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과 사색 / 유종인

  [작가가 읽은 책]   감옥과 사색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유종인(시인)          신영복 선생은 감옥에서 글을 썼다. 그것은 편지글, 그러니까 가장 실용적인 배후를 가진 문장이지만, 거기엔 짙은 인문학적 사유와 실존의 부대낌이 배어 있다. 어찌 아니 그러할 수 있을까만, 거기엔 영어(囹圄)의 몸이 정신과 영혼에 가하는 고통의 현실을 넘어서는 사유의 길 찾기가 한 겹 더 드리워져 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갇히게 된 잡범(雜犯)들 속에서 혹은 비전향장기수 같은 시국사범이나 사형수(死刑囚) 같은 중범죄인들 속에서 그는 극명한 여러 삶의 도처(到處)들이 한데 모인 곳이 감옥임을 새삼 깨달았을 터이다. 장장 20년 20일의 복역은[…]

감옥과 사색
유종인 / 2011-12-30
목공소 안쪽 / 박성현

  목공소 안쪽   박성현         쇠가 편백을 가른다. 톱밥에 대못이 깊고 햇빛은 수직으로 떨어지며 청태(靑苔)의 바깥에서 수런거린다.   쇠를 받는 편백은 갖풀처럼 엉켜 목탄이 튀는 소리에도 숨을 멈춘다. 얼음은 물속에 있지만, 쇠는 편백 속에 없다.   조 씨는 손을 멈추고 톱밥을 뭉쳐 난로에 넣는다. 세로로 늘어선 백지의 나무들이 가끔 그림자를 흔들면서 창밖의 허공을 부른다.   편백의 누선(淚腺)이 톱밥마다 맺혀 소태 같은 길을 만드는데 저 한기는 가물 때 우는 숲의 기척이다.   조 씨는 쇠와 편백의 진폭을 가늠한다. 입속을 바람이 파고들었으며 입은 더 큰 바람을 불러댔다. 목공소[…]

목공소 안쪽
박성현 / 2011-12-30
꽃밭에서 / 최예슬

  꽃밭에서   최예슬         당신을 위해 꽃나무를 모조리 베어왔어 오늘 밤 이곳에서 파티가 열리지 나루터에 묶여 있는 염소 두 마리 둑 위를 걸어가면 피어나는 재스민 향기 근대와 권태를 구별하며 우리 모두 인상파가 되자     이상적인 현대식 가정: 캄차카에서 모스크바로 삼촌이 오고 있어 러시아어와 러시아식 유머를 몰라도 국민 투표는 참여할 수 있다네 삼촌은 여자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니지 뱅쇼를 끓이고 블랙 캐비어를 덜어 놓고 마지막 남은 은식기와 은촛대를 마른 수건으로 닦는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품이라곤 몇 점의 은붙이들 그마저도 반혁명군의 농노 선언 이후로 죄악시 되었다네   전쟁을 종결하고[…]

꽃밭에서
최예슬 / 2011-12-29
그늘이 그늘을 / 문정

  그늘이 그늘을   문정         한 모금 마실 물도 감출 곳 없다고 햇빛에 흔들리는 나목을 부축하며, 가난한 살림을 꾸려 나가는 그늘 위로 싸라기처럼 자잘한 조팝꽃 피면 조팝꽃그늘 구름보다 가벼운 산벚꽃 피면 산벚꽃그늘 수천의 수만의 눈마다 바람을 들여놓고 짧은 일생을 안타까워하는 그 그늘들의 그늘 위로 한 걸음 두 걸음 걸어 나오는 서어나무그늘 한 겹 두 겹 덮이는 층층나무그늘 바다를 생각하면 눈썹 길쭉하고 짙은 연초록그늘 하늘을 생각하면 발바닥 높고 가벼운 진초록그늘   《문장웹진 1월호》  

그늘이 그늘을
문정 / 2011-12-28
비틀린 소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 / 손현주

  [청소년 테마소설] 몸과 욕망_다섯 번째     비틀린 소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   손현주         나는 억지로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 그들은 사진을 찍고 그렇게 방을 휑하니 나갔다. 둘이 함께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베게 섶을 적셨다. 나도 그들을 따라 나서고 싶었다. 이렇게 덩그러니 혼자 남아 있는 이 시간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언제나 그들은 우르르 몰려들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톡톡톡……. 벌써 두 시간째다. 입술 주변이 마비 증세가 오는데 이제 겨우 시 하나를 끝내가고 있다. 마우스 스틱을 입에 물고 키보드를 눌러 글자를 쓰려면 목이[…]

