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극 / 홍일표

  무언극   홍일표         저 아래 한 사람이 지나간다   백 년 전 눈 위에 남긴 발자국이 그를 알아보고 따라간다 발자국은 바람을 안고 날아가다 몇 십 년 후 도착할 땅에 제 목소리의 문양을 미리 벽화로 그려 놓거나 꽝꽝나무 열매로 뿌려 놓기도 하지만   저 아래 개 한 마리 지나간다   수백 년 밖인 듯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귀 밝은 낮이다 열 살 때 죽은 개와 저 개의 거리를 헤아리다 나는 개를 향해 짖어대는 어둠이 되기도 하고 무성영화나 어항 속을 떠다니는 지느러미 달린 노래가 되기도 하지만[…]

무언극
홍일표 / 2011-01-26
제5회 선글라스 / 강신주(철학자)

선글라스 강신주(철학자)       그늘에 선 그는 모든 것이 검다 숨고 숨겨주고 추격하다 달아나는 시간의 뿔테, 빛을 발한다 불타는 태양의 검은 테두리를 본 것은 그 즈음, 비닐봉지 속의 생선처럼 국물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햇빛이 뛰어들고 방아쇠를 당기던 한 낮, 검은 선글라스의 날들이다 일초 전과 일초 후의 다른 암호처럼 그늘은 점점 짙어지는데 흩날리는 눈동자 때문인가요?당신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네요 창문마다 물고기들이 몰려다니고 휘파람 소리가 흘러나와요 어디선가 물고기들이 벽을 타고 오른다 회색 가스 파이프를 타고 콘크리트 건물 간판 속을 헤엄치며 산꼭대기까지 오른다 오르고 오르다 자세를 휘발하고 마는 꿈꾸는 지느러미들이여! 그의 발아래 썩은[…]

제5회 선글라스
강신주(철학자) / 2011-01-08
문장 메인화면 디자인이 변경되었습니다. /

문장 메인화면 디자인이 변경되었습니다. 앞으로 1주일간 사용자 테스트 기간을 거쳐 최종 적용 완료될 예정입니다. ^_^ ◆ 사용자 테스트 기간 : 2011. 1. 6(목)~13(목) (일주일간) 혹시 오류가 발견되시면, 정보광장/문장에 바란다 (바로가기) 코너에 의견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_^ 의견 올려주신 분 가운데 10명을 선정해서 책 선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_^ 감사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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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1-06
쑤퉁(蘇童) : 퉁소의 음악 혹은 우물이 부르는 소리 / 김진영

[음악의 순간과 언어의 떨림] 쑤퉁(蘇童): 퉁소의 음악 혹은 우물이 부르는 소리 김진영(철학자) 며칠째 불면이다. 무언가가 내 안에서 눈을 뜬 거다. 나는 자려고 하지만 그 눈 뜬 것은  잠의 문지방을 지키면서 건너가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반수면의 문지방 앞에서 서성이다 보면 헤매던 기억은 프루스트처럼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나는 나의 불면이 아주 오래된 것이어서 그 끝에 유년의 불면이라는 것도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어린이 시간에 포의 <검은 고양이>를 방송극으로 들었거나 어머니를 따라 무서운 영화를 보고 돌아온 날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황량한 어둠 속에 구멍이 뚫리고 푸르고 검은 공동(空洞)의 입이 생겼다. 깊고 어두운[…]

쑤퉁(蘇童) : 퉁소의 음악 혹은 우물이 부르는 소리
김진영 / 2011-01-03
이인용 자전거 / 편혜영

[기획/특집] 겨울에 쓰는 여름 이야기 이인용 자전거 편혜영 아직 아이이던 시절, 나는 아빠의 자전거에 홀딱 빠져 있었다. 은색의 커다란 몸체, 몸체를 단단히 휘감고 있는 기름때 낀 체인, 아빠가 의자에 앉혀 주어도 내게는 닿지도 않던, 내 신발만큼이나 커다란 페달, 내 작은 엉덩이에도 앉으면 불편하게 느껴졌던 터무니없이 작은 안장과 불쏘시개같이 커다란 브레이크를 갖춘, 구식 자전거였다. 동네에서 아빠 말고 그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종점 옆의 슈퍼마켓 아저씨뿐이었다.아빠는 언제나 퇴근이 늦었지만 여름철이면 그 시간에도 자전거를 타기에 충분할 만큼 해가 남아 있어서 퇴근해 돌아와서는 씻지도 못하고,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나를 자전거에 앉혀야 했다. 나는 여름밤이면[…]

