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사랑 / 우대식

  위태로운 사랑   우대식         어둡던 하루가 지나간다 공장 굴뚝에서 하루 종일 흰 연기가 쏟아져 나오고 회색 구름은 내 가슴 아래까지 내려와 있다 당신도 그 구름 어딘가에 숨어 있다 비타민을 조금 잘라 당신에게 내민다 구름 속으로 쑥 들어간 내 손을 무언가 핥는다 당신이라 믿는다 손이 젖어 간다 눈을 뜬다 온통 당신이다 온통 붉다는 말이다 내 손이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아무것도 없기를 기도했다 내 젖은 손도 당신의 혀도 붉은 모든 당신도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기를 슬프도록 기도했다 검은 구름은 지금 배꼽 아래 와 있다 위태로운 당신의 사랑이 내게[…]

위태로운 사랑
우대식 / 2011-12-23
감, 감감 / 김진완

  감, 감감   김진완         당신 산에 묻던 날 설핏, 돌아본 하늘 노을이 제 몸 열어 감, 낳더라 소슬한 저승 알 밴, 감 하나 낳더라   놀빛 감을 보면 아득해지는 거 그건 그렇게, 나만 아는 까닭이 있어서다   이승은 마냥 떫어 낮술로 헹구는 몸 붉어진 눈길 닿는 곳마다 노을만 첩첩   광장시장 좌판에서 굴러 떨어진 감 주워든다 흠집 난 저승에 입술을 대고 그대 안부 묻는다   거기서도 여기가 감감 아득하다고. 이승 품은 감 하나가 안개 속에 오래 떠 있다고.   《문장웹진 1월호》        

감, 감감
김진완 / 2011-12-23
악수 / 전석순

  악수   전석순             열린 창으로 팔 하나가 쑥 들어와 있다.   여름엔 늘 창을 열어 두고 다녔다. 그러니 팔 하나쯤이야 들어오려고 하면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창엔 따로 창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층이라고는 하지만 딱히 높지는 않았다. 집주인이 언덕을 핑계 삼아 반지하를 일층이라고 우기는 건물이었다.   종일 창을 열어 놓아도 드나드는 것이 없는 계절이다. 답답해서 창을 열어 놓으려고 보면 이미 창은 활짝 열려 있었다.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 중에서 굳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나절 창문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어도 그랬다.[…]

악수
전석순 / 2011-12-23
모두, 친절하다 / 장강명

  모두, 친절하다   장강명              여태까지 살면서 가장 운이 없었던 날에 대해 이야기하라고요? 바로 며칠 전이 그런 날이었는데……. 그런데 그날이 운이 없는 날이었던 건 맞지만, 그렇다고 남은 인생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아주 결정적으로 불운한 날이었던 건 아니에요. 무슨 얘기인고 하니, 이를테면 지나가던 트럭에 치여 반신불수가 됐다든가, 공사 중인 빌딩에서 떨어진 벽돌 때문에 아이를 잃었다든가 하는 날은 아니었단 말입니다. 그냥 소소하게 짜증나는 일이 겹쳤지만 결국은 그날 중에 다 해결됐고, 그날 그런 일들이 있었음으로 해서 이후에 저나 제 가정에 달라진 건 없거든요. 오히려 교통사고 같은 큰[…]

모두, 친절하다
장강명 / 2011-12-22
전원주택 / 이은조

  전원주택   이은조            민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강의 딸 세라가 민이의 소방차를 빼앗은 참이었다. 세라는 민이에게 혀를 날름거리며 사이렌을 울렸다. 애애애앵. 애애애앵. 민이가 나를 보며 크게 울었다. 세라는 주먹을 쥐어 보이고 민이를 위협했다. 세 살이 여섯 살에게 항변할 수 있는 건 눈물뿐이었다. 민이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나는 개수대에서 부추전 반죽이 묻은 손을 씻었다. 우는 민이를 부르며 잰걸음으로 움직였다. 세라는 민이의 장난감을 죄다 망가뜨리고 부쉈다. 세발자전거와 변신 로봇을 반 토막 낸 적도 있었다. 어쩌다 그리 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세라는 내게 욕을 퍼붓고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세라가 집에[…]

