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과 공포를 극복하는 방식 / 김성규

     내가 읽은 올해의 책     굶주림과 공포를 극복하는 방식 ─ 『갈라진다 갈라진다』, 김기택 시집   김성규              시대가 어두울수록 사람들은 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자본주의 사회의 이단아들, 시인들은 올해 어떤 시를 썼을까. 모두 사력을 다해 시를 쓰는 그들에게 시란 과연 어떤 존재이기에 시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시 때문에 서로 다투고, 심지어는 자신의 경제 활동까지 포기하게 만드는 것일까. 시 쓰는 일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기택 시인의 『갈라진다 갈라진다』는 첫 시집에서부터 보여주었던 세계를 확대해 보여주고[…]

굶주림과 공포를 극복하는 방식
김성규 / 2012-12-31
리 반 클리프 외 1편 / 김병호

    리 반 클리프*            그를 기억하나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모래바람 속에서 시가를 질겅이며 노려보는 곳에 그는 서있었죠. 하늘로 날아오를 듯 찢어진 눈꼬리에 힘겹게 매달고 있던 매부리코와 날카롭게 다듬어진 콧수염, 장인이 갈아 놓은 듯 날 선 턱은 절제된 검은 슈트와 어울려 어떤 죽음도 깍듯하게 만들었습니다. 선한 악마성이라고 할까요. 악당을 노리는 주인공의 눈이 노련한 사냥꾼의 것이었다면 악당으로 변신한 그의 눈은 종말과 싸우는 야수의 그것이었습니다.    기억하시죠? 이스트우드의 빠른 권총에 쓰러지던 매순간 그가 응시했던 공허를. 쓰러진 악당을 뒤로하고 망토를 휘날리며 지평선의 점으로 사라지는 주인공의 뒷모습이 내게 해피엔딩으로 다가오지[…]

리 반 클리프 외 1편
김병호 / 2012-12-31
김성중(2013)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_2 / 김성중

     꿈꾸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 쿠바와 남미의 나날들 #3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_2   김성중(소설가)              3. 문화생활      1) 출판기념회    집주인 아나의 친구가 책을 내서 출판기념회를 한다고 한다. 쿠바에서는 출판기념회를 어떻게 할까 궁금했는데 결론적으로 매우 소박했다. 강당이 있는 건물(간판이 없어 아직도 그곳이 학교인지 뭔지 모르겠다)에 사람을 모아 놓고 몇 마디 축사와 저자의 말을 들은 후 콜라를 탄 럼주를 나눠 마신다.    그럼 글쓴이가 무명씨냐, 그렇지 않다. 60대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마르타는 쿠바와 칠레와 미국에서 공부했다.[…]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_2
김성중 / 2012-12-31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_1 / 김성중

     꿈꾸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 쿠바와 남미의 나날들 #2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   김성중(소설가)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 혼자 떨어지니, 내 행동은 다른 영역에 끼어든 동물과 유사해진다. 우선 안전한 주거지를 확보하고, 근거리에 화장실을 눈여겨봐 둔 후(문짝이 없는 화장실도 더러 있기에), 식사를 해결할 식당과 노점을 물색한다. 그 다음엔 반경 2킬로미터 내의 골목을 살살 다니며 지형지물을 눈에 익히기 시작한다. 가만히 보니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생활에 틀이 생긴다. 오전에는 아바나 대학[…]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_1
김성중 / 2012-12-26
액션의 고향 / 심재천

  액션의 고향   심재천             X는 일주일 만에 구두를 벗었다.    일주일 만에 구두를 벗는 생활.    그런 삶을 살다 보면 발가락뼈는 변형되고 발톱은 너덜너덜해진다. 오소리 발이 되는 것이다. X의 발도 오소리 발이 된 지 오래.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 X는 문득 의문이 든다. 그러나 깊이 고민하진 않는다. 오소리 발이 된다는 것. 남자가 밖에서 일한다는 건 그런 의미다. 시대정신이 그렇다.    X는 현관문을 닫고 구두를 체크한다. 한쪽 구두를 들어 얼굴 가까이에 대고 뭐가 묻었나 살핀다. 구두코에 혈흔이 묻어 있다. ‘피가 팍 튀었네’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액션의 고향
심재천 / 2012-12-26
/ 심상대

