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필숙
[동시]핀다 외 6편 / 추필숙

      핀다     추필숙       학교 담장에 장미 핀다. 밖으로만 핀다. 아이들이 어디로 가나 궁금해서, 몽글몽글 자꾸만 핀다. 가시바람도 향기도 덩달아 핀다. 벌 나비 날개도 핀다. 큰 사거리까지 따라 나와 핀다.   학원 가던 아이들도 장미가 어디까지 따라오나 궁금해서, 눈웃음이 핀다. 저절로 핀다.               봄 낚시       낙 싯 대 끝 에   사과나무는 사과꽃을 배나무는 배꽃을 대추나무는 대추꽃을   매 달 아 놓 고   기다린다, 나비와 벌이 낚싯밥을 물 때까지.          […]

[동시]핀다 외 6편
추필숙 / 2014-05-22
김미혜
[동시]누가 코끼리를 울게 했을까 외 6편 / 김미혜

      누가 코끼리를 울게 했을까     김미혜       사람을 태우려고 태어난 게 아닌데 공을 굴리려고 태어난 게 아닌데   앉아! 돌아! 가만히 있어! 훈련을 받는다. “말 안 들으면 때려야 돼.” 쇠꼬챙이가 달린 막대기로 머리를 찍힌다. 쇠고랑에 발을 묶인다. 주름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코끼리를 적신다.   코끼리를 차마 보지 못하고 뚝뚝 눈물 떨어뜨렸던 아이가 자라서 앉아! 돌아! 가만히 있어! 쇠꼬챙이가 달린 막대기를 든다.   누가 코끼리를 울게 했을까?   매 맞고 온순해진 코끼리 등에 올라 기념사진 찍는 우리. 코끼리 쇼를 보고 박수치는 우리.      […]

[동시]누가 코끼리를 울게 했을까 외 6편
김미혜 / 2014-05-22
박형권
<아직도 다방>의 모닝커피 외 9편 / 박형권

      <아직도 다방>의 모닝커피     박형권       그 골목 깊은 다방에서는 모닝커피가 끓고 있지 아직도 고시생이 순진한 처녀를 울리고 중개사는 보증금이 적다고 세입자의 목을 비틀고 있지 그때 마담은 담담하게 산세베리아를 들이지 쉰네 살의 쟁반 위에는 안개가 올려져 있고 안개에 쓴맛이 돌면 쓸개라고 해야겠지 이제 쓸개를 내려놓은 것인지 마담은 정태춘을 틀어 놓고 스물 몇 그리운 나이를 긴 스커트에 보일 듯 말 듯 숨겨 두고 있지 흐름에서 고임에서 마침내 증발한 인생에서 한 잔의 커피로 되돌아온 마담은 산전수전 시가전의 화신 그랬었지 그때 우리는 진정 그랬었지 우리는 최후의 승리를[…]

<아직도 다방>의 모닝커피 외 9편
박형권 / 2014-05-22
김정수
만월 외 9편 / 김정수

      만월(滿月)     김정수           막내네 거실에서 고스톱을 친다 버린 패처럼 인연을 끊은 큰형네와 무소식이 희소식인 넷째 대신 조커 두 장을 넣고 삼형제가 고스톱을 친다 노인요양병원에서 하루 외박을 나온 노모가 술안주 연어샐러드를 연신 드신다 주무실 시간이 진작 지났다 부족한 잠이 밑으로 샌다 막내며느리가 딸도 못 낳은 노모를 부축해 화장실로 가는 사이 작은형이 풍을 싼다 곁에서 새우잠을 자던 아내를 깨운다 며느리 둘이 노모의 냄새를 물로 벗겨낸다 오래 고였던 냄새가 흑싸리피 같은 피부를 드러낸다 술이 저 혼자 목구멍으로 넘어가다 단내를 풍긴다 작은형이 싼 풍을 가져가며 막내가[…]

만월 외 9편
김정수 / 2014-05-22
김유섭
행려의 잔치 외 6편 / 김유섭

      행려의 잔치     김유섭       화라락, 머리카락이 녹아내린 뒤 가장 먼저 끓어 증발하는 것은 말라버렸다고 믿었던 눈물 몇 방울이었다 유빙으로 떠돌던 피와 골수와 뇌수 같은 것들 눈알이 지글거렸다 움츠려 펴질 줄 몰랐던 근육이 부풀어 올라 장작처럼 터지며 활활 타올랐다 어눌하기만 했던 혓바닥이 오그라들어 돌돌 말렸다가 풀렸다가 외마디 방언 중이었다 뼛속까지 얼어붙는 세상이었다 끝내 어디에도 가 닿을 수 없었던 길 희미한 지문마저 뭉개진 손가락, 발가락으로 쓰러진 여기 어머니 뱃속일까 투둑투둑, 펑, 펑, 겨울 눈보라 내리치는 화장장 불타고 끓고 터지는 소리 음악으로 연주하면서 오랜 그늘에서 수거된[…]

