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어제의 봄과 오늘의 여름 외 1편 / 이제야

    어제의 봄과 오늘의 여름   이제야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았다 오늘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모르는 동안에는 쓸 수 없는 날들이 늘어 갔다   어제는 초봄이었는데 오늘은 늦여름이라는 한 사람을 만났다   이유 없는 느낌과 사실 없는 직감을 주고 갔다   믿는 동안에는 근거 없는 날들이 좋아졌다   창밖을 그림으로 착각할 때 벌써 도착한 일들이 많아진다   창문을 열어 놓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을 때 창밖에서 누군가 그것이 여름이라고 했다   여름이래, 창문을 닫을 때 누군가는 밖으로 낙엽을 던졌다          […]

어제의 봄과 오늘의 여름 외 1편
이제야 / 2014-02-01
이문숙
블루 라이트 외 1편 / 이문숙

    블루 라이트   이문숙           족저근막염을 앓는 친구에게 구름을 신겨 주었다 그랬더니 어느새 구름의 승강장에 올라 손을 흔든다 야간 등을 달고 비행기가 벌써 넉 대째 구름 속으로 잠긴다   미얀마에 가 탁발을 하거나 먼지 냄새 나는 마을에서 우리말을 가르치거나   물론 아픈 제 발을 주무르며 제발과 제 발의 차이를 가르치긴 무척이나 어렵겠지 띄어쓰기가 이렇게 중요한 건 처음 알았어   장미의 이름이 춤추는 소녀이거나 블루 라이트이거나   하늘에 그녀가 벗어놓은 샌들이 한가득이다 끈이 끊어졌거나 뒷꿈치가 형편없이 닳았거나 바닥에 잔돌이 박혔거나   나는 가끔 내가 그녀에게[…]

블루 라이트 외 1편
이문숙 / 2014-02-01
성미정
어린 루콜라 외 1편 / 성미정

    어린 루콜라   성미정           상추나 깻잎이나 한 줌 심어 쌈이나 싸먹으면 될 걸 대파뿌리나 화분에 심어 찌개에 넣으면 될 걸   굳이 루콜라를 키워 보겠다고 꼭 차이브 꽃을 피워 보겠다고   이름도 낯선 풀들의 씨앗을 탐내고 바람 서늘한 날엔 베란다에 내놓은 식물들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고   이 빠진 접시 위의 미나리 뿌리도 물만 마르지 않으면 난초 못지않은 화초임을 알면서도   채송화와 봉선화가 심겨진 작은 화단에서 흙장난하던 어린 날처럼 루콜라를 심고 차이브를 심고   뿌리를 좀 다독거려야 할 시간에 자꾸 흙을 파헤치고   날[…]

어린 루콜라 외 1편
성미정 / 2014-02-01
겨울잠 1 외 1편 / 위선환

    겨울잠 1   위선환               두 손 포개어서 가슴 위에 얹고 죽은, 죽은 사람의 손가락 끝에서 얼음이 자라는 겨를이다       가뭇가뭇 젖은 눈이 내리어서 쌓이는 눈썹털 아래에서 눈그늘이 늙으며 깊어지는 겨를이다       죽은 사람이 뒤치며 돌아눕는, 수의 자락이 감기기도, 하늘 자락이 걸리기도 하는 겨를이다       추운 사람의 늙은 등허리를 아직은 따뜻한 사람이 두 손바닥 바르게 펴서 덮어 주는 겨를이다       높은 구름의 틈새에서 내린 햇살이 멀리 비쳐서 무덤 밖으로 내놓은 죽은 발이 환한 겨를이다       제 꼬리를 먼저[…]

겨울잠 1 외 1편
위선환 / 2014-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