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성보다는 다성성으로서의 장편소설-박형서, 『새벽의 나나』(문학과지성사, 2010) / 이수형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보는 2010년 명장면들 총체성보다는 다성성으로서의 장편소설 – 박형서, 『새벽의 나나』(문학과지성사, 2010) 이수형 아주 새로운 테제는 아니지만, 몇 년 전부터 다시 호출되기 시작한 장편소설 대망론이 낳은 성과는 무엇일까? 최근 몇 년 사이에 잡지는 물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문학 매체에 연재되었거나 연재 중인 장편소설의 수효를 따진다면 아무튼 양적으로는 눈에 띌 만한 성장을 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 결과 장편소설의 시대가 도래했다거나 혹은 아직 황금기에 이르지는 못했을지언정 장편소설 대망론이 말 그대로 대망했던 완미한 단계에 이르는 과정이 목도된다거나 하는 식의 낙관적인 진단이나 전망을 하기에는 왠지 자신감이 부족한 형편인 것도 사실인[…]

총체성보다는 다성성으로서의 장편소설-박형서, 『새벽의 나나』(문학과지성사, 2010)
이수형 / 2010-10-31
어떤 시들은 상처를 요구한다-최치언, 『어떤 선물은 피를 요구한다』(문학과지성사, 2010) / 장은정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보는 2010년 명장면들   어떤 시들은 상처를 요구한다 – 최치언, 『어떤 선물은 피를 요구한다』(문학과지성사, 2010) 장은정  멍들고 살갗이 찢어져 피를 흘리며 울고 있는 아이에게 지나가던 한 어른이 다정하게 일러 준다. 간절히 바라기만 한다면, 신은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어 준단다. 그날 밤, 아이는 불 꺼진 교회로 조용히 숨어든다.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 보는 기도는 이것이다. 그들을 모두 죽여 주세요. 아이에게는 살인만이 유일하게 간절한 바람이었으리라. 최치언의 두 번째 시집 『어떤 선물은 피를 요구한다』는 이러한 최초의 기도를 닮아 있다. 그러니 가까스로 도달하는 화해나 위안이 주는 온기와 같은 것은 이 시집과[…]

어떤 시들은 상처를 요구한다-최치언, 『어떤 선물은 피를 요구한다』(문학과지성사, 2010)
장은정 / 2010-10-31
죄와 피의 보편성-편혜영, 『재와 빨강』(창비, 2010) / 조형래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보는 2010년 명장면들 죄와 피의 보편성 – 편혜영의 『재와 빨강』(창비, 2010) 조형래 『재와 빨강』의 주인공은 불운했다. 그는 본래 전염병과 지진이 내습한 C국에 있지 않아도 될 인간이었다. 그가 C국에서의 재앙과 직면하게 된 데는 그 어떤 합리적인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파견은 남들보다 쥐를 잘 잡는다는, 말도 안 되는 근거에서 결정된 것이었으며 후에 밝혀지듯이 그의 파견 자체 역시 전적으로 본사 담당자의 실수에 의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C국에서 그가 막다른 처지에 내몰리게 되는 것 또한 예기치 않은 불운의 연속 탓이다. 이를테면 그는 감염 여부가 불분명한데도 억류되어 본사에 정상적으로 출근하지 못할뿐더러[…]

죄와 피의 보편성-편혜영, 『재와 빨강』(창비, 2010)
조형래 / 2010-10-31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밤 / 김성규

[작가가 읽은 책]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밤 김성규 우리의 내부를 외부와 차단하기 위해선노래가 없는 것으로충분하다.   – 기유빅 ‘시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너무나 많은 내용과 방법을 동원해 설명해야 하는 질문이지만 동시에 어떤 말로도 풀 수 없는 화두이기도 하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의 가슴 속에 묻혀 있을 것이다. 그것을 꺼내 세상에 내보일 때, 언어를 통해 입술에서 발음될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해답은 공중에서 사라져 버린다. 마치 햇볕에 타버린 필름처럼 형상은 사라지고 알 수 없는 적막과 암흑만 남는 것이다. 어쩌면 시는 말할 수 없는 그 암흑과 적막의[…]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밤
김성규 / 2010-10-30
진실은 어떻게 드러나는가-한강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사, 2010) / 이선우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보는 2010년 명장면들 진실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한강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사, 2010)   이선우 한강의 자리는 독특한 데가 있다. 등단 17년, 어느덧 중견작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한 시간이 흘렀고 작품이 쌓였다. 문학을 한다는 사람은 누구나 알 만한 이름이 되었고, 굵직한 문학상도 몇 차례 거머쥐었다. 최근에는 동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녀는 한 번도 문단의 중심이었던 적이 없다. 그렇다고 주변부였다고 말하기도 곤란하다. 중심이 되기에는 시류를 너무 타지 않았고 주변부가 되기에는 소설을 너무 잘 썼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단순한가? 이 세계의 폭력을 온통 자신의 것으로[…]

