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 김재영

  모기   김재영           1   세린은 기어코 도쿄로 떠났다. 지난봄이었다. 원전 사고가 나서 뒤숭숭한 나라로 하나밖에 없는 조카를 떠나보내기가 싫어 나는 끝까지 만류했다. 하지만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하필 이때, 세린이 어렵게 일본 대학에 합격해 마냥 기뻐야 할 때 거대한 쓰나미가 일본을 덮치다니. 생각할수록 기막히고 억울한 일이었다. 쓰나미가 덮쳤을 때, 세린과 나는 백화점에서 옷을 고르고 있었다. 입학을 앞둔 세린은 들떠 있었고, 그런 세린을 지켜보는 나는 봄 햇살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켜니 일본의 동북연안이 거대한 쓰나미에 휩싸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모기
김재영 / 2011-08-31
지워지는 화원 / 최하연

  지워지는 화원   최하연         유리 지붕 아래 검은 나비   하늘 끝에 다다른 당신의 날갯짓   당신의 하늘은 오늘, 거기까지입니다만   정수리의 통점과 유리 아래의 세계   그저 툭, 떨어지길   당신의 하늘은 들이받을수록 단단해졌지만   당신의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다   난간에선 여자들이 차례로 뛰어내렸고   골목이 꺾일 때마다 내 꿈의 정수리가 아파 왔다   유리 지붕 아래 검은 나비의 하늘 끝에서   오래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다   그저 툭, 떨어지길 기도했다   《문장웹진 9월호》          

지워지는 화원
최하연 / 2011-08-31
물보라 / 김유진

  물보라   김유진           나는 그곳의 주소를 알고 있었다. 한 달 내내 비가 내렸다. 이런 여름은 처음인 것 같아. 내가 우산을 접고 차에 오르자, L이 인사를 대신해 입을 열었다. 비에 젖은 어깨와 팔뚝 위로 에어컨의 냉기가 바늘로 찌르는 듯 파고들었다. 물기는 빠른 속도로 증발했다. 이런 여름은 처음이 아니었다. 4년 전 여름엔 60일 동안 비가 내렸다. 그러나 그해의 긴 장마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L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그 기억을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었으므로, 때때로 꿈을 꾼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곤 했다. 가죽냄새와 딸기 시럽 향의 방향제[…]

물보라
김유진 / 2011-08-29
뻐꾸기 둥지(변주) / 김신용

  뻐꾸기 둥지(변주)   김신용         뻐꾸기 둥지는, 사람의 귀네 귓속의 달팽이관을 오므려 조그만 둥지를 만들어 주는, 그 둥지에서 태어난 새끼가, 다른 알들은 모두 둥지 바깥으로 떨어트려 버리고는, 끈질기게 울음의 핏줄을 이어주는, 귀네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시침 뚝 떼고 있는 없는, 그 뻐꾸기 둥지를 옮겨와, 귓속에 가만히 둥지를 모아 주는, 동그마한 귓바퀴 일생 동안 집을 짓지 않으니,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야 하는 천형 같은 탁란의 생을, 마치 포란이듯 품어 주는 부드러운 귓바퀴,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일생을 죄의식도 없이 견뎌야 하는, 생을 제 집이듯 데려와, 슬픈[…]

뻐꾸기 둥지(변주)
김신용 / 2011-08-29
북천 피순대 / 유홍준

  북천 피순대   유홍준         우리는 길옆 식당에 앉아 피순대를 받구요 저녁비 내리는 2번 국도 비에 젖어 번들거리구요 여기는 國道가 아니라 天道라 하구요 위태롭게 위태롭게 모자 쓰고 한 손에 낫을 든 사람 걸어가구요 얼굴이 없구요 그는 앞이 없구요 우리는 북천에서 늘 異邦, 나팔꽃 피구요 해바라기 피구요 피순대 한 점 소금에 찍으면 다시 또 한 줄금 소나기, 건널목 없는 북천 늙어 무릎 아픈 여자 비척비척 비닐 봉다리를 흔들며 무단횡단하구요 개나 사람이나 여기서는 다 횡단, 비에 젖은 파출소 불빛 쓸쓸하구요 손바닥만 한 파출소 불빛 치킨집 불빛보다 못하구요 창자에[…]

