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슬픔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왠지 촌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슬픔 따윈 절대로 내색하지 않는 냉정한 사람이 세련된 인간으로 평가 받는 분위기에 나는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슬픔은 숨겨야 할 금기가 아니라 인생의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라 믿기 때문이다.
2013년 5월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소년들을 구하러 온 순양함 장교의 한 마디가 볼만하다.
“너희들끼리 이 무인도에서 [산호섬]에 나온 것처럼 멋진 생활을 했겠구나.”
그 말을 들은 랠프는 그저 울고 또 울 뿐이다.
작가라고 하면 제도권 안에서 좋은 학교 가고 글 잘 쓰고 똑똑한 분들이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하잖아요? 편견을 갖고 있다 보니까, 그런 사람들이 못 쓰는 나만의 이야기를 써보자고 했던 것 같아요. 작가라면 소망이 있거든요.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을 써야겠다는 욕망이요.
여러분은 판토마임을 보신 일이 있나요. 대사 없이 몸짓만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무언극(無言劇)이라고도 하지요. 무대장치가 없거나 최소화된 상태에서 배우는 표정과 몸짓만으로 무언가를 표현해 냅니다.
독서실 안이 더워 밖으로 나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았다. 볼에 닿는 캔의 서늘함은 더운 기분을 금방 식게 했다. 나는 한쪽 벽에 쭈그리고 앉아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느새 까맣게 변한 밤하늘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하얀 별 몇 개가 눈에 띄었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별이었다.
도화지에 그려진 삽화 한 장이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집 안을 뛰어다니는 남매와 하얗게 센 머리칼을 휘날리며 아이들을 쫓는 노파. 삽화 속의 장면은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나이 든 마녀에게 그레텔 남매가 쫓기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삽화가 평면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 동화 속의 장면은 어딘지 생동감이 부족해 보인다.
지난 4월 13일 토요일 오전 11시, 〈 문학 특!기자단 〉 첫 모임이 열렸습니다. 기자단은 글틴 웹진에 주기적으로 글을 올리며 독자들에게 유용한 문학 정보를 제공하게 됩니다. 매달 아이템 발굴과 회의, 취재, 기사 작성 등 문화부 기자들이 겪는 일련의 취재 과정을 경험하고
별은 온다
별은 길고
국수처럼 자란다
빛을 털며
지구로 발을 내린다
무너지는 우리의 기울기를 위해
최근에 한 인터뷰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어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인터뷰 기사가 실릴 곳이 온라인 서점이어서 그런지 인터뷰어의 질문들 중엔 유독 ‘책’에 관련된 것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유년기, 청소년기, 문학청년 시절, 그리고 현재까지, 저에게 인상 깊은 책들이나 크게 영향을 끼친 책들에 관해 각각 이야기해달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 섬나라 스카리니아(Skarinia)의 그라(Goora)산(山)에서 ‘닭 치고’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몇 주일동안 사람이라고는 코빼기도 구경하지 못하고, 닭떼를 지키며, 사냥 묘(猫)인 스호쉬 고양이(sfosi cat)를 상대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습니다. 물론, 스호쉬 고양이는 인간의 말을 못했습니다. 야옹야옹거릴 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