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있니, 너? / 이경혜

  [청소년 테마소설] 1. 관계와 소통_일곱번째     울고 있니, 너?   이경혜          방문을 열자 그 애가 서 있었다.   그 애는 눈을 내리깐 채 소중한 듯 두 손으로 작은 화분을 들고 서 있었다. 지금 나는 그 애를 ‘그 애’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렇게 말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발머리에 눈코입이 분명한 모습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이마 위로 솟아난 귀와 얼굴과 온몸을 덮은 짧은 솜털은 그 애를 고양이과의 어떤 짐승처럼 느껴지게 했으니까. 나는 흘낏 그 애에게 눈길을 주기는 했지만 늘 보던 물건을 보듯 그 애를 그냥 지나쳤다. 놀라지도 않고,[…]

울고 있니, 너?
이경혜 / 2011-08-23
안개숲 / 김규린

  안개숲   김규린         자작한 숲에서 밥물 뜸들듯 뭉근히 익어 가는 하느님 나를 빌려 묵시하는 눈빛이 수틀처럼 따뜻하다 도란도란 옛투의 수를 놓는 꽃과 나무들 식물들이 지나는 한 땀 돌아오는 한 땀 바늘길 위에 뿌려지는 끈적이풀 같은 마음 운명의 가지는 없는 사람을 선명하게 켜들고 오지랖 넓게 나를 비춘다 나를 내포한다 서늘하고 섬약한 지구 한 장 무게가 가지 끝에 실린다 그것을 잡아 고요히 찢어 본다 올올이 찢겨 나간 채 소용돌이치는 몇 마디 줄기들이 퍼덕이고 있다 바람이 풀어 놓은 바다가 숲에 번진다   《문장웹진 9월호》      

안개숲
김규린 / 2011-08-22
유르스나르의 『어둠 속의 작업』 / 윤영수

  [작가가 읽은 책]   유르스나르의 『어둠 속의 작업』   윤영수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Marguerite Yourcenar)의 『어둠 속의 작업』은 내가 좋아하는, 대할 때마다 매번 감탄하는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비평가보다도 더 가혹하게 자신의 작품을 판단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보다 더 가까이에서 결함들을 보기 때문이다. 그 작품이 원했던 것, 이루어야 했던 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작가 자신이다.” 유르스나르가 『어둠 속의 작업』 작가 노트에 써놓은 말이다.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으로 널리 알려진 그녀는 『어둠 속의 작업』을 20대에 착상하여 60대에 완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이름을 인용해 「제농」이라는 단편으로 발표했다가[…]

유르스나르의 『어둠 속의 작업』
윤영수 / 2011-08-22
목수 노용래 / 하상만

  목수 노용래   하상만         입에 못을 세 개 물고 말까지 하면서 못질을 할 수 있다면 목수다 다섯 개의 못을 입에 물고 나는 그 짓을 할 수 있다 못을 물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쇠 맛이 죽인다 뭔가 진하면서 알코올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맛이 있다 입에 무는 못은 평생 상하지 않는 콘크리트못이 아니라 철못이어야 한다 녹이 조금은 슬어 있어야 맛이 최고다   《문장웹진 9월호》    

목수 노용래
하상만 / 2011-08-19
소설낭독 서비스, 팟캐스트 출시 알림 /

그동안 《문장웹진》에서 서비스해오던 작가가 직접 읽는 소설낭독(코너명 : 설을 펼치는 시간) 서비스가 아이폰용 팟캐스트로 출시되었습니다. (8월 15일) 당분간 매일(월~금) 1회씩 업데이트될 예정이고요.휴대하고 계신 스마트폰을 통해 《문장웹진》에 수록된 단편소설을 작가의 육성으로 직접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0^   팟캐스트(아이튠즈)에서 '문장웹진'으로 검색하시면 바로 뜹니다. ^_^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구독 바랍니다. ^_^ *** 안드로이드 팟캐스트 이용 방법은 여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상세하고 친절하게 잘 나와 있네요 ^_^)

