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에 이르러 꽃은 왜 환하게 피어 있는가 / 홍기돈

  [시와 소설로 보는 2011년 명장면]     저물녘에 이르러 꽃은 왜 환하게 피어 있는가 ─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창비)   홍기돈             일찍이 카뮈는 인간을 ‘부조리한 존재’로 파악한 바 있다. 어째서 인간이 부조리하다는 말인가. 그 자신이 결국 죽음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부든, 지위든, 명예든 평생 쌓아올린 모든 것들이 무(無)로 돌아갈 것임을 인간은 진작부터 간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삶을 이어 나가는 것이며, 삶 속에서 부ㆍ지위ㆍ명예 따위를 추구해 나가는 것일까. 다 부질없는 짓 아닌가. 이렇게 보자면, 어쩌면 우리네[…]

저물녘에 이르러 꽃은 왜 환하게 피어 있는가
홍기돈 / 2011-12-06
간결하게, 강렬하게, 시인 이근화 / 고봉준

  [고봉준의 젊은 작가 인터뷰_03]     간결하게, 강렬하게, 시인 이근화   고봉준         *     시인은 좀체 투시되지 않는 존재다. ‘문단’이라는 곳에서 시인들을 많이 만나 본 것도 아니고, 그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눠 본 적도 별로 없지만, ‘시(글)’와 ‘시인’은 묘하게 일치되지 않았다. 물론, 글과 사람이 일치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하면 딱히 대답할 말은 없지만, 그리고 글과 사람의 일치가 문학의 당위적인 가치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소설가와 비교하면 ‘시’와 ‘시인’의 불일치는 놀라울 정도로 빈번하다. 어쩌면 이 불일치가 시인과 만나기를 주저하는 이유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시’를 매개로 ‘시인’을 만난 뒤,[…]

간결하게, 강렬하게, 시인 이근화
고봉준 / 2011-12-06
식탁친교 / 이양구

  식탁친교   이양구           허름한 아파트. 거실.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서 어지럽다. 안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 있다. 화장실 문은 닫혀 있다. TV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소파. 소파 앞에는 탁자. 입식 부엌이 보인다. 가스레인지에 냄비 하나.   베란다로 통하는 창에는 커튼이 쳐 있다.   무대 위에 정적 한동안.   남자 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초등학교 사학년쯤으로 보인다. 오래 빨지 않은 티가 나는 옷을 입었다.     ● 아이   학교 다녀왔습니다.   아이,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식탁으로 간다.   가스레인지 위 냄비를 열어본다. 상한 냄새가[…]

식탁친교
이양구 / 2011-12-06
예배를 드리러 / 백무산

  예배를 드리러   백무산         시골 장거리에 예배를 드리러 가야겠다 일용할 양식들이 흙 묻은 발을 막 털고 나온 곳 목숨의 세세한 물목들이 간신히 열거된 곳   졸음의 무게가 더 많이 담겨진 무더기들 더 잘게 나눌 수 없는 말년의 눈금들 더 작게 쪼갤 수 없는 목숨의 원소들 부스러기 땅에서 간신히 건져 올린 노동들 변두리 불구를 추려온 퇴출된 노동들   내장 다 엎질러져 있고 비늘이 벗겨지고 벌건 핏물에 담긴 머리통들이 뒹구는 곳 궤짝 높이의 제단 위에 염장을 뒤집어쓰고 누운 곳에   졸음의 시간들이 흥정되는 곳 최소 단위 혹은[…]

예배를 드리러
백무산 / 2011-12-02
무의미한 세계 속의 구원 / 강지희

  무의미한 세계 속의 구원 ─ 김성중 ?허공의 아이들? (『개그맨』, 문학과지성사, 2011)   강지희             미셸 마페솔리는 오늘날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떠다니는 영토’라고 말했다. 그곳에서 연약한 개인들은 온통 구멍투성이의 현실에 직면한다. 그가 김성중의 「허공의 아이들」을 읽는다면, 이 소설 속의 풍경이야말로 자신의 세계관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며 무릎을 칠지도 모르겠다. 신의 죽음으로 인해 인간은 ‘빈 공간의 한숨’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시사한 니체 역시 이 소설 속에 펼쳐진 재난의 광경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김성중의 「허공의 아이들」은 돌연한 파국의 현장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지상의 사물들은[…]

무의미한 세계 속의 구원
강지희 / 2011-12-01
/ 임경섭

  담   임경섭         마카는 하늘을 날아다니기 시작했어   발기부전, 불임, 갱년기 장애를 품고 마카가 도심 한복판을 떠돈다는 사실에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야 잃어버린 남성의 힘을 되찾아 준다는 마카는 전파이거든 전단지로나 끼여 오던 것이 이제는 날개를 달고 공중을 배회하거든   나는 떠들썩한 적막들을 데리고 레인보우 모텔 너머로 날아갈 거야 우리의 음절이 허공을 발음하기 시작했거든 모두가 지닌 유리창마다 하루살이처럼 덕지덕지 유언들이 달라붙기 시작했거든 그리하여 지친 무지개는 간판처럼 빛나야 했거든   고귀한 성조들은 뭉텅이로 날아다니기 시작했어 인쇄되지 못한 노래는 역사가 되지 않거든   《문장웹진 12월호》  […]

임경섭 / 2011-11-30
여자의 나이 / 고은강

   여자의 나이    고은강           생이 소진될수록 아름다워지는 시간 앞에 서 있다     내 입속의 미혹(迷惑)이 달아 또다시 혼기가 차오른다     항상 사랑한다,     그것이 내 나이인 줄 알아다오      《문장웹진 12월호》      

여자의 나이
고은강 / 2011-11-30
마음은 언제나 외로운 파수꾼 / 최창근

  [최창근의 쉽고 재밌는 희곡 이야기_다섯 번째]     마음은 언제나 외로운 파수꾼 ─ 연극관람 일기 : 영국과 미국의 현대 희곡 작가를 중심으로   최창근             2011년 6월 12일 일요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아놀드 웨스커의 〈키친 The Kitchen〉(이태주 옮김, 범우사)을 보았다. 연극 〈키친〉은 ‘티볼리’라는 영국의 큰 레스토랑의 주방이 배경이다. 티볼리는 요리사, 웨이트리스, 운반 포터까지 합치면 서른 명이 넘는 인원이 일하는 큰 곳이다. 또한 이곳은 영국인 외에 독일, 아일랜드, 키프로스,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적 출신의 요리사들이 동고동락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요리사들은 자신의 조리대에서 생선을 튀기고 야채를 다듬고[…]

마음은 언제나 외로운 파수꾼
최창근 / 2011-11-29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언어 / 김문주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보는 2011년 명장면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언어 ─ 이홍섭 『터미널』(문학동네)   김문주           『터미널』은 문학의 가장 유서 깊은 주제인 시간에 관한 시집이다. 정주의 공간이 아니라 어딘가로 떠나는 경유지로서 터미널(terminal)은 그것의 어원이 내포하고 있는바, 이미 너무 오래 전부터 생(生)에 관한 비유의 공간이었다. 이 지극한 상투를 넘어서는 견결한 말의 힘을 이 시집은 웅숭 깊은 풍경으로 보여준다. 특정한 시적 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시선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삶에 관여하는 관계들을 시차(時差) 속에 마주 세우는 방식으로 구성되는 풍경을 통해, 시는 생에 기숙한 본연의 슬픔을 읽는 이의 마음에[…]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언어
김문주 / 2011-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