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을 지나가는 아침 외 1편 / 고형렬

     터미널을 지나가는 아침            죽음에서 걸어나와 아침을 한다    아악 양치질을 하고 약을 먹는다    이것이 그의 삶이다    그는 노동자가 아니다    그는 치료를 받는 평범한 한 인간    모든 인간이기도 하다    무한에 가까운 인애가 필요하며    산책과 명상이 필요하다    오늘은 그가 오지 않고    가운 한 벌만 자축자축 걸어내려와    아침을 하고 나갔다    쿵 고무판에 긴 입술 갖다 대는    엘리베이터 문 닫히는 소리    손바닥만 한 손수건이 걸려 있는    발코니의 작은 아침    모든 인간이 의지하는 생의[…]

터미널을 지나가는 아침 외 1편
고형렬 / 2012-09-22
녹색기사 외 1편 / 이재훈

     녹색기사            이제 군주는 필요없다    해거름 만나는 노을만 있다면    세계는 그럭저럭 굴러갈 것이다    비파소리 들리는 낮은 식탁    느릿하게 음악에 몸을 뭉개는 시간    음식은 부패해 가고    우리들은 취해 간다    부족한 것 없는    삶이란 가능한 것일까    꿈도 없이 빠져드는 색(色)을 탐할 때    예언자는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녹색 망토를 입은 시인은 이제 없다    들끓는 색에 몸을 담그고    안달하던 시간도 이제는 없다    예언도 사라지고    초월도 사라지고    왜소한 지식을 입에 문 기사(騎士)들만 즐비한[…]

녹색기사 외 1편
이재훈 / 2012-09-22
그리스 인 조르바 외 1편 / 유안진

     그리스 인 조르바            밥 먹을 땐 밥 먹는 데만    갈탄 캘 때는 곡괭이질에만    키스할 때는 촉감 자체에만    몰두하는    책임의식 전혀 없는 인간망종      이런 남자 만나는 건 강진 화산폭발 쓰나미 이상의 재앙      쉬고 있는 심장과 거대한 광견, 사나운 야수의 영혼까지 다 가진 카잔차키스    원시의 탯줄이 매달린 채로 좌충우돌 질주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절대로 마주치고 싶지 않는 이 재앙을    딱 한 번은 닮아 보고 싶어져.              프로이트에게 묻는다  […]

그리스 인 조르바 외 1편
유안진 / 2012-09-22
하지불안증후군 외 1편 / 정채원

     하지불안증후군            핏줄 속을 뛰어다니는 얼굴들    한쪽 발을 질질 끌며    발가락을 잘라 내던지며    전류처럼 몰려다닌다    이쪽에서 저쪽 구석까지    발자국을 찍는다, 이제 그만    주저앉힐 수 없는    얼굴들이 모자를 쓰고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었다, 석고 붕대 위로    개미들이 기어다닌다, 회칠한 무덤 위    캄캄한 비문처럼 뭉쳤다가 흩어진다    나를 해독하라고    4분에 한 번씩 나를 깨운다    잠들지 못한다, 외발로 뛰어다니며    밤의 난간 너머로 휘파람을 분다    노래인지 기도인지 비명인지    모자를 벗어 던진다    목발을[…]

하지불안증후군 외 1편
정채원 / 2012-09-22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진 세계들 / 고봉준

     [고봉준의 젊은 작가 인터뷰]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진 세계들 ─ 김중일 시인 인터뷰   고봉준           *      한국 시사(詩史)에서 2000년대의 첫 십 년은 ‘미래파’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2005~2006년 무렵 문학계에선 ‘미래파’ 논쟁이 한창이었다. ‘미래파’라는 명칭은 당시까지 시의 주류적 경향을 점하고 있던 생태주의적 상상력이 퇴조기에 접어든 시기에 90년대의 시적 경향과는 전혀 다른 언어와 상상력을 내세우면서 등장한 젊은 시인들에 바쳐진 비평적 찬사의 일종이었다. 당시 ‘미래파’라고 호명된 시인들 가운데 몇 사람이 같은 시동인의 멤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편’이라는 이름이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진 세계들
고봉준 / 2012-09-03
아름다움에 병든 자 / 김태형

