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곱창전골 / 윤진화

굿바이, 곱창전골 윤진화 선술집 곱창전골에서는 수은등과 날치알이 날아다닙니다. 수은에 중독된 등빛은 야시시한 눈으로 노려봅니다. 날치알은 바다이야기 게임에 빠져 태평양으로 갈 생각을 못합니다. 당신은 깜박깜박 음을 이탈하더니 가게 앞 전봇대 아래서 사분음표, 팔분음표 부걱부걱 게워냅니다. 술집 돌담이 당신에게 어깨를 빌려 주는 것은 낯선 풍경입니다. 웨이터 철이가 빨강 웃음, 파랑 웃음, 찢어진 웃음을 김-치로 묶은 명함 찰칵, 던지고 갑니다. 메텔과 함께 여행을 떠났던 그가 은하철도 999에서 내려 성인 나이트에 취직한 것은 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발길 떼기 두려운 당신은 다시 곱창전골에 들어가 비틀거리는 노래를 부릅니다. 피터 팬이 네버랜드에서 주워온 후크선장의 오른쪽 눈알을 팁처럼 입속에 넣어[…]

굿바이, 곱창전골
윤진화 / 2010-10-26
/ 정영

땀 정영 길은 최초의 유혹처럼 나를 집 밖으로 불러냈다산에서 강가에서 해변에서 주운 돌멩이들이주머니에서 이리저리 쓸려 다니다 어느 날 몽상의 주머니를 늘어뜨렸다  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너와 나 사이를 오가는 바람만이 진심을 통과하려 했지만 여름의 새벽은 식은 눈물보다 차가웠다 난 볼 수 없었다 은밀한 몸의 변화 돌들이 낄낄대는 소리 밤마다 몸에서 들려왔다  어느 봄 민들레 꽃씨가 날아오를 때  너를 잊으려는 노력은 망각을 불러왔다삽을 든 나는 돌이 가득 든 망각의 주머니한 무리의 영혼들이 자갈 밟는 소리 들려왔다 잘 가라는 인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뛰었다 몸속의 돌들이 치솟았다 떨어지며나는 인간의 형체에서 점점 멀어지고[…]

정영 / 2010-10-26
‘용산, 2009년 겨울’, 통증의 연금술-이영광의 「아픈 천국」(『아픈 천국』, 창비, 2010) / 오연경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보는 2010년의 명장면들 ‘용산, 2009년 겨울’, 통증의 연금술 – 이영광의 「아픈 천국」(『아픈 천국』, 창비, 2010) – 오연경 – 「서울, 1964년 겨울」이 ‘용산, 2009년 겨울’로 악몽처럼 되돌아왔다. 여관방 너머의 벽이 공권력의 바리케이드로 바뀐 채. 죽음은 숭고와 애도의 영역 바깥으로 추방되었다. 검은 아스팔트에 그려진 사고의 흔적처럼 명백한 그것은 매일 지나다니는 우리의 발밑에 감금되었다. 죽음의 소식만이 취업과 입시를 위한 ‘최신 이슈’로 갈무리되어 실업 탈출용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2010년, 죽음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 죽음의 성지에 얼굴을 묻은 채 “숨 멈추고, 검은 젖을 깊이”(「검은 젖」) 빨고 있는 시인이 있다. 첫 번째 시집에서 “세상에는[…]

‘용산, 2009년 겨울’, 통증의 연금술-이영광의 「아픈 천국」(『아픈 천국』, 창비, 2010)
오연경 / 2010-10-23
피로의 종말론 – 박민규, 「끝까지 이럴래?」 / 조효원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읽는 2010년 명장면들 피로의 종말론 – 박민규, 「끝까지 이럴래?」(『끝까지 이럴래?』, 한겨레문학상 수상작품집, 2010) – 조효원 – 종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누적된 피로의 결과에 다름 아니다. 처음에는 그저 발가락이 간지러운 느낌에 불과하던 피로가 조금 조금씩 시나브로 몸을 점령해 들어와 종내 눈알을 굴릴 만한 한 방울 힘조차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종말이라 부를 수 있다. 힘이 없어서 눈알조차 굴릴 수 없다면, 그건 정말이지 ‘끝장’ 아닌가? 하므로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전투는 결국 피로와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삶이 끝으로서의 죽음을 유예하기 위한 활동의 총합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난감한 사실은, 우리는[…]

피로의 종말론 - 박민규, 「끝까지 이럴래?」
조효원 / 2010-10-22
우연의 마주침, 그리고 이야기 – 윤성희 장편소설 『구경꾼』 / 정홍수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읽는 2010년의 명장면들 우연의 마주침, 그리고 이야기 – 윤성희 장편소설 『구경꾼들』(문학동네, 2010) – 정홍수 – 윤성희의 소설적 상상은 인간사의 사소한 길목에서 이야기를 찾고 발명하는 데 능하다. 대개의 소설에서라면 그런 길목은 더 긴요하게들 여겨지는 이야기의 대로를 따라 전진하느라 눈길이 닿기 힘든 곳이기도 한데, 이야기의 전진에 무심한 만큼 윤성희의 소설은 이야기의 크기와 우열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윤성희의 소설적 상상이 인물의 도덕적 우열을 가르는 쪽으로 향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윤성희의 소설에 갈등하고 다투는 인물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싸움의 내용은 전혀 거창한 것이 아닐뿐더러 거기서 도덕의[…]

