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영
골목의 이면 / 박화영

    골목의 이면     박화영               새벽 2시 10분 22초, 골목 안 거주자들 가운데 깨어 있던 마지막 사람이 잠드는 것을 신호로 골목이 깨어난다. 잠들기 직전까지 이곳 사람들이 입 밖으로 내뱉었거나 입안 깊숙이 담아 두었던 무수한 말들이 골목 안 여기저기에서 메아리치고, 전갈좌가 명왕성과 일직선을 이룬다. 수군대고 뒤척이는 골목길로 유령이 걸어간다. 연립주택 앞을 지나는 유령. 연립주택의 주소는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381-46번지. 시각은 2시 10분 23초. 달은 23일 2시간 10분 24초째 지구를 공전 중이다. 유령은 골목길 위, 북북서 방향에 떠 있는 달빛을 받으며 계속 걷는다. 상체를[…]

골목의 이면
박화영 / 2013-10-04
강정
바다에서 나온 말 외 2편 / 강정

    바다에서 나온 말   강정       달을 희롱하며 바다에서 나온 말[馬]은 창 앞에서 기다린다   – 김구용, 「유월」에서     누가 창가에 서 있다 여자라고도 남자라고도 말 못하겠다 남자의 성기 끝에 여자의 입을 달았다고나 말해야겠다 사람이라고도 사람 아니라고도 말 못하겠다 짐승의 몸으로 사람이 풀을 뜯는 것이라고나 말해야겠다   누가 창가에 서 있다 바람일까 낮에 본 나무의 그림자가 뿌리를 일으켰을까 이 집엔 없는 몸들을 일으켜 밤새 집 안을 서성이게 하는 것으론 바람이라고 믿는다 풀 하나 없는 방 안에 묵은 시간의 綠藻를 풍기면서 뚝뚝 천장의 누수를 도발하는 것으론[…]

바다에서 나온 말 외 2편
강정 / 2013-10-04
김해자
[민들레문학특강 참여 후기]죽음과 다시 태어남에 대하여 / 김해자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     죽음과 다시 태어남에 대하여     김해자             경찰복 비슷한 차림의 젊은 경비 둘이 입구를 지키고 섰는 시립 00센터는 사회복지사 몇 빼고는 다 남자였다. 200명 중 반은 알코올 의존증 재활자요 반은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 했다. 조울증 사회불안 정신분열 강박장애 환청 환시 과대망상 등 소위 진단된 수많은 병명 중에 두셋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는 우리들의 글쓰기 주제는 죽음으로 시작되었다.     어제 내 친구 제만이가 죽었다고 하더군요, 느릿느릿 전라도 사투리로 말하는 52살 한 씨는 오전 전화로 친구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했다. “10시 50분경 인천에[…]

