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을 부탁해 / 강미영

  [한국문학에 바란다!]   한국문학을 부탁해* ―한국문학을 위한 네 개의 시선   강미영 (민음사 편집자)            1. 아무도 모른다      『스티브 잡스』가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내준 지 4개월째다.      너는 〈해를 품은 달〉의 김수현이 흘린 눈물과 한 여인을 향한 애끓는 연심에 마음 아파하며 책을 샀다. 〈도가니〉의 공유와 함께 분노했고, 〈완득이〉의 유아인을 보곤 실컷 웃었다. 그리고 또 동명의 책을 한 권쯤 샀다. 제목에 반해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대열에 들어섰고, 내심 『정의란 무엇인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곧 책꽂이 어딘가에 방목하기로 마음먹었다. 너는 고인의 명복을 빌며 『스티브 잡스』를[…]

한국문학을 부탁해
강미영 / 2012-03-30
더 많은 편집자를! / 원미선

  [한국문학에 바란다!]   더 많은 편집자를!   원미선 (《문예중앙》 편집자)              나는 어떤 불균형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내가 아는 어느 8년차 후배 편집자의 인생에 기적과 같은 균형이 잡히는 날도 언젠가는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녀가 편집자의 길에 들어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편집자 중에서도 문학서 편집자가 된 것은 그보다는 덜 우연적이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소설책이나 시집 이외의 책은 책으로 생각하지 않는 삶을 대책 없이 오래 고수했기 때문이다. 뜻밖에 그런 시간의 보람을 누릴 수 있는 직업, 그게 편집자였다. 편집자가 무엇에 쓰이는 존재인지 알아 가는 동안 맛보았던[…]

더 많은 편집자를!
원미선 / 2012-03-30
비에게 외 1편 / 여성민

    여성민    비雨에게   ─ 또는 B에게           B는 갔다 오늘 비가 올 확률은 30퍼센트라고 말했다     어떤 우산을 펴면 얼굴처럼 빗방울이 돋아난다     모든 우산의 밑은 독방 B는 반드시 온다     너는 적막하다 말하고 정확해진다 비가 온다 말하고 B로 온다     비는 뿔이다 뿔의 방식으로 오고 뿔의 목적으로     온다 세상의 모든 뿔은 투명하거나, 핑크     목을 더듬으며 나는 목젖의 목적에 대해 생각한다     양변기에는 목젖이 없다     오후 두 시의 파티션에는 우산 같은 얼굴들이[…]

비에게 외 1편
여성민 / 2012-03-30
숨은 숲 외 1편 / 최호빈

    최호빈    숨은 숲           모두의 목에 핀이 꽂혀 잠자리에 고정된 듯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필요 이상으로 안녕한 숲   홀로 깨어나        살려 달라 살려 달라     적막을 한 방울씩 뒤흔드는 가로등   주홍피를 받아 삼키는 밤     겨울에 지은 죄를   숲은 언제까지 침묵을 분할해서 갚아 가야 하는지,   물어나 볼까   가만히 입김을 들어 주다가   내게 고백을 강요하듯 유리창이 얼굴을 다시 내민다     처음부터 골목을 기어 다니는 그림자였기를 바라는 흑발의 구름이 훌쩍이기[…]

숨은 숲 외 1편
최호빈 / 2012-03-27
[제5회] ‘조반니 아리기’를 발견하기 위한 책 구입 여정 / 조광제

  [철학, 삶을 탐하다_제5회]     ‘조반니 아리기’를 발견하기 위한 책 구입 여정   조광제(철학자)              가라타니 고진은 자신이 쓴 논문들을 모아 2004년 『역사와 반복』(2004)을 출판한다. 이 책이 2008년 한국어판으로 번역 출간되는 것을 기화로 2007년 3월에 쓴 ‘한국어판 서문’이라는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1)『역사와 반복』,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 b, 2008, 11쪽.      나는 ‘자유주의’나 ‘제국주의’를 역사적인 단계보다 순환적 프로세스로 보는 사고를 월러스틴으로부터 배웠다(『근대세계시스템: 1600?1750』). 그가 생각하기에 ‘자유주의’란 압도적인 헤게모니를 잡은 국가가 존재하는 세계경제 시스템의 존재형태다. 그에 반해 ‘제국주의’는 헤게모니 국가가 몰락하고 있지만, 신흥국가가[…]