우연의 마주침, 그리고 이야기 - 윤성희 장편소설 『구경꾼』
정홍수 / 2010-10-22
손가락을 세워라 / 박혜상

손가락을 세워라 박혜상    해질녘부터 Y는 입술을 쥐어뜯으며 거실을 서성거렸다. 어둠이 번지기 시작하자 Y는 불을 켜는 대신 베란다로 나갔다. Y의 아파트는 외계의 빛들로 얼룩덜룩했다.  이따금 텔레비전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Y와 나의 대치 상태를 일깨워 주는 조명탄 같았다. 나도 개그맨들과 함께 얼룩덜룩 웃었다.   나는 Y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모른 척 텔레비전과 함께 시시덕거렸다. 방을 내놓았다고 지나가듯 흘린 내 말이 마음에 걸린 것이 분명했다. 처분을 기다리는 것은 나였지만 나로서는 외려 홀가분했다. 나는 Y의 답을 예상하고 있었다.       콜드 캐소드(Cold Cathode). 나는 계속 입에서 맴돌던 조명 이름을 생각해 냈다.[…]

손가락을 세워라
박혜상 / 2010-10-22
우리들의 마감시간 / 김지숙

우리들의 마감시간 김지숙    우리가 자체적으로 정한 마감시간은 새벽 두 시였다. 시계는 이미 새벽 두 시 이십 분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마감시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각자의 모니터를 바라볼 뿐이었다. 가끔씩 타닥, 하고 자판 치는 소리가 났지만 이내 멈추었다. 작고 밀폐된 사무실은 더웠다. 사무실에는 어느새 우리 셋만 남아 있었다. 매기, 그늘, 그리고 나. 다른 직원들은 자정을 기점으로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다. – 이왕 갈 거 차 끊기기 전에 가야겠다, 너희도 괜한 고생 말고 가라.마지막 남았던 ‘태’ 선배마저 어깨를 늘어뜨린 채 잡지사 밖으로 나간 뒤, 우리는 고민했다. 갈 것인가, 말[…]

우리들의 마감시간
김지숙 / 2010-10-22
고백 / 진은영

고백 진은영   내 죄를 대신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내 병을 대신 앓고 있는 병자들에 대해한없이 맑은 날 나 대신 창문에서 뛰어내리거나알약 한 통을 모두 삼켜 버린 사람들에 대해  나의 가득한 입맞춤을 대신하는 가을 벤치의 연인들나 대신 식물원 화단의 빨간 석류를 따고 있는 아이의 불안한 기쁨과, 나 대신 구불구불한 동물내장을 가르는 칼처럼 강, 거리, 언덕을  불어 가는 핏빛 바람에 대해 할 말이 있다   달콤한 술 향기의 전언을빈틈없이 틀어막는 코르크 마개의 단호함과 확신에 대해수음처럼 또다시 은밀해지려는 나의 슬픔에 대해 할 말이……  나 대신 이 세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희망하는 이들과나 대신 어두워지려는 저녁 하늘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검은 묘비들  나 대신 울고 있는 어머니에 대하여  《문장웹진 11월호》    

고백
진은영 / 2010-10-22
윤회(輪廻)의 詩를 적다 / 이만섭

윤회(輪廻)의 詩를 적다   이만섭         한 뼘 너비로 재는 길이인들 두 팔 너비로 재는 길이인들 그것들이 모여 해와 달처럼 둥글어질 수 있다면,    둥글고 또 둥글어져, 설령 묵정밭에 날아온 콩새가 까먹는 이름 모를 풀씨 한 알갱이라 해도, 그도 아닌 풀잎에 한 방울 이슬로 피어 아침 햇살과 더불어 사라진다 해도 둥글어 닿는 아름다움일 수만 있다면,    밤하늘을 열어젖히고 별이 태어나 어둠 속 꿈을 밝힐 때 더불어 환해지는 지상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죽은 시가 별로 태어난다면별이 죽어 시로 태어나는 일과 무엇이 다를까, 유성이 진 곳에 화석이 피듯 시가 죽어 지상의 뭇 생명들[…]

윤회(輪廻)의 詩를 적다
이만섭 / 2010-10-22
조막손 / 위선환

조막손 위선환   나날이 빠르게 저무는 무렵이다 잠깐은, 손등에 덮이는 어스름을 내려다보았다    흐르는 어둠과 어두워져서 멎은 어둠 사이에서 잠깐은, 머뭇거리는 손이 보였다 하루내 손바닥이 식었다 잠깐은, 손가락들이 곱았고 오그라들더니 끝내 굳었다  굳은 손을 들어 굳은 손에다 얹었다 잠깐은, 손에 손이 부딪쳤다 돌덩이 같았다 지나갔고 또 오는 것을 가리키며 잠깐은, 누가 손짓을 했고 곧 말없이 돌아섰고   손짓을 읽다가 잠깐은, 먼 뒷모습을 읽다가 뒤늦게야 치켜든 손의 힘든 무게를   아직 흐르는 어둠과 이미 멎은 어둠 사이에 걸쳐진 공중의 선반에 올려 놓는다   《문장웹진 11월호》

조막손
위선환 / 2010-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