[민들레문학특강 참여 후기]죽음과 다시 태어남에 대하여
김해자 / 2013-10-04
권오영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우산 속에서 나는 / 권오영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     우산 속에서 나는,     권오영(시인)             샘물을 품고 있는 사막 같은 사람들을 나는 좋아하게 되었다. 짓밟힌 잡초가 되살아나듯 여름의 더위는 실컷 기승을 부렸고, 기승을 부릴수록 사람들은 더위를 밀어내고 힘껏 여름을 견뎠다.     낮과 밤이 엇갈리는 저녁. 매주 목요일 저녁이면 온수역에서 이십 분 정도를 걸어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 걷는 동안 떠올렸던 얼굴들이 환하게 웃고 있을 때, 나도 환해졌다. 어떤 노력, 꺼내 보려는 어떤 단단한 기억,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몸짓은 과거의 시간들과 미래의 시간들이 뒤섞여 있는 ‘지금’이라는 현재형으로 그들을 만나고[…]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우산 속에서 나는
권오영 / 2013-10-04
고영직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질문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 고영직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     질문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고영직(문학평론가)             작년에 이어 민들레문학 특강에 참여했다. 올해 민들레문학 특강은 작년보다 강의 횟수가 더 많아졌고, <민들레예술문학상> 공모대회 주제 또한 말랑말랑한 글감들이어서 재미있고 의미 있게 글쓰기 강의를 진행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랑말랑한 글감들이 선정된 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2회째를 맞은 <민들레예술문학상>의 공모 주제는 그리운 그 사람, 내 마음의 고향, 십 년 후의 나, 이 세 가지였다.     글쓰기는 세상을 향해 말을 거는 행위와 같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겪은 인생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그때 느낀 감정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질문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고영직 / 2013-10-04
문숙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결이 고운 사람들과 함께한 문학놀이 / 문숙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     결이 고운 사람들과 함께한 문학놀이     문숙(시인)             특강을 시작한 첫날이었다. 복지관 강의실에는 열대여섯 명 되는 입소자가 저녁식사를 마치고 모여 있었다. 모두 남자들이었고 사십대로 보이는 한 사람만 빼고는 전부 50대 후반에서 80대까지 높은 연령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지친 눈빛을 대하며 글을 쓰게 할 수 있으리란 나의 기대는 난관에 부닥쳤다. 강사 소개가 끝나자, 나는 문학을 배워 보고 싶은 분 있으며 한번 손들어 보라고 말했다. 예상대로 딱 한 사람만 손을 드는 것이었다. 그러자 다른 한 명이 손을 번쩍 들고 “선생님,[…]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결이 고운 사람들과 함께한 문학놀이
문숙 / 2013-10-01
이청해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꽃의 흔적 / 이청해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     꽃의 흔적     이청해(소설가)             화원 앞을 지날 때마다 꽃구경을 하곤 한다.     시장통 입구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화원.     앞에 내놓은 노랑, 분홍, 하양의 꽃들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농부의 아내 같은 아주머니가 웬일이유? 하듯이 얼굴을 내민다. 뽀글뽀글한 파마에 엉덩이가 큰 아주머니의 얼굴에 선의가 가득하다. 이만한 양의 선의는 요즘에 아주 보기 힘들다.     흙과 몸 섞고 살아서 저럴까. 식물에서 나온다는 음이온 때문일까. 나는 그저 구경만 하겠다는 의미로 공손하게 목례를 보낸다.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여간해서 꽃을 사지는 않는다. 덜컥 화분을 골라다 놓고[…]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꽃의 흔적
이청해 / 2013-10-01
김성규 시인(2013)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김성규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김성규(시인)             처음으로 용문에 가보았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거리라 도시 외곽쯤 될 거라 생각했는데 도착해 보니 용문은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쯤 되는 곳이었다. 소읍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시장과 조그만 버스터미널, 좌판에 벌여 놓은 나물과 파리들이 날아와 지루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맞는 모습. 고향에 온 느낌을 받아서 마음이 편안했다. 서울을 완전히 벗어나자 차창 밖으로 푸른 산과 들판이 지나갔고, 노인들이 먼 거리를 달려와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기도 하고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활기 있었다. 가끔 대학생들이 동아리 엠티를 오기도 하였다.[…]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김성규 / 2013-10-01
손홍규 소설가(2013)
서울(제9회) / 손홍규

  서울(제9회)   손홍규           노인의 상처에 코를 갖다 댄 소년은 희미한 악취를 맡았다. 상처가 쉬이 나을 것 같지는 않았다. 노인은 거기부터 썩고 있었다. 언젠가는 완벽하게 썩어 문드러질 거였다. 죽기 위해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어쩐지 면죄부인 것만 같았다. 깨진 창으로 소음이 밀려 들어왔다. 개가 움찔거렸다. 소년은 옆으로 누운 채 가볍게 헐떡이는 개의 입가에 묻은 피거품을 닦아 주었다. 개는 눈을 떴다가 감았다. 소총을 내려놓고 바닥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댄 소년은 다리의 상처를 살폈다. 겉보기에는 아물어 가는 듯했으나 통증은 여전했다.[…]

서울(제9회)
손홍규 / 2013-10-01
황인찬
[연재에세이: 비문학영역(1회)] 영원한 팔월, 어린 신의 세계 / 황인찬

【 비문학영역_1 】   영원한 팔월, 어린 신의 세계   황인찬(시인)             세카이계, 세기말, 중2병       ‘세카이계(世界係)’라는 말이 있다. 일본 서브컬처에서 주로 사용되는 서사 유형을 가리키는 말로, 한 소년과 소녀의 운명이 세계 전체의 운명으로 직결되는 이야기 유형을 말한다. 전통적인 서사 유형이 개인-사회-세계로 이어지는 세계 모델을 보여준다면, ‘세카이계’의 작품군은 중간 항을 소거한 ‘개인-세계’의 모델을 보여준다는 차이점이 있다. 예를 들면 이 작품군에 속하는 만화 「 최종병기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세계의 존망을 가르는 최종병기가 되어버린 여자아이와 그녀의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는 어째서 작은 여자아이가 최종병기가 되어야[…]

[연재에세이: 비문학영역(1회)] 영원한 팔월, 어린 신의 세계
황인찬 / 2013-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