[제5회] ‘조반니 아리기’를 발견하기 위한 책 구입 여정
조광제 / 2012-03-27
무직, 자영업자, 지인, 그리고 생략 / 황현진

  무직, 자영업자, 지인, 그리고 생략   황현진        1      운전자를 제외한 탑승자는 네 명이었다. 그중 가장 먼저 봉고에 탄 사람은 무직이었다. 낡은 봉고의 천장엔 담뱃불 자국이 드문드문 나 있었다. 무직만이 자국의 개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모두 스물일곱 개였다. 무직은 자영과 지인, 그리고 꼬마가 순서대로 차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때마다 무직의 자리는 점점 뒤로 밀려났다. 봉고 역시 조금씩 내려앉았다. 네 시 반이 지나자 운전자는 뒷문을 닫으라고 말했다.    문이 닫혔을 때, 무직은 이런 생각을 했다. 갑자기 바퀴가 미끄러지면 어떡하지? 아주 잠깐, 자신의 죽음을 미리 엿본 기분이었다.[…]

무직, 자영업자, 지인, 그리고 생략
황현진 / 2012-03-27
야구란 무엇인가 (제1회) / 김경욱

  [장편연재_1회]     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              마이크를 쥔 사내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사내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곳에서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하려는 참이다. 노래방에서 노래하기. 한솥밥을 먹고 한 지붕 아래서 잠자는 동료들 앞이지만, 그 짓만 빼면 뭐든 같이 하는 이들 앞이지만 노래 부르는 것은 늘 어색하다. 폭탄주 한잔을 눈 딱 감고 들이킨 보람도 없이 오늘따라 마이크는 더 무겁기만 하다. 마이크가 아니라 아령이라도 들고 있는 것 같다.    저 여자 때문인가. 사내는 맞은편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여자를 흘깃 쳐다본다. 짠돌이 팀장이[…]

야구란 무엇인가 (제1회)
김경욱 / 2012-03-27
거울 외 1편 / 최승호

  최승호   거울         욕실의 거울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벌거벗은 내 허상이 있을 뿐 그 허상이 눈을 껌벅거린다 바보 같은 놈!         욕       허공왕처럼 살자 마음먹는다 텅 빈 채 고요한 허공왕처럼 온 우주를 다 품는 허공왕처럼 안과 밖이 없는 허공왕처럼 살자 마음먹은 지 두 시간도 안 돼서 입에서는 욕이 터져 나온다   《문장웹진 4월호》      

거울 외 1편
최승호 / 2012-03-26
산신제 외 1편 / 이하석

    이하석    산신제           떡에 밤, 대추, 감, 배들 진설하는 형식은   가운데에, 입 벌린 돼지머리 대신 등산모를 놓아 완결된다.     제주가 술을 친다. 모두 두 번 절한다. 축문을 읽는다. 구애의 마음이   드러난다. 새해를 이렇게 여니 올 산행도 지켜달라는   길게 접히는 말의 옷깃이 바람에 펄럭인다.     그러니까 산신도 어떻게든 봐줄 것이란 기대 때문인지 모자 안에 만 원짜리 지폐들이 쌓인다.   소나무 사이로 지폐 보채는 제주(祭主)의 시린 이마처럼   한 해를 열어 놓은 하늘이 파랗게 눈을 뜨고 있다.     음복으로[…]

산신제 외 1편
이하석 / 2012-03-26
그해 겨울 외 1편 / 곽효환

  곽효환   그해 겨울         한 사람이 가고 내내 몸이 아팠다 겨울은 그렇게 왔다 가지 끝에서부터 몸통까지 여윈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시든 몸을 뒤척였지만 마른기침은 폐부 깊은 곳을 찔렀다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오는 좀체 가시지 않는 통증, 나는 미련을 놓지 않았고 나는 내내 기다렸으나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들 잠든 새벽 4시, 혼자 남은 빈 병실 창밖으로 띄엄띄엄 깊은 겨울밤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전조등을 보며 아직 꺼지지 않는 불빛을 헤아렸다 그 겨울은 혹한도 폭설도 없었지만 오랫동안 물러설 줄 몰랐다 어림할 수 없는 그 끝을 견딜 수[…]

그해 겨울 외 1편
곽효환 / 2012-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