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물 / 김효정

  [제7회 문장청소년문학상 / 최우수상]     봉숭아물   김효정           손톱의 봉숭아물이 손톱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열 손가락, 발가락 다 싸매고 어기적어기적 이마 위의 땀을 닦으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쳤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쌉싸래한 초겨울과 마주하고 있다. 주황빛은 물러가고 생생한 분홍빛이 솟아오르는 손톱을 보며 지난여름을 그린다.     여자 아이라면 누구나 어릴 적에 봉숭아물을 들여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엄마와 함께 봉숭아 꽃잎을 따러 아파트 화단, 학교 화단, 동네 공원 등 봉숭아가 있을 만한 곳은 다 돌며 비닐봉지에 꽃잎을 한 움큼 담아왔던[…]

봉숭아물
김효정 / 2012-01-27
세 개의 노트 / 김성중

  [2012년 미리 보는 올해의 소설]   세 개의 노트   김성중             작가에게 재산이 있다면 그간 쓴 작품일 텐데, 그런 면에서 나는 ‘원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작년에 첫 책이 나왔으니 이제 방 한 칸 마련한 셈이다. 세간은 모두 아홉 개. 아홉 편의 단편을 쓰는 동안 삼 년이 금세 지나갔다. 시간이 너무 빨라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청탁을 받아 뛸 듯이 좋아하고, 책상에서 끙끙거리며 지옥 같은 마감을 겨우 마치고, 한동안 친구들을 만나 영화를 보거나 술을 마시다가, 머릿속이 데친 시금치처럼 풀어지면 더럭 겁이 나서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고……[…]

세 개의 노트
김성중 / 2012-01-27
권력이란 무엇인가 / 신혜정

  권력이란 무엇인가   신혜정             너를 믿기   너를 진리라고 생각하기   네가 생각하기 전에 이미 너의 생각대로 살기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 등 지도부가 충남 홍성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정봉주 전 의원을 특별면회했습니다. 정봉주 전 의원이 실형을 받은 이유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 공금 횡령해도 위로금 받고, 법 어겨서 감옥 가도 영웅이 됩니다. ─ 하루치 역사로 기억될 2012년 1월 26일 TV조선 뉴스 ‘날’ 내레이션과 클로징 멘트 중에서     조지 W. 부시와 노무현이   이명박과 버락 후세인 오바마가   크로스 합체 파워레인저가[…]

권력이란 무엇인가
신혜정 / 2012-01-27
돌아보고 예감하다, 2012년의 문학 / 박진 외

  [특집 좌담]     돌아보고 예감하다, 2012년의 문학       ● 일시 : 2011. 12. ● 장소 : 아르코미술관 3층 대회의실(종로구 대학로) ● 진행 : 박진(문학평론가) ● 좌담 : 박수연, 심진경, 조강석, 이수형(이상 문학평론가)           ■■■ 박진 :   만나서 반갑습니다. 평소에 더 자주 뵙고 싶었던 분들과 이렇게 함께 이야기 나눌 기회가 생겨 무척 기쁩니다. 오늘은 지난 한 해의 문학을 정리하고 2012년 문학을 전망해 보는 자리입니다. 우선 2011년 문학을 키워드로 정리해 보면 어떨까요? 시와 소설을 꼭 나누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소설 먼저 얘기해 보는[…]

돌아보고 예감하다, 2012년의 문학
박진 외 / 2012-01-27
미리 쓰고, 또 쓰는 작가의 말 / 임수현

  [2012년 미리 보는 올해의 소설]     미리 쓰고, 또 쓰는 작가의 말   임수현(소설가)             2008년 여름부터 소년(들)과 함께 살았다.     태풍의 끝자락이었던 것도 같고, 폭염의 한가운데였던 것도 같다.   더위가 지긋지긋했는지도 모르겠고, 비바람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해 여름 소설가가 되었다. 지레 소설을 더는 쓸 기회가 없을 거라고 단정하고, 긴 소설을 써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걸로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다고 배짱을 부렸다. 그건 소심함을 가장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심드렁한 연극이었는데, 그게 들통 났는지, 다행으로 짧은 소설들을 쓸 기회가 계절처럼 찾아왔다.[…]

