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2 외 1편 / 조혜은

    손 2            너의 투박하고 두꺼운 손은 참으로 친절합니다 반짝이는 도시 어딘가에 너의 손들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환하게 불행을 드러내고 아무것도 아닌 듯 커튼을 드리운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손자국이 켜켜이 쌓인 너의 몸이 차례차례 들어앉아 있는 밤 죄송해요 내려야 할 정류장이 오기도 전에 잘못해서 벨을 누른 사람처럼 나의 손은 부끄럽고 너의 손은 또 어디로 향해야 할까요 우리는 매일같이 주인이 바뀌는 방에서 빌리듯이 서로의 마음을 공손하게 탐하고 서로의 몸속을 채운 통통하고 마른 손을 지워 가며 잘못했어요 두 손을 모아 진심으로, 이 방을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요?[…]

손 2 외 1편
조혜은 / 2012-06-30
[대담] 윤성희 소설가와의 대화 / 김용규 외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_제2회 윤성희 소설가와의 대담     [대담] 윤성희 소설가와의 대화     ● 2012. 5. 23(월) ● 예술가의 집 다목적홀 ● 김용규(철학자, 진행), 윤성희(소설가, 대담)          ▶ 김용규 : 선생님, 안녕하세요?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해 「부메랑」으로 제11회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하셨는데요, 다시 한 번 축하드리고요. 좋은 소설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질문에 앞서 개인적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어떤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평소 인터뷰를 즐기지 않으시고 자기 이야기를 잘 안 하신다고 적혀 있더군요. 그래서 작품도 ‘일기 형식의 일인칭을 버리고 삼인칭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식으로 쓰신다고요. 특별한[…]

[대담] 윤성희 소설가와의 대화
김용규 외 / 2012-06-30
극중 / 백정승

  2012년 《문장웹진》이 주목한 젊은 소설가들     극중   백정승              막이 오르면 원숭이 로트 페터의 방이다. 나른하고도 신비한 느낌의 음악이 잠시 흐른다. 방 오른쪽에는 거울과 일인용 침대가 있다. 거울은 전신이 잘 보이는 크기다. 왼쪽에는 벽 대신 동물원 우리와 같은 창살이 있다. 그리고 정면 벽에는 창이 나 있다. 창은 열고 닫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오른쪽과 정면의 벽 곳곳에 책장, 벽시계 등의 간소한 가구들이 적절히 표현되어 있다.    페터는 거울을 보고 있다. 갈색 눈을 투미하게 뜨고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 거울 속에 털투성이의 영장류 동물의[…]

극중
백정승 / 2012-06-30
그것을 후회하기 위하여 외 1편 / 신용목

    그것을 후회하기 위하여              나는 후회가 많은 사람이지만    아침마다 눈을 뜬다, 가장 분명한 당위는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을 후회하기 위하여      나무들은 침묵으로 자신을 견딘다,      눈부신 높이의 부르튼 침묵 속에서      아무도    운명에 의견을 제출한 적 없다―내가 사는 곳에는 네 이름을 대신하는 기둥들이    푸른 지붕을 올리고,      흔들리는 창문으로 흔들리다 물드는 창문으로 물들다가 떨어지는 창문으로    떨어지는 잎들이      깨지는 창문으로    어른거리는 땅 속에 녹슨 유적처럼 환하게 박혀들 때,     […]

그것을 후회하기 위하여 외 1편
신용목 / 2012-06-30
두 눈을 가린 여인 외 1편 / 이문경

    두 눈을 가린 여인              콜라겐을 눈에 주입했다    눈동자에 스크래치가 났군요    불을 켜고 자면 눈동자가 혹사당해요    시력검사표를 바라본다    렌즈를 벽돌처럼 쌓아올리자    새들이 날아와 앉는다    새의 부리가 쪼아대는 활자판    검은 새의 날개가 오른쪽으로 날아간다    하얀 새의 영혼이 왼쪽 문으로 걸어가고 있다          보이지만 읽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문이 사라진 방안에 혼자 있는 시간    불빛이 꺼진다    새들이 날아가고 비어버린 전광판    캄캄한 연못[…]

