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 민구

사자   민구           나는 종종 부엌에 들어가서 잠이 들었다   그 곳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자가 있고 굶주린 사자가 출몰하는 아궁이가 있다 우리는 잿더미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꺼내려다 그만 잠자는 사자의 꼬리를 건드려 손을 데기도 했다   여자는 부뚜막 앞에 앉아 사자의 몸에 불을 지르곤 하였다 그러면 식구들은 쥐죽은 듯 잠이 들었고 하루 종일 썰매를 타도 사자가 달궈 놓은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할 수 있었다   하루는 밀렵을 하던 이웃 마을 사내가 실종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며칠 뒤 우리 아궁이에서 발견되었다 여자는 사내의 뼈를 곱게 빻아 호박이[…]

사자
민구 / 2011-01-31
For You / 기혁

  For You   기혁           변별력 없는 작별인사를 좋아해. 윗입술과 아랫입술의 正·反·合 식사예절을 좋아해.   ‘논다’와 ‘놀고 있다’ 사이, 도마뱀을 자른 꼬리는 비로소 낙관주의를 배웠어요. 우리가 껴안았던 인형은 모두 살찐 포유동물뿐이지만, 동생(同生)을 강아지라 부르는 건 그의 미래를 믿기 때문이죠.   매일매일 바다에 투신한 강물의 사인(死因)은 심장마비, 수면을 떠받친 명료함들이 돌고래의 초음파를 듣게 된 이후부터. 그러나 당신은 흔들리는 모든 걸 사랑하고, 서로의 과녁에 대하여 한없이 원을 그리고. 그리고 입에 문 상처들을 석양의 맛이라며 내뱉어요.   당신의 보호색은 은폐보다 정곡(正鵠)에 어울리는군요. 천적처럼 몸을 부풀리는 우리의 낌새들, 구멍[…]

For You
기혁 / 2011-01-30
의미 있는 만남을 발견하라 / 함돈균(문학평론가)

  의미 있는 만남을 발견하라   함돈균(문학평론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특별한 만남’의 기회를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버마스는 ‘관심이 인식을 지배한다’고 했다. 이 글의 논지에 맞춰 쉽게 번역해 보면, 나의 관심이 세계를 발견하게 한다는 뜻이고, 이 세계에는 사람과의 만남도 포함된다.     십대라는 나이는 폭발적인 나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러하듯 그 시간을 지나는 순간에는 자신이 그러한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에서 그 시간에 대해 폭발적인 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도 지나온 다음에야 그 시간이 그러한 때인지를 알게[…]

의미 있는 만남을 발견하라
함돈균(문학평론가) / 2011-01-28
[소설 부문] 엘리펀트 / 김건태

  [2010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수상작]     엘리펀트   김건태               빠이로 향하는 픽업 버스 안에서 기사는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도착이 조금 지연될 거라고 말했다. 기사의 말에 버스 안은 작은 소란이 일었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민은 몸을 웅크린 채 모포를 턱밑까지 끌어올렸다. “조금 늦을 거래.” 민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창 너머 남국의 변덕스러운 대기는 하루에도 수없이 흐렸다 개기를 반복했고, 종내에는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처럼 많은 비를 쏟아냈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산길 위에서 한참을 헤매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떠나야 하는 건 아닐까?” 우리가[…]

[소설 부문] 엘리펀트
김건태 / 2011-01-28
/ 김록

  김록       그것을 찾으러 간 것이 그것을 잊으러 간 것 같다 들어가면 방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또 방문을 열어야 한다 열었는데 조금 전 방 안에 무엇이 있었는가, 거기에서부터 또 열고 있었다 그렇게 나가면 창문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또 창문을 열어야 한다 그렇게 들어간다       回     《문장웹진 2월호》    

김록 / 2011-01-28
[산문 부문] 바람 / 조현빈

[2010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수상작]     바람   조현빈          바람이 분다. 나무 사이로, 가지 사이로, 이파리들 사이로, 꽃이 져버린 철쭉의 무성한 초록 무덤 사이로, 벚나무 아래 낡은 벤치에 앉아 칭얼대는 아기 달래고 있는 할머니들 사이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주차장의 차들 사이로, 계단을 청소하는 아주머니와 경비원 아저씨의 실랑이 사이로, 이따금 지나가는 구름 사이로, 101동과 104동 사이로, 102동과 103동 사이로, 아주 오래된 살림살이 민망하게 드러난 아파트 공터 옆 재활용센터와 세상 모든 종이의 무덤인 고물상 사이로, 지루한 대지와 더없이 허무한 허공이 만나 부서지는 사이, 그 사이로 오늘도 바람이[…]