미리 쓰고, 또 쓰는 작가의 말
임수현 / 2012-01-27
콜테스의 희곡들 / 조연호

  <작가가 읽은 책>   콜테스의 희곡들   조연호(시인)             연초에 희곡작가 콜테스의 글들을 몰아서 하루 이틀 상관으로 읽었다. 내가 읽은 콜테스의 희곡들은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 『로베르토 쥬코』, 『서쪽 부두』다. 영상 매체가 두드러지게 발전을 거듭한 요즘에는 희곡이라는, ‘글로 쓰인 영상’이 존재할 틈이 좁아졌다. 그건 연극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과거 위대했던 문학적 순간의 영광이 희곡작가이거나(셰익스피어), 희곡작품(파우스트, 신곡 등)에게 드리웠을 때를 현재에도 기대하는 건 여러 모로 사치스럽고 과도하게 낙관적인 방식이다. 사람들은 이제 ‘대화로만 된 어떤 것’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시대가 저물기 전에 과거[…]

콜테스의 희곡들
조연호 / 2012-01-27
벌레 / 조성희

  [2011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 장르부문]     벌레   조성희             어둠 속에 눈동자가 떠 있다. 미약한 안광을 뿌리면서 쉴 새 없이 확장과 수축을 반복한다. 이윽고 목매단 사람처럼 잦아드는 비명소리를 낸다.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근육이 제멋대로 턱을 죄어 온다. 어금니가 산산조각 나서 잇몸을 찢어발길 것 같다. 다리를 움직여 보지만 제자리에서 뒤뚱거릴 뿐이다. 눈동자가 더욱 발광을 해대자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시커먼 이끼덩어리가 흘러내린다. 눈동자 주위에 희멀건 흰자위가 불거진다. 이윽고 눈동자는 발광하기를 멈추고 똑바로 내 눈을 노려본다. 가시덩굴 같은 시선이 녹슨 철망 틈으로 기어[…]

벌레
조성희 / 2012-01-27
카메라 / 성민규

  [2011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 산문부문]     카메라   성민규           나는 휴대폰 카메라를 한 시간째 붙들고 있다. 사십오 도를 어림잡아 카메라를 들고, 어디서 들었던지 문득 떠올라 턱도 살짝 당기고, 입꼬리가 처지지 않도록 무던히 애를 쓰며 찍은 수십 장의 사진 가운데서 앨범에 저장된 것은 단 두 장이었다. 힘들어 보이고, 경직되고, 아파 보이는, 아니 그렇다고 느껴지는 다른 사진들과 달리, 그 두 장에서는 애쓴 만큼의 웃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내게 관심 없는 잘 빠진 그녀처럼 도도했다. 내가 ‘담담하게’ 그를 대했을 때 그는 감정 없는[…]

카메라
성민규 / 2012-01-27
특별한 야미의 인생 / 장해림

  [2011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 소설부문]     특별한 야미의 인생   장해림             나는 캄캄한 음식물 쓰레기통 안에서 울고 있다. 나를 감싼 건 검은 비닐봉투다. 뜨거운 날씨에 부글거리는 썩은 음식물 냄새가 하얀 찰흙으로 방금 빚은 것처럼 조그맣고 깨끗한 내 콧속으로 쉴 새 없이 기어 들어간다. 엄마의 자궁과는 다른 물컹거리는 공간이 기분 나빠 나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목이 쉬어라 운다. 나는 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갓난아기다. 울다가 피곤해져 눈꺼풀이 서서히 감기려는데 갑자기 신선한 공기가 쏟아진다. 곧이어 나는 봉투째로 들어 올려진다. 나를 들어 올린[…]

특별한 야미의 인생
장해림 / 2012-01-27
쟈넷, 여행은 즐겁니? / 조광희

  [2011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 시부문]     쟈넷, 여행은 즐겁니?   조광희           어둠이 검정을 밝히는 밤, 누워 있는 쟈넷과 사진 속 분칠한 쟈넷, 커튼의 주름들 같은 간격을 바람이 움켜쥐듯 좁혀 놓은 밤, 쟈넷 축하해 당신 혼자 다소곳하게 누워 있을 공간이 생겼다니, 인사 나온 사람들은 가로등처럼 고개를 숙이고도 쟈넷의 여행길 참 잘 밝혀 준다. 삐져나온 시트를 펄럭이며 날아가는 쟈넷, 더 이상 오뚝이는 없어, 몇 만 원을 장미꽃마냥 받아들고 일어나지 않아도 돼, 두 손 가득 솜사탕 같은 흰 국화를 들고 날아가는 쟈넷, 익숙해진 외국어도 낯설어진[…]

쟈넷, 여행은 즐겁니?
조광희 / 2012-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