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 / 김이강

  침수   김이강         어찌 보면 전공투 대원 같기도 한 다큐멘터리 화면처럼 앉아서 당신은 말하네 그저 이것저것 헤엄치는 법에 대해 크레인 내부와 바깥에 대해 어떤 견딜 수 없는 감정에 대해 멈칫하는 순간과 두통의 시간에 대해 숨을 참으면 사라지는 납작한 평화와 바리케이드 뒤에 나타나는 망망대해와 잠수교처럼 앉아서 당신은 왜 그렇게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나요 비 내리니 이토록 모두가 순조롭게 잠겨 들어가는데 상상 없이 말을 한다는 건 어딘가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뜻일까   어찌 보면 다른 대원 같기도 한 다큐멘터리는 불가능한 화면처럼 앉아서 당신은 지금과는 다른 세계에서[…]

침수
김이강 / 2011-07-31
비인간적인 밤 / 김현

  비인간적인 밤 1)2)3)4)5)   김현         밤이 떠돌아 왔습니다. 인간은 헐벗은 몸 어둡고 웅크린 인간의 욕조 속으로 들어갑니다. 처음 물이 닿은 인간의 발가락 끝부터 쑥빛 비늘이 쑥쑥 돋습니다. 인간은 오랜만에 미끈거리는 감촉에 젖습니다.   인간은 두 다리보다 지느러미에 맞는 생물이야.   인간은 되뇝니다. 인간의 침대에 걸터앉아서 인간은 목을 늘립니다. 늘어진 목과 머리는 인간의 둥근 밥상을 두리번거리며 불어터진 먼지를 쓸고 인간의 욕실까지 흘러갑니다. 흘러온 얼굴이 인간의 지느러미를 따라 흩어집니다. 인간은 아가미로 숨 쉬고 숨죽입니다.   인간의 호흡을 잃었구나, 인간.   인간의 표정이 백랍처럼 빛납니다. 인간의 어깻죽지가 납빛으로[…]

비인간적인 밤
김현 / 2011-07-30
뮤지컬 제작감독, 변숙희 님을 만나다 / 변인숙

[글틴 인터뷰 탐험 3]     뮤지컬 제작 감독, 변숙희 님을 만나다     ● 일시 : 2011. 7. 23(토) 오후 2시 ● 장소 : 여의도 국회의사당 부근 사무실 ● 참여 : 매일밤, 육십이점, 사쿠리이(이상 필명)           7월 여름방학 ‘문장 글틴 인터뷰 탐험대’의 주인공은 변숙희 뮤지컬 제작 감독이다. 제작 감독은 사전 기획부터 제작, 마케팅까지 전 과정에 관여하는 뮤지컬 종합살림꾼이다. 뮤지컬을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직업이라, 뮤지컬 계통에서 일하고자 하는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속 깊은 조언자가 될 만하다.   변숙희 제작 감독은 재학 시절 음악 작곡을 전공했고 이탈리아[…]

뮤지컬 제작감독, 변숙희 님을 만나다
변인숙 / 2011-07-29
제12회_번호키 / 비밀번호 / 강신주(철학자)

  [제12회]     번호키/비밀번호   강신주(철학자)             우리 집 현관문에는 번호키가 달려있다 세 번, 비밀번호를 잘못 누르면 가차 없이 문이 나를 거부한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지갑도 휴대폰도 없이 제대로 바깥에 갇히고 말았다   안과 밖이 전도되는 순간   열리지 않는 문은 그대로 벽이 된다         계단에 앉아있는 30분 동안   겨울이 왔다   바람은 골목을 넓히려는 듯 세차게 불고   추위를 모르는 비둘기는   연신 모이를 쪼아댄다         내 것이면서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이   어디 문뿐이겠는가  […]

