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침실 / 김소형

  사랑, 침실   김소형         밤, 붉은 여자가 떠났다 사랑, 침실로 여자가 창문에 고개 들이밀고 내 침대에 올라왔지 사랑, 침실로 옆에 누워 속삭이며 죽음의 이불을 덮자 하이얀 눈 굴리며 죽음의 이불을 덮자   나는 여자의 손 힘껏 움켜쥐었어 쑥 빠져 버린 팔 가슴에 품고 거리에 나와 소리 질렀지 이걸 봐! 왼팔과 오른팔이 부메랑처럼 붙어 있는 붉은 팔, 던져도 다시 돌아오는 밤의 발톱을 그러나 사람들은 떠났네 사랑, 침실로   서로의 발 보며 잠들었던 부랑아들 서로의 몸 깔고 누웠던 노숙자들, 모두 여자의 허리 끌어안느라 정신없었지 여자가 내게 말했다[…]

사랑, 침실
김소형 / 2012-01-31
/ 김경후

  눈   김경후         너의 등에서 얼어붙은 창문 냄새가 났을 때 나는 너의 등이 되었지 네가 뒤돌아보지 않는 등 만질 수 없는 등 길바닥에 쓰러진 불 꺼진 가로등 그칠까 눈이 그칠까 솟구칠까 눈이?   너의 등에서 짓밟힌 눈사람 냄새가 났을 때 나는 너의 등뼈가 되었지 어둠 속에선 딱딱하지만 가장 붉은 네 심장을 감싸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움츠린 등뼈   그건 세상의 모든 음표로 엮은 너와 나의 새장 하지만 세상 어떤 새도 없는 새장 눈이 내릴까 눈이 그칠까 눈이?   너의 등에서 나는 냄새가 나의 내일보다 달콤했을[…]

김경후 / 2012-01-30
간이역 / 김도형

    [제7회 문장청소년문학상 / 대상]     간이역   김도형             화랑대역, 모퉁이 꽃밭에 물을 뿌리던 노인은   흰나비의 궤적을 따라   녹슨 철길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반짝이듯 멀어지는 나비는 철길 너머 아득한   구름의 내부를 더듬어 길을 찾고 있다     오지 않는 기차 대신 구름과 나비가 머물다 떠나는 플랫폼,   이곳의 마지막 역장이었던   노인의 얼굴에 선로처럼 돋은 검버섯들 사이로   붉거나 푸른 웃음이 핀다   멀리 덜컹대며 떠나간 무수한 삶의 궤적들은   지금쯤 어느 벌판 위를 달리고 있는지    […]

간이역
김도형 / 2012-01-30
김미정 문학평론가를 만나다 / 변인숙(필명 : 미지)

  네 꿈을 펼쳐라 시즌_2 글틴 인터뷰 탐험대     김미정 문학평론가를 만나다     ● 일시 : 2011. 12. 26(월) 오후 4시 ● 장소 : 연희문학창작촌 미디어랩실 ● 참여 : 김미정(문학평론가), 김예진, 어윤진(이상 글틴)         인터뷰가 난감할 때는 한 편이 일방적으로 말해야 하는 순간이다. 심지어는 그게 마치 강제인 것처럼 딱딱하게 이뤄질 때, 어느 한 편에서는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네 꿈을 펼쳐라 시즌 2 – 글틴 인터뷰 탐험대'는 다행스럽게도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글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나누는 분들이 대개 인터뷰에 참여해 주신다. 기본적으로 공감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궁금증을 들어주는 이들이다.[…]

김미정 문학평론가를 만나다
변인숙(필명 : 미지) / 2012-01-27
보들레르 / 장성호

  [제7회 문장청소년문학상 / 우수상]     보들레르   장성호         이 감상문은 『보들레르의 수첩』(문학과지성사)을 바탕으로 썼으며, 『악의 꽃』(밝은세상)과 『파리의 우울』(민음사)을 참고로 하였다.     *     방탕,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인 샤를 보들레르를 논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엄청난 낭비벽과 창녀 잔 뒤발과의 오랜 애정행각 등 실제로 그의 인생은 방탕이라는 단어에 어울릴 만했다. 또한 여기서 나는 그런 사실들을 부정하지 않겠다. 다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샤를 보들레르라는 인간에 대한 인상이 너무 방탕에만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보들레르가 현대에 와서 재조명됨과 동시에[…]