진실은 어떻게 드러나는가-한강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사, 2010)
이선우 / 2010-10-30
웅덩이 / 윤성희

웅덩이 윤성희         1 그녀의 어머니는 쉰여섯 번째 생일을 병원에서 보냈다. 당뇨 합병증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어머니에게 그녀는 차마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 사과 색깔 좀 보세요. 참 붉죠?” 그녀는 사과 두 알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어머니는 잠을 자는 척하고 싶었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낡은 연립을 오르내리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삼층을 오르다 말고 계단에 주저앉았다. 302호에는 치매에 걸린 노파가 살고 있었다. 그래도 그 할머니는 걸을 수 있잖아. 무엇보다 어머니는 202호에 사는 젊은 부부에게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현관문[…]

웅덩이
윤성희 / 2010-10-29
연기의 도시 / 이영훈

연기의 도시 이영훈    연기가 도시를 덮친 후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봄이 지나갈 무렵 강원도의 작은 산에서 불이 일어났다. 불은 산에서 산으로 움직이며 풀과 나무를 태웠다. 사람들은 불길을 잡아 보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몇 차례 비가 지나간 다음에야 불은 꺼졌다. 불이 지나간 자리는 처참했다. 풀들은 재가 되어 흙 속에 묻혔고 나무들은 검은 뼈대만 남았다.연기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초여름의 일이었다. 그 날 아침 사람들은 평소보다 공기가 무겁고 시야가 뿌옇다는 것을 알았다. 도시는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하얀 기체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사물은 모두 흐리게 보였고 어디서나 매캐한 냄새가 났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사람들은[…]

연기의 도시
이영훈 / 2010-10-29
자매들 / 김상혁

자매들 김상혁 1. 오빠가 남긴 건 자두빛 문틈이다 방문객들 앞에서 하필 그의 머리는 향기로운 복도를 구르고 있었다  2. 밤이 오면 누군가는 배를 묶어야 하고 마구간 자물쇠를 당겨 보아야 한다 갑작스러운 비명을 듣는 게 무섭지만 날카로운 곡괭이를 들고 나가 어둠 속에서 땅을 찍는다 담배 불빛들이 사방에서 반짝인다 호수 위로 뒤집힌 오리가 떠오를 때마다식탁은 온통 그런 요리로 가득하지  집안으로 이어지는 행렬은 아들딸들의 옷을 벗기고 모든 방에서 창을 닦기 시작했다그런 시간에도 배를 미는 사람 가축을 먹이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며 흙을 덮어야 한다권총을 찬 거구들이 오빠의 복도에서 앞구르기를 하는 동안에도엄격한 양육법은 투명한[…]

자매들
김상혁 / 2010-10-28
F. 카프카 : 음치의 음악 혹은 미지의 음식 / 김진영

[음악의 순간과 언어의 떨림] F. 카프카 : 음치의 음악 혹은 미지의 음식 김진영 아노렉시아(Anorexia), 작자 미상 지난 주 일기에는 이렇게 썼다: “말이 줄어든다. 입맛이 떨어진다. 내 안의 무언가가 입을 닫기 시작했다.” 멜랑콜리에 빠지면 P는 걸신이 들어 살이 찐다지만 나는 먹기가 싫어진다. 거식증에 빠진다. 그 무엇인가가 내 안에서 입을 닫고 모든 음식을 거부한다. 그러면서 음악을 들으며 잠드는 습벽이 다시 시작된다. 물론 그건 다분히 불면에의 두려움 때문이다. 긴 밤을 뒤척이는 황량함 대신 멜로디에 실려서 몰래 잠들고 싶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잠들기 전에는 오래 된 카세트를 적당한 거리에 두고(이 적당한 거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F. 카프카 : 음치의 음악 혹은 미지의 음식
김진영 / 2010-10-26
이토록 감각적이고 정치적인 / 정영훈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보는 2010년 명장면들 이토록 감각적이고 정치적인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민음사, 2010) – 정영훈 – 첫 번째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문학동네, 2008)가 나온 이후의 황정은 소설 가운데 나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목요일, 나비」(『현대문학』, 2009. 1)였다. 그것은 이 소설이 등단 초기에 보여주었던 어두운 세계를 이후에 마련된 그녀 특유의 스타일로 그려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정은식’ 스타일이 초기 소설의 어두운 세계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이 둘을 미학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경지에 이른 것이 이 소설이라 여겨졌던 것이다. 여기에다, 무심하게 이어진 짧은 문장들과 ‘시계수리공’(주인공의 아버지)이라는 말이 환기시키는 어떤 느낌이 더해져 나는 자연스레 저 유명한[…]

이토록 감각적이고 정치적인
정영훈 / 2010-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