[산문 부문] 바람
조현빈 / 2011-01-27
[장르 부문] 아틀라스의 유언장 / 임재영

  [2010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수상작]     아틀라스의 유언장   임재영             남반구는 나에게 종종 묻곤 했다.   – 이제 어쩌죠?   정말이지, 그 질문은 언제나 나를 막막하게 한다. 나는 가장 방대한 초세포신경연산장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 질문에 맞닥뜨리면 내가 그저 사칙연산만 가능한, 그중에도 나눗셈은 조금 버거워하는 계산기 정도로 느껴진다.   인간이여. 물론 남반구라는 것은 없다. 하지만 나는 남반구라고, 나 말고 또 다른 지능을 가진 객체가 이 지구를 나와 함께 양분하고 있다는 듯 말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 인간들이 가진 언어상의 한계 때문이지 다른[…]

[장르 부문] 아틀라스의 유언장
임재영 / 2011-01-27
[시 부문] 즐거운 생일파티 / 황형선

  [2010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수상작]     즐거운 생일파티   황형선         오늘은 마을의 마지막 생일파티를 벌여요 설레는 마음에 옆집 순이가 훌쩍거리기 시작해요 집집마다 하얀 벽지 크림들이 더 누래지기 전에 어서 케이크를 차려야 해요 건너 건넛집 할배는 주름진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담아요 무언가를 그러쥐려는 손아귀처럼 옷들이 꽉 주름으로 뭉쳐 있어요 놓칠 수 없음은 저렇듯 쉽사리 주름을 풀지 않는가 봐요 언제 녹아 사라질지 모르는 초콜릿 지붕들이 퍼먹기 편하게 놓여 있네요 집집마다 꽂힌 나무들은 마을의 마지막 한 생의 초로 꽂혀 있어요 그 가닥 풀린 가지들의 심지에 저녁이 타오르기 시작해요[…]

[시 부문] 즐거운 생일파티
황형선 / 2011-01-27
문학은 이렇게 하는 거다. / 손홍규

  [작가가 읽은 책]   문학은 이렇게 하는 거다.   –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열린책들, 2010)     손홍규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방에서 보낸다. 딱히 갈 곳도 없고 나를 찾는 이도 없어서다. 책상 앞에 앉으면 되도록 고개를 들지 않는다. 고개를 들면 방이 훤히 보여서이고 그러면 답답해서다. 내 방은 감옥의 혼거방만 한 크기여서 원하든 원치 않든 내면을 들여다보기 좋다. 그러나 이따금 사람은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면서 동시에 세계와 대면하기도 한다. 글쓰기처럼 독서 역시 그런 행위다. 나는 아직 행복한 책읽기가 무언지 잘 모른다. 내게 독서는 고달픈 행위였다[…]

문학은 이렇게 하는 거다.
손홍규 / 2011-01-27
사고하지 마라, 반응하라. 창조하지 마라, 연결하라 – 세번째 / 함성호

  [에세이 테라스]   사고하지 마라, 반응하라 창조하지 마라, 연결하라   – 세 번째   함성호           이것은 에셔의 판화입니다. 제가 앞서 ‘습합’이란 말을 했는데 에셔의 판화에는 그것보다 더 복잡한 습합의 방법인 재기 순환의 논리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괴델이란 수학자에 의해서 정의된 적이 있는데, 이 재기 순환의 논리와 습합의 문제가 이토록 적절히 표현된 예는 찾기 힘들 겁니다. 여기서 흑은 백의 바탕이 되고, 백은 흑의 바탕이 됩니다. 서로가 서로의 바탕이 되면서도 각자의 고유성을 보존합니다. 저는 ‘끝난 바둑 이론’이란 명명으로 이 습합의 문제를 에셔와는 다른[…]

사고하지 마라, 반응하라. 창조하지 마라, 연결하라 - 세번째
함성호 / 2011-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