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조용하던 골목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봄이 과연 왔나 보다 한다. 아이들은 가장 먼저 봄을 알아채고 골목에 나와서 몰려다니며 소리를 지른다. 놀이의 법칙을 발명해 나가면서 티격태격하다 깔깔대고 소리치며 뛰어다닌다. 그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나도 좀 끼워 줄래 하며 나가 보고 싶어진다.
2013년 3월
어른이 되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마냥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언제나 행복한 건 아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에도 권태가 찾아온다. 나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글 쓰는 일을 사랑하지만, 때로는 들끓던 열정이 고갈되고, 휴식이 필요할 때가 온다. 그럴 때 나는 옛사람들에게 의지한다. 나는 이옥(李鈺, 1760~1815)의 작품에서 항상 ‘글을 쓰는 첫 마음’을 되찾게 해주는 마법을 느낀다.
“어때? 선글라스까지 쓰니까 더 우아해 보이지 않아? 부잣집 딸 같지?”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미라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라는 새 옷을 입었을 때도 향수를 뿌릴 때도 새로 산 구두를 처음 신을 때도 나에게 물어왔다. 다른 건 다 양보할 수 있어도 그 말은 끝까지 해주기 싫었다.
그 봄으로 한 여자가 입장 한다 맨발이다 일순간 일제히 모든 시선들이 여자가 끌고 온 여행 가방의 테두리처럼 상처투성이인 그 발에 주목한다 사위는 적막을 껴입은 듯 고요하다 여행 가방처럼 먼 길을 끌려 다닌 여자의 그림자가 여자를 끌어안고 먼저 쓰러진다
코끝이 간지럽다 싶더니 예상치도 못한 재채기가 우스꽝스러운 소리와 함께 킁, 하고 터져 나왔다. 콧물이 찔끔 흘러나오는 느낌에 서둘러 두루마리 휴지를 끊어 코를 훔치고선 큰 죄를 지은 대역죄인 마냥 펼쳐 둔 책 위로 고개를 숙였다. 칸막이에 가려져 있지만 모두가 눈을 들어 나를 쏘아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방법원에 개명신청서를 제출하고 왔다
가을이라기엔 너무 춥고 겨울이라기엔 따뜻한 날
뒷마당 감나무에선 잘 익은 감이 홍시로 이름을 바꾸는 중이다
이름도 닳더라, 개명신청서에 너덜너덜한 이름을 마지막으로 적어낼 때
촌스런 그 이름에선 풀내음이 어찌나 독하게 나던지
지금은 개명신청기간, 내가 이 이름도 저 이름도 아닌 애매한 시기
어떤 이들에게 문학상은 쓰는 데 주춤할 뻔한 시기에 사소하지 않은 에너지를 줄 수 있다. 글틴 최선혜(소설), 김민식(시)도 마찬가지다. 둘은 지금 글을 쓰는 순간조차 “쓰고 싶다. 계속 써야겠다”는 설렘을 얻었다. 딱 어느 한 시기가 아니면 받을 수 없는 상 ‘제8회 문장청소년 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아니면, 아무리 잘 쓰고 무슨 수를 쓴다 하더라도 받을 수 없는 상.
저는 시를 다 쓴 후, 제 시를 다시 읽을 때마다 항상 부족함을 느낍니다. 이 시 역시 다 쓰고 나서 여러 번 고치고도 만족하지 못했던 시인데 그 시가 상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기분이 애매합니다. 또 그동안 좋은 시를 만들기 위해서 했던 노력들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기도 합니다.
처음 제 시를 다른 사람들에게 평가 받을 때, 쉴 새 없이 비판받았던 충격을 시작으로 저는 시를 ‘열심히’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상으로 자만하지 않고 앞으로 더 좋은 시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 월 장원과 더불어 연 장원을 주신 글틴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글틴에서 받은 연 장원 상이 무색하지 않게,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꾸준히 써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P, P야! 너 괜찮니?"
괜찮지 않으면 대체 어쩌라고? 감정 섞어 대꾸했지만 엄마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보다, 걔는? 동생은?"
동생. P는 그 말을 거의 쓰지 않았다. 동생을 동생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도 않아, 친구들은 자신을 외동아들로 알기까지 했다. 기념할 만한 언젠가는, 옷을 채 갖춰 입지도 않고 밖을 싸돌아다니는 동생을 발견하고 동행하던 친구들에게 "우리 출출한데 분식집이나 가자."라고 제안해 피해 가기도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치 않은 발음으로 "형!" 하고 요란히 외쳐댔을 것이다. 먼 거리에서도 사람은 귀신같이 알아보는 애였다. 동생을 거리에 버려두고 온 것은 후회하지 않았다.
어린 여자아이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우리 동네는 세상의 전부였다. 마당 밖을 나갈 때에는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야만 했던, 걱정 없고 절망이 없던 예닐곱 살의 아이에게는 말이다. 우스꽝스럽게 모습이 비치는 대문에 얼굴을 이리저리 가져다대며 꺄르르 웃다가, 조금만 놀다오라는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총알같이 튀어나가던 나는 항상 동네 슈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