북천 피순대
유홍준 / 2011-08-27
단백질은 아름답다 / 조정인

  단백질은 아름답다   조정인         이사야보다 늙은 당신의 흰 눈썹엔 공중에서 리본놀이를 하던 투명한 포자들이 묻어 다니지   원소는 즐거워 최소물질의 대기실엔 사물들의 연인 베아트리체가 기다리지 나의 최초가 어슴푸레 떠도는 물질의 기미인 것 기쁘지 그것의 꿈인 것 황홀해   채광이 아름다운 방, 소년의 속눈썹에 내려앉은 빛, 입자와 파동이 한 몸인 비명과 속삭임이 한 목소리인   나는 속눈썹이 피운 미모사를 바라보았어   너는 누구? 조그맣게 물었지 ―나는 이상한 천사, 거울 속 공명인 듯 아득한 목소리가 들려났어   잠깐 졸았던 모양인데 누가 지나간 거야?   햇살이 방바닥에 베일처럼[…]

단백질은 아름답다
조정인 / 2011-08-27
사슴 사냥 / 송진권

  사슴 사냥   송진권         때없이 모란이 탐스럽게 피어오르고 머리 위론 포도송이가 휘늘어져 단내를 풍겼어요 호복에 변발을 한 사람들이 말을 타고 문 앞에 와 섰어요 눈이 쭉 째진 얼굴이 사슴 사냥을 가자고 했어요 빨랫줄을 걸어가 하늘로 오르거나 돌을 들어내고 개미굴 속으로 한없이 내려가야만 했어요 여러 색깔과 모양이 다른 길을 지나자 희끗희끗한 산이 펼쳐지고 사슴 떼가 풀을 뜯고 있었어요 개들은 길길이 날뛰며 사슴을 쫓아가고 사방에서 몰이꾼의 꽹과리 소리가 들렸어요 사슴 떼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튀어 달아나고 그 중 하나가 슬며시 내게 총을 쥐어주었어요 다가오면 쏴 쏘아 쏘란 말이야[…]

사슴 사냥
송진권 / 2011-08-26
武川 / 박정대

  武川   박정대           그곳은 오랑캐들이 사는 나라   두 개의 달과 천 개의 별이 뜨고 단 하나의 심장을 지닌 바람이 부는 곳   우리는 하나의 태양이 질 때까지 술을 따르고 천 개의 태양이 다시 뜰 때까지 술을 마시지   生은 우리들의 취미 취미가 아름다워질 때까지 우리는 술잔에 삶을 따른다 술잔에 담긴 삶을 마신다   사랑은 우리의 습관 노동은 우리의 사랑 우리는 습관처럼 사랑하고 사랑만을 노동한다   그곳은 영혼의 동지들이 모이는 곳   《문장웹진 9월호》    

武川
박정대 / 2011-08-24
선이 죽다 / 김승강

  선이 죽다   김승강         선의 장례식장을 나와 나는 선이 죽어 가는 거리를 걷는다. 선은 선이 살아 있었다. 그래서 모두 가을처럼 슬퍼했다.   여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하고 있다. 등줄기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은 완만한 둔부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그렇지만 그때뿐이다. 한때 선이 살아 있던 여인들이다. 나의 시선은 선이 살아 있는 여인을 쫓느라 분주하다.   선은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그러나, 공중에서 수직으로 급강하해 지상의 먹이를 낚아채 수직 상승하는 매, 선은 칼날 위에 산다. 선이 선을 감추고 있을 때가 살아 있는 동안 가장 아름다운 때다.  […]

선이 죽다
김승강 / 2011-08-24
전아리&전삼혜, 그녀들을 만나다 / 변인숙

 [글틴 문학특강&인터뷰]   소설가 전아리 & 전삼혜 그녀들을 만나다     ◎ 일시 : 2011. 8. 13(토) 오후 2시~4시 ◎ 장소 :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3층 세미나실      “청소년이 주인공이 되면 변화의 폭도 넓어지고 소설이 무궁무진해져요. 계속 쓸 것 같아요. 좀 힘들더라도 이 시간만 미치도록 한다 이런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하세요.”(소설가 전아리) “불법적인 걸 제외하고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경험을 하세요. 새로운 경험이 쌓이지 않으면 우리는 더 멋진 얘기를 만들어내지 못할 거니까요.” (소설가 전삼혜)   8월 13일 토요일 오후 2시, ‘글틴 청소년 문학 특강’이 2011년 여름 방학을 맞아 대학로[…]

전아리&전삼혜, 그녀들을 만나다
변인숙 / 2011-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