  藝 NO 59   심상대                  “마녀는 다섯이었습니다. 알록달록한 고깔모자를 쓴 키 작고 오동통한 마녀가 초록색 페인트칠 한 나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잠깐 숨을 멈추고 말끔하게 면도한 인중과 턱을 매만지던 산딸기는 다시 입술을 열었다.    “황금색 머리칼을 가슴까지 드리운 채 구석에 앉아 있던 처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지요. 다 왔네. 그러고는 두 손을 쳐들었어요.”    산딸기는 젓가락을 모아 쥔 오른손과 빈 왼손을 식탁 위로 들어올렸다. 시인과 소설가, 희곡작가와 동화작가가 그를 바라보았다. 시인은 둘, 소설가는 셋, 그리고 산딸기까지,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은 모두 여덟이었고[…]

심상대 / 2012-12-26
바벨의 침묵 / 강수미

     사유의 드로잉_제5회     바벨의 침묵     강수미 (미학,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 교수)            “신이 듣기를 원하는 유일한 인간의 언어, 라틴어를 상실한 비극적인 양들의 무리인 우리는 메에 하고 우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1)      논쟁과 관련해서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내게는 몇 있다. 그중에 특히 내가 사회적으로 발언할 권리가 더 많아지고, 내 주장에 힘이 더 실리면 실릴수록 더 씁쓸하게 되살아나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는 기억이 있다. 그것은 요컨대 논쟁 당시에는 꽤 유창한 언변과 분명한 논리를 펴 논쟁 상대로부터[…]

바벨의 침묵
강수미 / 2012-12-26
손홍규 소설가(2013)
연재를 시작하며 / 손홍규

    연재를 시작하며      손홍규              폐허가 된 서울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오래된 일이다.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어쩐지 내게 서울은 폐허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비유에 지나지 않았다. 황량한 나의 내면이 투사된 도시거나 몰락해가는 세계의 축소판이거나 어쨌든 해석이 가능한 비유일 뿐이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이 해석은 불투명해졌고 혹은 불완전해졌다. 나는 폐허가 된 서울 앞에서 끝없는 불안을 느꼈고 그 불안마저 폐허가 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폐허란 무엇일까.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일 수도 있고 사람이 살되 사람이 산다고 말할 수 없는 곳일 수도 있다. 사람이[…]

연재를 시작하며
손홍규 / 2012-12-26
뼈 외 1편 / 김성수

    뼈            골다공증 걸린 나목들이 언덕에서    저린 겨울을 붙들고 있습니다.      배부른 먹빛 하늘을 비껴    달아나는 새들의 족적은 금세 지워집니다.    몇 걸음마다 몸의 바닥을 치고 오르는    숨이 가쁩니다.      달리기를 삭제한 무릎 관절은    일그러진 삼각도형의 걸음으로    느리게, 아주 느리게 언덕을 넘습니다.      관절염은 관절에 염을 하고 뼈다귀의    원형만 남겨두었습니다    뼈의 속성은 지탱하는 것입니다    잠시 쉬던 새가 날아간 나무의    뼈, 몸통을 붙들고 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뼈는 붙들고 서[…]

뼈 외 1편
김성수 / 2012-12-26
그림자 산책 외 1편 / 김희업

    그림자 산책            가까이하면 감전될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드는,    딱딱한 밤    그림자를 두고 잠을 청해 본다      그간 그림자와 붙어먹었다 하지만    몇 번이던가, 그림자와 결별하려고 돌아섰던 순간이      나를 옮겨 적던 그림자가    어엿이 내 몸의 서체를 흉내 내고 있다    중심이 흔들린 날에도 함께 요동친 그림자    가능한, 혼자는 행동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규칙을 세운 모양      내게 묶여 부자유스럽겠지 했더니, 외려    나를 묶어 놓고    떠나지 않더니    빛 한 번 못 보고 얽매인 그림자의 순애(殉愛)[…]

그림자 산책 외 1편
김희업 / 2012-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