행려의 잔치 외 6편
김유섭 / 2014-05-22
성윤석
바다악장 외 6편 / 성윤석

      바다 악장     성윤석       바다 곁에 살면 푸른빛을 얻는가. 어깨에 용 문신을 한 짐꾼 사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온다. 저 사내 생선 궤짝을 자꾸만 엉뚱한 소매가게에 부려 놓은 날은 여자가 죽은 날이었었지. 어떤 생애가 장어 골목 사이로 사라지고 해무가 뒤따라갈 때 바다는 머리를 풀어 눈 시리도록 시퍼런 파래 더미를 해안에 쌓고 구름이며 창문이며 바다에 나앉은 낡은 의자며 그런 것들을 붙잡고 바다 사람들은 멸치면 멸치를, 고등어면 고등어 좌판을 내놓는구나.   얼어 죽은 생선들의 벌린 입을 다 모아, 바다의 비명을 들어 보려 헤드폰을 낀 채 음악을[…]

바다악장 외 6편
성윤석 / 2014-05-22
장요원
브로콜리 주관적인 브로콜리 외 6편 / 장요원

      브로콜리 주관적인 브로콜리     장요원       감각이 뭉툭해   혓바늘이 돋았어요 뭉게뭉게 부풀어 오르던 치통이 마취주사 한 방에 무능해졌어요   가끔 혓바늘이 푸르게 부풀죠 그린이에요 그린에는 홉컵이 없고 감은 눈을 빠져나온 눈알이 공처럼 굴러 다녀요 어둠은 울창하고   오돌오돌 소름이 돋아요   주먹을 꽉 쥐고 잠이 든 날에는 자꾸만 벙커에 빠져요 모래알 같은 생각들이 흘러내려요   울음이 닳아버린 암고양이의 발은 어디로 갔나 마이크처럼 나무를 움켜쥐던 매미들은 다 어디로 갔나   꾸욱, 다문 입이 다발로 수북해요               본색  […]

브로콜리 주관적인 브로콜리 외 6편
장요원 / 2014-05-22
표성배
은근히 즐거운 외 6편 / 표성배

      은근히 즐거운     표성배           당신은 어떨지 모르지만 일요일이 은근슬쩍 기다려지는 것은, 즐거운 것은, 아니 당신이 들으면 고개를 갸웃할지 모르지만 콧방귀를 뀔까 염려도 되는       나는 월요일부터 화요일을 지나 점점 다가오는 일요일이 즐겁다       일단 일요일에는 좀 늘어지게 방바닥에 배를 깔고 등을 붙이고 있다 보면 아침은 슬쩍 건너뛰고 그로부터 내 즐거움은 슬슬 시작되는데       생각만 하면 월요일부터 입가에 웃음이 침처럼 흘러내리는데 아이들도 아내도 없는 조용한 집에서 바로 라면을 끓이는 일인데       어릴 적 동네 어른들이 라면 회취(會聚)를 하는 날[…]

은근히 즐거운 외 6편
표성배 / 2014-05-22
물속 파랑의 편지 외 6편 / 이병일

      물속 파랑의 편지     이병일           여기 수달의 편지가 와 있다 그러니까 젖은 버들강아지 냄새와 지느러미를 감추고 비린내를 풍기는 편지가 와 있다 물의 봉투를 찢고 나는 물갈퀴 지문이 다 지워진 물속 편지 속으로 들어간다 모래무지 옆구리에 박힌 무지갯빛 때문에 편지의 활자들이 가장 아름다워진다       귀퉁이 잘린 편지, 산천어의 푸른 비명을 찢는 수맥들이 문장들을 가닥가닥 풀어 놓는데, 어제 죽은 조약돌이 아무렇지도 않게 반짝이며 수평선의 젖을 빠는 소리가 들린다 지느러미 달린 치어들이 물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겨갈수록 꽃잎 아가미를 낚아챈 달빛의 미늘도 보인다      […]

물속 파랑의 편지 외 6편
이병일 / 2014-05-22
고성만
마네킹을 배달하는 퀵서비스맨 외 6편 / 고성만

      마네킹을 배달하는 퀵서비스맨     고성만           여자를 들고 달린다       가방 속에 든 여자의 몸은 여러 겹의 포장으로 둘러싸여서 잘 보이지 않는다 욕이 먼저 튀어 나온다 씨발,       벌거벗은 마네킹이다 마네킹이 쳐다본다 마네킹을 때린다 마네킹이 운다 마네킹을 다시 집어 넣는다 마네킹과 함께 도망친다 한사코 시의 외곽으로       경찰차가 따라온다 그를 안다고 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안다고 생각한다 부릉부릉 오토바이의 속도를 높인다 경광등을 울린다 경찰관이 거수경례를 한다       위반하셨습니다       시켜만 달라고 각종 배달 심부름 대행 안 하는[…]

마네킹을 배달하는 퀵서비스맨 외 6편
고성만 / 2014-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