두 눈을 가린 여인 외 1편
이문경 / 2012-06-29
풍선의 최후 외 1편 / 이경임

    풍선의 최후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쓸수록    나는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렸다      바람의 행로나 바람의 목적 같은 것에 대해    내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바람은 나에게 더욱 무관심했다      바람에 대해 말을 하면 할수록    바람은 내 안에서 더 이상 노래하지 않았다      내가 쓰러졌을 때    바람은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내가 서 있었을 때    바람은 나를 쓰러뜨리기도 했다      너의 입술에서 바람의 촉감을 구할 때    너는 영안실에 고여 있는 공기 같았다  […]

풍선의 최후 외 1편
이경임 / 2012-06-29
흑판 4 외 1편 / 정재학

    흑판 4            아이들이 거대한 무지개에 오른다. 붉은 장밋빛을 향하여 먼저 올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기어오른다. 주황색도 보라색도 모두 아름다웠으나 아무도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정상에는 서로 물어뜯는 장미들이 우글거렸다. 때때로 눈동자가 하얀 아이들이 무지개에서 떨어져 스스로 장밋빛이 되기도 했다. 한 아이가 물었다. “열심히 오르면 도달할 수 있을까요?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열심히 해도 어차피 갈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정해져 있지 않나요?” 공부를 못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무지개의 정상에 오르면 무지개는 사라지고 흑판만이 남는다.          […]

흑판 4 외 1편
정재학 / 2012-06-29
폭주족 윈드씨 외 1편 / 임현정

    폭주족 윈드씨            폭주족 윈드씨는 천둥오토바이를 타고 정말 시원하게 내달린다네.    신호를 무시하고 거침없이 질주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역주행을 하는 것도 다반사라네.      도둑고양이만 한 야성이라고 깔보던    콧대 높은 빌딩 옆구리를 일순 가격한 일도 있다네.      흙먼지 나는 길 위에서    물미나리 같은 여자와 살림을 차린 적도 있지.    천지사방 피어난 개나리처럼    아무 때고 실실 웃었더랬어.      낫으로 베어낸 듯 여자가 떠났을 때    반쯤 미쳐서    아무 집이나 손전등을 휘두르고 다녔지.    하지만 온 세상을 다 뒤져도   […]

폭주족 윈드씨 외 1편
임현정 / 2012-06-29
야구란 무엇인가 (제4회) / 김경욱

  [장편연재_4회]     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             다음날 아침을 먹고 난 뒤에도 사내의 분주한 마음은 짐을 꾸렸다 풀기를 반복한다. 선뜻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한다. 문제는 아이다. 아이를 데리고 갈 수도 혼자 두고 갈 수도 없다. 맡길 곳도 없다. 이번에도 사내는 결정을 유보하기로 결정한다. 일단 아이를 데리고 가기로 한다. 데리고 갈 수 있을 때까지는 데리고 다닌다. 그 다음은? 그때 가서 고민하기로 한다.    아이는 거미집 안에 엎드린 채 도화지에 뭔가를 끼적이고 있다.    뭐 해?    아이는 대답이 없다.    진구야, 뭐 해?   […]

야구란 무엇인가 (제4회)
김경욱 / 2012-06-29
유대인 로스 / 정영목

  [해외작가 소개]     유대인 로스   정영목              미국에서 ‘유대인’이라는 말은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는 말인 듯하다. 『웨스트윙』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면, 백악관에 항의를 하러 들어갔던 기독교계 인사가 공격 대상인 백악관 참모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바람에 전세가 역전되어 완전히 수세로 몰리는 장면이 나온다. 어떤 식으로든 상대의 인종적인 면을 비방거리로 삼는 것은 용납되기 힘든 일이지만, 유대인의 경우는 그들이 첫째로, 최근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집단적 박해와 학살의 피해자였다는 점, 둘째로, 피해를 당한 다른 인종과는 달리 여러 면에서 남다른 현실적 능력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 드라마에서도 공격을[…]

유대인 로스
정영목 / 2012-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