보들레르
장성호 / 2012-01-27
할머니의 풍선껌 / 김소연

  [제7회 문장청소년문학상 / 우수상]     할머니의 풍선껌   김소연           꾸역꾸역 차에 오른다. 할머니 댁에 가는 건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만으로도 벅찰 지경이다. 나는 최대한 가지 않겠다고 버텨 보지만 끝까지 차에 태우는 아빠를 이길 수가 없다. 연산동에 있는 할머니 집에는 정말 가고 싶지 않다. 혼자 있는 할머니도 싫고 무엇보다도 그 냄새가 싫다. 할머니 집에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 그 냄새는 시큼하고 매캐한 노린내를 풍긴다. 나는 그것을 할매 냄새라고 한다.     현관문을 열자 방 안의 뜨뜻한 공기가 훅 얼굴을 스친다. 할머니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할머니의 풍선껌
김소연 / 2012-01-27
나는 잘못이 없다 / 문하나

  [제7회 문장청소년문학상 / 우수상]     나는 잘못이 없다   문하나           “자. 드디어 시험 마지막 날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라고 했으니, 지난 3일 동안 시험 망쳤던 사람도 오늘 열심히 치고 기분 좋게 끝내도록!” “   결과 좋으면 맛있는 거 사주셔야 해요!”   “꼴찌만 면해 봐라. 뭐든지 사줄 테니까. 나도 너희한테 뭐 좀 사줘 보자, 응?”     아이들은 일제히 우와─ 환호성을 내지르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담임선생님이 그토록 시원스럽게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우리 담임선생님은 장난, 농담이[…]

나는 잘못이 없다
문하나 / 2012-01-27
페루 / 이은선

  [제7회 문장청소년문학상 / 우수상]     페루   이은선           현기증처럼 찾아오는 어느 고산지대의 해질녘   인디오 소년들이 한 떼의 양을 몰고 좁은 들판을 내려간다   세상의 모든 저녁 위에 걸쳐진 어둠과   천천히 지워져 가는 지루한 시간들   이 긴 나라 안에서는 고요만이 유일한 화법이라는 듯     때때로 그들은 입 안에서 웅얼웅얼 맴도는 말들이   모래바람처럼 지나가는 조상의,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들 스스로의 이름을 봉인해 둔 채   해가 뜨고 밤이 오고 또 해가 뜨기를 기다리며   멍하니 양털을 쓰다듬고 있는지도[…]

페루
이은선 / 2012-01-27
봉숭아물 / 김효정

  [제7회 문장청소년문학상 / 최우수상]     봉숭아물   김효정           손톱의 봉숭아물이 손톱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열 손가락, 발가락 다 싸매고 어기적어기적 이마 위의 땀을 닦으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쳤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쌉싸래한 초겨울과 마주하고 있다. 주황빛은 물러가고 생생한 분홍빛이 솟아오르는 손톱을 보며 지난여름을 그린다.     여자 아이라면 누구나 어릴 적에 봉숭아물을 들여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엄마와 함께 봉숭아 꽃잎을 따러 아파트 화단, 학교 화단, 동네 공원 등 봉숭아가 있을 만한 곳은 다 돌며 비닐봉지에 꽃잎을 한 움큼 담아왔던[…]

봉숭아물
김효정 / 2012-01-27
세 개의 노트 / 김성중

  [2012년 미리 보는 올해의 소설]   세 개의 노트   김성중             작가에게 재산이 있다면 그간 쓴 작품일 텐데, 그런 면에서 나는 ‘원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작년에 첫 책이 나왔으니 이제 방 한 칸 마련한 셈이다. 세간은 모두 아홉 개. 아홉 편의 단편을 쓰는 동안 삼 년이 금세 지나갔다. 시간이 너무 빨라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청탁을 받아 뛸 듯이 좋아하고, 책상에서 끙끙거리며 지옥 같은 마감을 겨우 마치고, 한동안 친구들을 만나 영화를 보거나 술을 마시다가, 머릿속이 데친 시금치처럼 풀어지면 더럭 겁이 나서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고……[…]

세 개의 노트
김성중 / 2012-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