이인용 자전거
편혜영 / 2011-01-02
《문장웹진》 신묘년 1월호를 열며 / 편혜영

  《문장웹진》 신묘년 1월호를 열며 편혜영(편집위원) 새해가 되면 365일마다 새로운 해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럽게 여겨집니다. 단 하룻밤 만에 인생이 바뀌는 일은 몹시 어려운 일이지만, 단 하룻밤에 해가 바뀌는 일은 365일이 지나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신비입니다. 뭔가를 계획하고 각오하고 무산된 결심 앞에서 속상해하고, 시행착오를 수정한 후 다시 계획하고 각오하고, 다시 결심을 수정하다가 그만 포기하고 싶어질 무렵이면 대략 330일 정도가 지났다는 걸, 그러니까 어느 새 12월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모든 12월은 지나간 일을 생각하고 반성하고 후회하고 새로운 해를 다짐하고 계획하는 일로 보내게 되니까, 지나간 해의 에필로그와 다가올[…]

《문장웹진》 신묘년 1월호를 열며
편혜영 / 2011-01-02
나의 겨울은 여름보다 메말라 있다 / 강정

[기획/특집] 겨울에 쓰는 여름 이야기 나의 겨울은 여름보다 메말라 있다 강정 겨울아이 나는 겨울에 태어났다. 당연히 내가 태어나는 걸 직접 목격했을 리 만무하다. 사실이 그렇다고들 한다. 집에서 챙겨 주는 생일이 그렇고 대한민국 호적등본 및 기타 서류들이 증빙하는 바가 그러니 그렇다고 믿으면서 여태껏 살아왔다. 거기에 별 불만은 없다. 하지만 어릴 때, 그러니까 대략 중학교 2학년 정도쯤 누나와 형이 듣던 FM 가요 프로그램에서 “겨울에 태어난 사랑스런 당신은……” 어쩌구 하는 말랑말랑 떡 반죽 잘못된 물엿 같은 노래를 듣다가 ‘사랑스럽긴 개뿔, 뽕 까고 있네……’ 라고 속으로 구시렁댔던 게 겨울만 되면 떠오른다. 돌이켜보니 참 불만이[…]

나의 겨울은 여름보다 메말라 있다
강정 / 2011-01-02
부근신(附根神)의 여름 / 조연호

[기획/특집] 겨울에 쓰는 여름 이야기 부근신(附根神)의 여름 조연호 언 잎은 자라 여름 나무에 이른다. 그리고 강이 반지처럼 손가락에 감겨 은빛으로 울었다.  어떤 사람이 있었다. 부끄러움이 심하고 자기주장이 전무한 그 사람은 결여에 도취된 사람 같았다. 뻐꾸기가 울었다. 내 얼굴을 가리고 내 앞에 나타난 그가 이번에는 사별하듯 자기 신발을 다듬었다. 간장물이 끓고 있을 때 뻐꾸기 울음이 검게 흘러 넘쳤다. ‘삽목으로 키운 저 바람에게 엄마들이 꺾이고 있습니다.’ 순수하고 영혼이 맑은 사람을 찾기 위해 반신(半神) 전체의 걸음에 대해 기념비로서의 발자국을 답가로 노래 부른 이 무대의 자화자찬이 얼마나 자기 선례를 앞서가고 있는지를 인식한 사람은 이제[…]

부근신(附根神)의 여름
조연호 / 2011-01-01
처럼처럼 / 최규승

  처럼처럼 – 스캣의 탄생 3    최규승 그녀는 수평선을 허리에 두르고 마치 사실인 듯 피처럼 붉은 물을 뚝뚝 흘리며 온몸에 전구 같은 심장을 수없이 달고 박동 소리로 말한다 마치 기계처럼, 쇳소리 같은, 소리를 내며 냉정한 여자인 듯,  처럼에게 끝까지 다가가려는 처럼처럼 그러나 처럼이 되지 못하는 처럼처럼 같은에 한 발 물러선 같은 같은 그래도 같은이 되지 못하는 같은 같은 인 듯은 인 듯에 붙어서 인 듯인 듯 어쩌면 인 듯인 듯이 아닌 듯  처럼도 아닌 것처럼 같은도 아닌 것 같은 인 듯도 아닌 듯인 듯  그녀는 수평선을 허리에 두르고 붉은[…]

처럼처럼
최규승 / 2011-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