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케팅 & 타게팅 / 배명훈

  티케팅 & 타게팅   배명훈         이상한 언니      “그래서, 너 일하는 데가 어디라고?”    명절에 가끔 집에 들르면 엄마가 그렇게 묻곤 했다. 하지만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원래 비밀이기도 했지만, 나도 거기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잠수함에서 일했다. EU군에 소속된 거대한 핵잠수함. 한번 잠수하면 몇 달이고 조용히 물속에 틀어박혀서 한 번도 고개를 내밀지 않고 바다 밑 어딘가를 정처 없이 떠다니는 무시무시한 전략무기.    물론 나는 핵무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사실 군대 자체와 관련이 없었다. 나는 그저 좀 수상한 연구를[…]

티케팅 & 타게팅
배명훈 / 2012-11-30
인간 교육 / 윤보인

  인간 교육   윤보인                    밤의 놀이터는 고요하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다.    밤의 놀이터는 불온하다. 지나가는 개조차 보이지 않는다.    놀이터에서 시소를 탄다. 그네를 탄다. 철봉에 매달린다. 거꾸로 매달려 세계를 바라본다. 멀리 교회의 불빛이 보인다. 놀이터 건너편에는 교회가 있다. 간혹 찬송가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나는 가만히 듣는다. 가끔 의자에 누워서 잠을 청한다. 의자가 길어진다. 의자가 거대해진다.    집에서 자는 것보다 놀이터 의자에서 자는 게 더 편할 때가 있다. 어둠이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간혹 쓰레기통 옆에 숨어서 잘 때도 있다.[…]

인간 교육
윤보인 / 2012-11-30
아, 입이 없는··· / 이혜경

    [민들레 문학특강 참가 후기]   아, 입이 없는···   이혜경(소설가)            내가 노숙인의 막막함에 그나마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여행을 마칠 무렵이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낯선 도시를 쏘다니다 돌아가기 위해 가방을 꾸릴 때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만일 지금 내게 돌아갈 곳이 없다면? 그러면 어쩐지 찬바람 부는 저녁, 외기를 차단한 천 조각 하나 없이 한데에 나앉은 듯 스산해진다. 추운 날 길에 웅크린 노숙인을 볼 때보다 그럴 때 마음의 파장이 더 큰 것은 노숙인의 처지에 나를 대입하기 때문인 듯하다.      서울 나들이에서[…]

아, 입이 없는···
이혜경 / 2012-11-30
글은 뭔 놈의 글? / 김해자

     [민들레 문학특강 참가 후기]   글은 뭔 놈의 글?   김해자(시인)              “뭔 집이요? 나는 평생 집이 없었어요. 어렸을 때 고아원에서 자라가지고 13살부터 객지로 사방팔방 돌았어요. 배를 25년 타고 노가다 건설현장 일을 몇 년 하고 몸이 다쳐가지고 기초생활보호 대상자가 되어서 이렇게 쪽방에서 하루하루 사는 목숨인데…. ‘집’ 하면은 내 마음속에 머리끝까지 신경이 솟아요. 이 세상 살면서 나는 지금까지 뭐했나? 내가 바보여서 지금 내 처지가 이렇게 되어 있질 않나? 이런 생각이 나서 화가 많이 나요.”    우리의 첫 만남은 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글은 뭔 놈의 글?
김해자 / 2012-11-30
정류장 외 1편 / 김병호

    정류장            사람들은 꽁초를 던져 주었습니다    오랑우탄은 골초가 되었습니다    동물원은 방생을 결정했습니다      밀림은 사라졌고    무리는 놓쳤고      한참을 늙어 가야 할 얼굴로 앉아 있습니다    뒷모습은 우주의 바깥처럼 고단합니다    바람은 함부로 밟은 금처럼 차갑습니다      어제는 경이롭고    내일은 뼈아프고      아직 거슬러 받지 못한 것이라도 있는 듯    닳아 없어진 표정이 닮아 있습니다    사내는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월            욕실 한켠에서[…]

