신이 있습니다. 두 손으로 얼굴을 포개거나, 일인분의 점심을 차리는 일에 능숙합니다. 홀수와 짝수가 나란해집니다.       너무 이른 시간에 모험이 끝났습니다. 못에 박힌 벽처럼 단단해집니다. 헐렁한[…]

독거청년 외 1편
서윤후 / 2014-06-01
황혜경
동사를 그리라고 하는 이웃집 아이 외 1편 / 황혜경

    동사(動詞)를 그리라고 하는 이웃집 아이       황혜경               떠오르는 문장을 놓친다 걷지 말아야겠다     밥솥 상자를 들고 고향으로 가나 봐 저 여자, 아니 누군가 늙은 어미의 딸, 바쁜 걸음으로 기차에 올라탄다     굽의 종류에 대하여 질문할 때마다 당신은 그랬지 발을 새 구두에 길들이려면 움직여야겠죠       동사(動詞)를 그리라고 하는 이웃집 아이     나는 줄넘기 하는 걸 그렸어요 화분에 물주는 걸 그려 보세요     하는 걸 그려 보라고 하는 아이     아이가 신은 하이힐처럼 나는 나를 홀대하듯이 아이 앞에서 뒤뚱거린다      […]

동사를 그리라고 하는 이웃집 아이 외 1편
황혜경 / 2014-06-01
고성만
적멸 외 1편 / 고성만

    적멸       고성만           쫓기듯 살아온 시간이다 몇 번 무릎을 꺾고 한숨 쉬어야 다다르는 마을   울타리엔 호박넝쿨 텃밭엔 가지넝쿨 멍석만 한 지붕 뒤쪽   양귀비 꽃잎 속으로 난 길이다 번쩍, 빛으로 내리치는 칼날   모가지가 부러진다   허물어진 골짜기에서 불타는 하늘을 우러른 죄 무릎 깊이의 개울에서 심연의 바다를 지향한 죄   허공도 숨을 죽인다                 저녁 일곱 시에 나는 침묵한다              뱃속에 검은 연기가 가득 차는 것 같아     유리창[…]

적멸 외 1편
고성만 / 2014-06-01
김철순
나비 외 9편 / 김철순

[아르코 창작기금-시]       나비     김철순           봄볕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나비 날아간다 나비 겨드랑이에 들어갔던 봄볕이 납작 접혀서 나온다 나비는 재미있어서 자꾸만 봄볕 접기 놀이를 한다 나비가 접었던 봄볕이 팔랑 팔랑 땅에 떨어진다               냄비         쉿! 조용히 해 저, 두 귀 달린 냄비가 다 듣고 있어   우리 이야기를 잡아다가 냄비 속에 집어넣고 펄펄펄 끓일지도 몰라   그럼, 끓인 말이 어떻게 저 창문을 넘어 친구에게 갈 수 있겠어? 저 산을 넘어 꽃을[…]

나비 외 9편
김철순 / 2014-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