전원주택
이은조 / 2011-12-22
‘토르소’의 고독과 ‘관절의 힘’ / 조연정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보는 2011년 명장면       ‘토르소’의 고독과 ‘관절의 힘’ ─ 이장욱, 『생년월일』(창비, 2011)   조연정             ‘당신’이라는 말없이 서정을 말할 수 있을까. 만질 수 있는 당신의 표면 너머로 닿을 수 없는 당신을 쓸쓸히 느끼게 되면서 서정적 정념이 생겨났고, 그 쓸쓸함을 성급히 해갈하려는 욕망으로부터 당신을 내 안으로 흡수하려는 태도로서의 서정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당신을 경유하여 ‘나’로 되돌아오는 과정에는 명백한 시작과 끝이 없다. 이 과정은 ‘낯선 당신’과 ‘낯선 나’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무한 반복된다. 무슨 말일까. 닿을 수 없는 당신을 감지하는 순간,[…]

‘토르소’의 고독과 ‘관절의 힘’
조연정 / 2011-12-22
임용수 스포츠 캐스터를 만나다 / 변인숙

  네 꿈을 펼쳐라 시즌_2 글틴 인터뷰 탐험대     임용수 스포츠 캐스터를 만나다       ■ 일시 : 2011년 12월 2일 일요일 저녁 7시 ■ 장소 : 대학로 예술가의 집 1층 예술인 카페, 슬로우 가든         임용수 캐스터   “일할 때는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더불어 사는 거잖아요? 모두가 관계를 주고받는 거예요. 진심을 다하는 것이, 상대가 도움을 줄지 안 줄지는 모르지만 제일 중요해요. 사람 잃는 건 다 잃는 거예요. 돈을 왜 벌어요? 맥주 한 잔 사줄 사람 없으면, 무슨 소용이에요? 재미없겠죠? 나눠야 해요.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임용수 스포츠 캐스터를 만나다
변인숙 / 2011-12-17
[제15회] 안경 / 강신주(철학자)

  안경   강신주(철학자)           너는 내 마음의 창 네가 없다면 나는 청맹과니 컴퓨터가 무슨 소용이랴 매일 월담하는 싱싱한 언어들마저 너 없이는 그림의 떡이라서 공연히 씀벅거릴 뿐 물안개 헤살 벗어날 수가 없다 남은 생 다정하게 어딜 가나 함께 하리니 행여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야 잠자리에 들 땐 반드시 네 방에서 다리 포개고 격식 갖춰 누워야 한다 한뎃잠은 매우 위험하니까   ─ 권오범, 「안경에게」         오늘 안경점에 들렸습니다. 최근 들어 눈이 조금 침침해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쓸 때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니 그렇게 된[…]

[제15회] 안경
강신주(철학자) / 2011-12-17
더하기와 빼기 / 진산

  [청소년 테마소설] 2. 몸과 욕망_ 네 번째   더하기와 빼기   진산           둘은 많이 싸웠고, 많이 울었다. 다은이는 이런 생각도 했다. 왜 난 여자로 태어났을까. 똑같이 했는데, 강재는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 자기만 몸살 걸린 것 같고, 속이 메슥거리고, 아랫배가 무거웠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러면서도 학교에 다녔다. 그러면서도 수학공식을, 영어 단어를 외워야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하루하루 몸이 달라져갔고, 힘들었다. 그러다 내린 결정이 이거였다. 그냥 양쪽 집에 말하고 도움 받자고.         토요일.[…]

더하기와 빼기
진산 / 2011-12-12
[제2회] 지금·여기의 심연 / 조광제

  [철학, 삶을 탐하다_제2회]     지금·여기의 심연   조광제(철학자)             ‘붉은 노을이 가을 단풍의 드넓은 옷자락을 뒤덮으며 천지사방 불을 놓은 듯 선연하다. 누군들 이 장엄한 풍경에 심취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설혹 풍경에 흠뻑 젖어버린 몸을 거두어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를 되새긴들, 그런 나마저 이미 온전히 붉은 노을의 빛을 받아 스스로를 가눌 길이 없구나.’ 어느 가을날, 인간이란 때로 제대로 발을 헛디뎌 몰입의 지경으로 빠져들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솟구쳐 이 글귀를 쓰게 되었다.   지독하게 함몰되는 지금·여기에서의 전락을 원하다니. 인간은 필멸의 짐을 꼽추처럼 등 근처[…]

[제2회] 지금·여기의 심연
조광제 / 2011-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