정류장 외 1편
김병호 / 2012-11-30
아버지의 죽음 외 1편 / 우희숙

    아버지의 죽음            동물원 새끼호랑이들이    속살 노란 두리안*을 파먹고 있다      후각수용체를 열고, 나는    채석강 벼랑길을 따라    그의 호흡을 더딘 걸음처럼 걷게 했다    더딘 호흡은 탄소량을 높이며 세포를 질식사시켰고    그것들은 그의 몸 안에서 두리안의 씨앗으로 묻혔다    두리안은 빠르게 자랐다    체온을 높이며 시취(屍臭)를 만들며    늑막은 점점 두리안이 되며 부패되었다    등이 아프다는 그의 어께를 두드리자    잘 익은 두리안이 깨지고 냄새가 몸 밖으로 흘러나왔다    두리안 두리안이다    늑막에 죽음의 두리안을 매달고    숨을 멈춘 그의[…]

아버지의 죽음 외 1편
우희숙 / 2012-11-30
불가능한 추억 외 1편 / 윤의섭

    불가능한 추억            길을 걸었지    이천년 대의 어느 오후    아침부터 흩어져 간 비행운과 머리맡에 떠오른 초승달의 궤도를 쫓다 보면    나무그늘에 잠시 머문 내 좌표쯤은 쉽게 알아낼 수 있겠지    그게 어렵다면 북구의 황량한 초원에서 태어나 지금 막 도착한 저 바람의 연대를 따져 봐야겠지    아니지 쉽사리 국적을 바꾸는 바람은 어렵겠지 바람의 표본이라도 남아 있다면 몰라도    심장을 발화점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    언제 식어버렸는지 알고 있다면 뜨거웠던 날을 역추적해 보라는 말이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건 나만 보려 하기 때문이지    방금[…]

불가능한 추억 외 1편
윤의섭 / 2012-11-30
엄마 인형 눈 감으면 외 1편 / 이규리

    엄마 인형 눈 감으면            눕히면 눈 감는 서양인형, 딸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생각하다가 에디슨이 만들었다죠 말하려는 건 에디슨이 아니라 엄마예요 엄마는 눕혀도 눈 감지 않으셨죠 에이 고집을 버리세요 시대가 바뀌었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아들은 오지 않아요 숨이 멎고도 눈 감지 않으신 엄마, 눈꺼풀 쓸어내려도 반짝 눈 뜨는 인형처럼 엄마는 다시 멀뚱 보셨어요 아 깜짝, 그렇군요 언제 엄마에게 인격이 있었나요 엄마는 인형이었어요 우리들이 차례로 가지고 논, 그렇다면 엄만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요 누가 누구에게 준 선물이었을까요             락스 한 방울    […]

엄마 인형 눈 감으면 외 1편
이규리 / 2012-11-30
꿈의 은하를 건널 수 있으려나? 외 1편 / 고진하

    꿈의 은하를 건널 수 있으려나?            번개탄에 겨우 불을 붙였다    연탄보일러 어두운 구멍 속에서 시퍼런 번개가 번쩍거린다 여러 날 비운 냉방이 데워지려면 족히 대여섯 시간은 걸릴 것이다      연탄보일러 한 구멍은 불이 활활 붙고 또 한 구멍은 불이 붙다가 꺼져버렸다 다시 번개탄에 불을 붙이는데 괜히 눈물이 번진다    삶은 제 몫의 고통을 다 받고 가는 거, 라는 생각이 새삼 욱신거리는 며칠, 오랜만에 가장 노릇하러 집으로 스며들었다.      온난화로 여름엔 만년빙하가 녹는다는, 저 북극만큼이나 추운 겨울, 털 달린 짐승이 부러운 건 또[…]

꿈의 은하를 건널 수 있으려나? 외 1편
고진하 / 2012-11-30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나 / 김기택

     [민들레 문학특강 참가 후기]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나   김기택(시인)              말은 사람을 자유롭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감성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 후자의 예를 잘 보여주는 예가 나치스 장교로서 유대인 학살의 핵심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그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아르헨티나에서 노동자로 위장하면서 수십 년을 지내다가 이스라엘 경찰에게 발각되어 이스라엘 법정에서 사형에 처해졌다. 유태계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썼다.    한나 아렌트가 본 아이히만은 수백만 명의 유태인이나 유태계 사람들을 학살 현장으로 보낸 책임자라고는[…]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나
김기택 / 2012-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