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정 평론가(2013)
[3월 월평] 욕심 없는 글 / 김미정

글에 대한 욕심이 클수록 멋진 표현, 언어들을 구사하고 싶은 욕구도 커질 것입니다. 글 쓰는 많은 이들의 공통된 욕구이자 조심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전봇대 사진사」는 그런 욕심을 절제하고 최대한 자기만의 생각과 언어를 소박하고 꾸밈없는 문장 속에 녹인 것이 장점입니다.

[3월 월평] 욕심 없는 글
김미정 / 2013-03-15
김희선 소설가(2013)
개들의 사생활 / 김희선

문 밖에서 트럭을 세우는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남색 작업복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뛰어 들어와 외친다. “어디에 내려놓을까요?” 그들은 제약회사에서 나온 배송직원들이고, 박카스 상자를 쌓아 둘 장소에 대하여 묻고 있다. 내가 약국 앞 한구석을 가리키자 두 남자는 빠르게 박스를 쌓아올린다. 개수를 확인한 뒤 거래명세서에 도장을 찍어 주자, 그들이 나간다.

개들의 사생활
김희선 / 2013-03-08
한은형 소설가(2013)
그레이하운드의 기원 / 한은형

나는 그가 개로 변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 그레이하운드 한 마리가 남겨져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낯가림이 심하다는 그 견종이 나를 향해 꼬리를 맹렬히 흔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개로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행적을 돌이켜보면 그가 개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들이 떠오른다. 그가 개가 되지 않았다면 필연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레이하운드의 기원
한은형 / 2013-03-07
김성중(2013)
Corazon Limpio / 김성중

3주간 쿠바 전역을 여행했다. 쿠바는 길쭉한 고구마처럼 생긴 섬나라인데 나는 미리 약속해 둔 길동무와 합류하기 위해 중부 지역부터 여행을 시작해 동쪽 끝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트리니다드로 올라와서 서쪽으로 올라갔다.
1월 말까지 소설 마감을 하느라 피 마르는 전쟁을 치르고(열네 시간의 시차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Corazon Limpio
김성중 / 2013-03-07
십년감수(十年感秀)_시
돌들의 풍경 / 김경후

김경후의 시집 『그날 말이 돌아오지 않는다』를 펼쳐든 독자는 어쩌면 말(言)이란 조물조물 만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관념조차도 물질처럼 다루어지고 있는 김경후 시의 현장이 흡사 기이한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상연하는 곳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돌들의 풍경」 역시도 마찬가지다. 독자는 부동의 자세를 취하는 줄만 알았던 광물에, 또는 광물들을 가로지르는 ‘사이’에 부여된 어떤 운동성을 경험하게 된다.

돌들의 풍경
김경후 / 2013-03-02
천수호 시인(2013)
저수지 속으로 난 길 / 천수호

시가 우리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때가 있다. 「저수지 속으로 난 길」에서 만난 파문의 경우가 그렇다. 삶에 어떤 파문이 일 때마다 우리는 당혹스러워한다. 어떤 일들이 초래될까 두려워서다. 안전한 삶이 시끄러워질까 싶어 불안해서다. 그러나 파문은 그런 것이 아니다. 돌 하나를 저수지에 던질 때 일어나는 파문이란 실은 요란하지 않은 것이다.

저수지 속으로 난 길
천수호 / 2013-03-02
신혜정 시인(2013)
라면의 정치학 / 신혜정

현대는 ‘엑기스’의 시대, ‘농축’이 아니면 안 되는 시대인데 정작 이 시대의 엑기스와 농축을 이루고 있는 재료를 살펴보자면 소고기‘맛’ 베이스, 지미강화육수‘분말’, 햄‘맛’분말, ‘향미증진제’ … 온통 진짜가 있다고 가정하고, 진짜를 염원하는 ‘가짜’들뿐이다. 이는 현대의 아이러니다. 그리고 동시에 라면의 아이러니다.

라면의 정치학
신혜정 / 2013-03-02
김록 시인(2013)
낙엽 독설 / 김록

이미 떨어져 버린 잎(落葉)을 인간은 계절의 우수를 전하는 매개물로 잘도 이용해 왔다. 그러나 그래도 된다고 누가 허락해 주기라도 했던가. 낙엽을 보고 싶지 않다 해도 낙엽이 먼저 나를 보아버려 끝내 낙엽을 볼 수밖에 없다는 시의 화자처럼, 자유의지로 형성되어 온 것이라고 여겨졌던 우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판별력이야말로 실은 가장 의심해야 할 대상이다.

낙엽 독설
김록 / 2013-03-02
신영배 시인(2013)
정오 / 신영배

때때로 시는 단 한 컷의 이미지다. 모두의 그림자가 가장 짧을 시간, 어떤 화분에서 흘러내린 물은 계단을 적시고 있는 나머지 그 물의 자국이 곧 화분의 그림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림자’로의 착각, 이는 곧 이미지가 독자인 당신을 꿰어내었다는 증거다.

정오
신영배 / 2013-03-02
정영문 소설가(2013)
브라운 부인 / 정영문

브라운 부인은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심한 미국 중서부에서 나이든 백인 남자와 살고 있다. “그녀는 늘 경비행기를 몰아보고 싶었다.” 남편과 함께 한가롭게 저녁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브라운 부부의 집에 불청객이 찾아든다. 꽤 무거워 보이는 총 한 자루를 든 사내아이는 평온한 집안에 들이닥친 강도치고는 너무나도 부자연스럽게 브라운 부인과 스스럼없이 말을 섞으며 어울린다.

브라운 부인
정영문 / 2013-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