     [연재 에세이]     아름다움에 병든 자 ― 사막의 미학 4   글/사진_김태형                투바인 여자들이 모여서 노래 부른다      알타이 산맥의 안쪽으로 말을 타고 들어가면 온갖 야생화가 피어 있고, 구름이 지나가지 않아도 깊은 그늘이 서늘하게 맑은 빛으로 드리워진 아름다운 계곡이 있다고 했다. 한여름인데도 계곡에 아직 녹지 않은 빙하가 푸르게 빛나고 있다고.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대상을 소유할수록 나는 그것으로부터 더욱 멀어질 뿐이다. 소유한다는 것 자체마저 아름다움의 본질과 무관하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그 아름다움을 갖고[…]

아름다움에 병든 자
김태형 / 2012-09-03
비와 바람과 숲 / 이신조

  비와 바람과 숲   이신조              비    도시의 광장에 비가 내리고 있다.    굉장한 기세의 폭우다. 언제쯤 시작되었는지 언제쯤 그칠지 가늠해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비. 무섭기까지 해서 되려 묘한 안도감을 불러일으키는 비. 그런 비가 내리고 있다. 도시가 세찬 비를 맞는다. 구석구석 흠뻑 젖어든다.    광장의 북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주상복합건물 로비의 한 브랜드 커피숍. 폭우가 쏟아지는 토요일 오전 11시 7분, 테이블은 대부분 비어 있다.    유리벽 가까이 구석진 자리에 두 여자가 마주 앉아 있다. F와 R, 그녀들은 사촌지간이고 오늘 4년 만에 만난 참이다.   […]

비와 바람과 숲
이신조 / 2012-09-03
극단 해인 대표, 이양구 연출가를 만나다 / 변인숙(필명 : 미지)

     네 꿈을 펼쳐라 시즌 2     [인터뷰] 극단 해인 대표, 이양구 연출가를 만나다       ● 일시 : 2012. 8. 4(토) ● 장소 : 대학로 동숭교회 내 카페 '에쯔'         이번 글틴 ‘내 꿈을 펼쳐라 시즌 2’(이양구 연출가 편)에는 유난히 적극적인 글틴들이 많이 참여했다. 직접 연극제에 참가해 작품을 올리거나 행사를 기획하고, 지역 라디오 방송을 만드는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청소년 연극 대본을 써서 연기를 하거나 제작 진행을 맡는 등, 훗날 자신이 지니고 싶은 직업과 관련해 조금씩 경험을 쌓아가는 단계였다.    인터뷰이인 이양구 연출[…]

극단 해인 대표, 이양구 연출가를 만나다
변인숙(필명 : 미지) / 2012-09-02
마음먹다 / 김이윤

     청소년 테마소설    성취와 좌절_제3회   마음먹다   김이윤            천장에 붙어 있던 달궈진 프라이팬에서 뜨거운 콩이 콩콩콩콩 D-124의 통통한 볼에 떨어져 내리자, 치익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볼이 불에 덴 듯 따끔거리자, D-124는 벌떡 일어났다.    자리에 잠깐 누워 쉰 것 같은데 시간이 훌쩍 가 버렸다고, 정확한 프라이팬시계로 알람을 맞춰두었기에 다행이지, 하마터면 회의에 늦을 뻔했다고 중얼거리며 D-124는 급하게 가방을 챙겨 회의장으로 날아갔다. 그간의 성적이 괜찮은 편이라 평가회의에 지각한다 해도 큰 문제될 것은 없어서, 날개 젓기에 속도를 내지는 않았다.      D-124가 예상한[…]

마음먹다
김이윤 / 2012-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