소설낭독 서비스, 팟캐스트 출시 알림
/ 2011-08-18
갑골문자처럼 / 조은

  갑골문자처럼   조은         날마다 그녀를 본다 폐지를 주워 살아가는 그녀에게 나는 운좋은 사람이다 더불어 운좋은 나의 개 우리는 느릿느릿 걷는다 한 걸음 옮기는 것이 맷돌을 돌리는 것처럼 힘든 개를 산책시키느라 날마다 내 운을 확신하는 그녀의 푸념을 들어야만 한다 뒤따라 우리 집까지 오는 그녀에게선 시큼한 땀냄새가 난다 눈가엔 눈곱이 입가엔 거품이 몸에선 어둠이 끓는다 확신의 물살을 타고 내가 이 골목에 들어와 사는 것처럼 그녀는 어떤 물살을 탄 것일까 한 방향의 발자국들 상처처럼 패어 있는 나의 운을 확신하는 그녀의 말이 갑골문자처럼 내 몸을 파고든다   《문장웹진 9월호》[…]

갑골문자처럼
조은 / 2011-08-17
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 / 박정애

  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   박정애        뜨겁게 달군 스테인리스 팬에다, 먹다 남은 갈비찜 국물을 붓는다. 불을 약하게 조절한 뒤, 찬밥 덩어리와 건채 플레이크를 넣고 주걱으로 섞는다. 국물이 밥알들에 잘 녹아들었다 싶을 때 참기름을 넣어 다시 한 번 볶는다. 가스레인지를 잠그다 피식, 웃는다. 어제 저녁 갈비찜을 먹을 때 딸아이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엄마, 내일 아침 메뉴 맞춰 볼까? 이 국물로 밥 볶을 거지? 맞지? 맞지? 볶음밥 네 주발, 오이냉국 네 대접을 퍼 담는다. 스크램블한 달걀 한 접시, 배추김치 한 접시를 식탁 가운데에 놓는다. 마지막으로 수저 네 벌.[…]

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
박정애 / 2011-08-17
날씨 유감 / 고봉준

  날씨 유감   고봉준         덥고 습한 여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름 휴가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자연 현상에 ‘폭탄’이라는 군사적 비유를 동원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만, 말 그대로 한반도 곳곳에 물 폭탄이 떨어진 기록적인 여름입니다. 개발을 최고의 덕목으로 내세우는 지금의 현실이 중단되지 않는 한, 재난에 가까운 자연 현상은 계속되겠지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한반도의 남쪽 어딘가에 또 물 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전파를 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이 물 부족 국가라는 정부의 캠페인은 거짓인 것 같습니다. 8월호는 ‘2011년 《문장웹진》이 주목한 젊은 작가 6인’의 신작소설을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최민석,[…]

날씨 유감
고봉준 / 2011-08-11
나르시시즘의 윤리학 / 민승기

  [사랑의 윤리학_제4회]     나르시시즘의 윤리학   민승기(철학자)         나르시시즘의 윤리학? 나르시시즘이 윤리적일 수 있을까? 타자의 전유(appropriation)를 통하여 ‘나’를 확장하는, 차이가 동일성으로 환원되는 나르시시즘이 어떤 점에서 윤리적인가? ‘타자와의 관계맺기’가 윤리라면 타자성을 살해하는 나르시시즘이야말로 비-윤리적이지 않을까? 그것은 ‘관계’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전유는 온전하지 못하고 살해는 충분치 못하다. 전유가 재─전유를 통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아버지와 같아지기 위해 아버지를 살해하고 아버지를 먹지만 죄의식만을 느끼게 되는 프로이트의 기원적 아버지 신화는 ‘동일시’의 실패를 지시하고 있다. 나르시시즘을 가능하게 하는 반복과 동일시는 오히려 나르시시즘의 불가능성을 ‘기입’(inscription)하고 있는[…]

나르시시즘의 윤리학
민승기 / 2011-08-08
어딘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 최창근

  [최창근의 쉽고 재밌는 희곡 이야기_두번째]   어딘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 북유럽과 캐나다의 현대희곡 : 욘 포세와 미셸 마르크 부샤르를 중심으로     『이름/기타맨』(욘 포세 지음, 정민영 옮김, 지만지 고전선집 0386, 2009) 『고아 뮤즈들』(미셸 마르크 부샤르 지음, 임혜경 옮김, 지만지 고전선집 0325, 2009)     최창근(극작가)           푸른 포도, 무르익은 포도송이, 건포도. 이 모든 단계는 변화다. 무(無)로의 변화가 아니라 이제까지 없었던 것으로의 변화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에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 ─ 에드바르트 뭉크   죽은[…]

어딘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최창근 / 2011-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