비틀린 소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
손현주 / 2011-12-27
쉐이프시프터(shapeshifter) / 송승언

  쉐이프시프터(shapeshifter)1)   송승언           전생을 생각했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들이 과거로 유폐되고 있었다 최초의 마을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 담장을 따라 길어지는 시간의 형상을 바라보면 내가 어두워졌다 담장이 바람의 행로를 지시했기에, 계절은 나를 괴롭혔다 담장 아래 꽃이 피면 꽃이 되고 나비가 꽃에 앉으면 나비가 되라는 주문이 있어 외부를 상상할 수 없었다   나의 방은 나를 가둘 만큼 넓지 못해서 너의 방을 떠돌았다 네가 원한다면 몸을 흔들며 커튼이 되고, 테이블과 의자가 되고 너의 손에 들린 피 묻은 나이프가 되는 일 그것이 문제가 되는가 내가 있기 전부터 여기[…]

쉐이프시프터(shapeshifter)
송승언 / 2011-12-27
수선화 / 성동혁

  수선화   성동혁         1 엑스레이 기계를 안고 웃는다 의사는 모르겠지 내가 어떻게 웃는지   2 지옥은 내릴 수 없는 회전목마였다 나는 여러 번 어지러웠는데 의사는 아는 척하지 않았다   나는 내 등이 보인다   3 나는 나를 다섯 번 허물었다 그때마다 가볍고 하얀 얼굴들이 지나갔는데 모두들 반갑게 인사를 했다   4 빈방에서 나를 보지 마   5 호수를 걸어 나오는 열두 군단의 젖은 천사들 어깨에 햇빛이 묻어 있었다   집에 가는 꿈을 꾼다   6 내가 하얀색처럼 흔들린다   《문장웹진 1월호》    

수선화
성동혁 / 2011-12-27
겨울의 내계 / 김산

  겨울의 내계   김산         한 떼의 위악한 살들이 겨울의 빛을 망쳤다고 쓰겠다. 담배 연기가 죽은 구름을 위로하고 무딘 낫이 때때로 공중을 살들을 헤집었다고 쓰겠다. 그리고 한 여자 한 여자 한 여자가 눈의 빛 속으로 장엄하게 걸어 들어갔으니. 그것은 감히 신성한 일의 전조라고 차마 발설하지 못한 죄인에게 혀를 내미는 일에 불과했지만. 부러진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의 입구가 견고하게 구축되었다. 돌아오지 못한 철새(鐵鳥)들이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종소리 종소리 종소리 울렸다. 쩌렁쩌렁 공중의 길이 산탄처럼 퍼져 나갔다. 당신은 그리고 그날 비로소 죽었다고 쓰겠다. ‘이미’라는 부사 앞에서 장렬하게 산화되었다고 쓰겠다.[…]

겨울의 내계
김산 / 2011-12-27
마라도 / 김형술

  마라도   김형술         섬이 있네   바람에 바다가 마르고 눈물이 다시 바다를 메워 끊임없이 파도가 오는   섬이었네 흔들려도 눕지 못하는 나무와 남몰래 피고 지는 꽃지천인 깊은 바다 작은 영토   내 안에 아무도 찾지 못하는 섬이 있었네   이제 알겠네   《문장웹진 1월호》      

마라도
김형술 / 2011-12-24
읍소하는 남자 / 이지호

  읍소하는 남자   이지호           한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네   한 남자는 손을 맞잡고 연신 조아리고 있네     날개를 접고 지상에 내려앉은 비둘기. 아이가 먹다 흘린 과자 부스러기를 먹고 있네   흔들리는 목적이 있어야 접었다 폈다 하는 날개가 있네     간절함이 가득 묻어 있는 손   불안한 손바닥끼리 맞잡고 있네   맞잡는다는 것, 혼자서도 가능한 일이네   기울어진 중심점은 비굴함 쪽으로 기울어져 있네   상대의 열려 있는 틈으로   사내의 비굴함이 들어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네     또르르 떨어지는 나뭇잎에 펴졌던[…]

읍소하는 남자
이지호 / 2011-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