제12회_번호키 / 비밀번호
강신주(철학자) / 2011-07-29
불면의 스케치 / 김중일

  불면의 스케치   김중일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아름답게 무뎌진 발톱으로 분리 수거된 비닐을 뜯자 구름과 모래가 뒤섞인 저녁이 툭 터져 나왔다. 오래 자란 수염을 태운 혹독한 냄새를 풍기며. 오랜 정전 속에서 매일 우리는 함께 모여 촛불을 불었다. 훅 태양이 한쪽으로 길고 까맣게 누운 사이, 우리 집에는 검은 모자를 뒤집어쓴 이방인처럼 어젯밤이 찾아와 뜬눈으로 묵어가고, 꺼진 줄 알았던 촛불은 되살아났다.   촛불과 촛불 사이에 놓인 침대 입술과 입술 사이에 빼문 허연 혀처럼 흘러나와 있는 단 한 조각의 미명 수북한 음모는 우리를 길 위에 그려 넣던[…]

불면의 스케치
김중일 / 2011-07-27
누구신지…… / 최민석

  2011년 《문장웹진》이 주목한 젊은작가 6인     누구신지……   최민석          1. 설렘은 익숙한 것도 낯설게 한다.(2011년)   남자는 눈을 뜨자마자, 깜짝 놀랐다. 반라의 여성이 옆에서 곤히 자고 있기 때문이다. 간밤의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내가 지금 여기 왜 있는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깨질 듯이 무거운 걸 보니, 어제 필시 기억이 절단될 만큼 술독에 빠진 것 같다. 이때, 여자가 눈을 뜬다. 드러난 자신의 가슴과 그런 자신을 보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깜짝 놀라 말을 한다. “어머. 누구세요?” 남자가 대답한다. “네. 저. 그게…… 실은 저도 제가[…]

누구신지……
최민석 / 2011-07-27
우리 집 花甁 / 이경림

  우리 집 花甁   이경림         우리 집 화병은 속이 텅 비었는데 우리 집 화병은 속이 캄캄한데   우리 집 화병은 문갑 위에 있는데 우리 집 화병은 천장 아래 있는데   우리 집 화병은 분홍 벽 옆에 있는데 우리 집 화병은 분홍 벽 뒤에 있는데   우리 집 화병은 몸이 딱딱한데 우리 집 화병은 몸이 미끌미끌한데   우리 집 화병은 회색인데 우리 집 화병은 회색 안에 분홍이고 녹색인데   우리 집 화병은 물풀 서넛에 몸이 세 동강 난 물고기 한 마리 주둥이를 허공에 치켜 두고 있는데[…]

우리 집 花甁
이경림 / 2011-07-27
몰매맞다 / 이선이

  몰매맞다   이선이         폭격 맞아 불타버렸다는 옛 절터 가는 길 솔가지 엮어 얹은 엉성한 나무다리 건너다 장대비에 찔렸다   후드득 빗방울 자진한 자리 계곡물 수선 피는지 자갈 씹는 골우레 소란한데   여윈 발목 다잡으며 아랫도리 단단히 힘주고 서서 다리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서둘러 건넌 마음 뒤돌아보니 그늘 흰 모시나비 한 쌍 떨고 있었다   젖은 연애를 모르는 체 할 수는 없어서였을까   폭우도 휩쓸 수 없는 폭격도 허물 수 없는 저 가슴 뻐근한 연민   거칠고 단단한 몽둥이를 꺼내들고 비는 늑골 속까지 두들겨[…]

몰매맞다
이선이 / 2011-07-27
속죄 / 이기성

  속죄   이기성           어쩌면 케이크를 먹고 싶구나, 달콤하고 상냥한 케이크를. 침을 흘리며 엄숙한 얼굴로 모여 있구나. 너무 커다란 입을 가졌구나. 두 손 가득 새하얀 케이크를. 그러나 밤하늘에 폭발하는 파란별이 없구나. 고백처럼 뜨거운 입술이 없구나. 무너진 지붕 아래 가난뱅이가 될 아이들이 케이크로 입을 틀어막힌 채 훌쩍거리고. 미끈거리는 손가락을 무한히 빨고 싶구나. 사르르 녹는 케이크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구나. 절벽처럼 황홀한 입을 가졌구나. 텅 빈 버스가 떠나는구나. 어쩌나 케이크는 시큼한 시체가 되었구나. 영영 이름을 잃어버렸구나. 뚱뚱한 손가락이 허공을 마구 휘젓는구나. 거대하고 창백한 케이크 속에서 너는 무릎을[…]

속죄
이기성 / 2011-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