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도 장편공모 수상작가들과 함께 / 고봉준 외

[기획 특집 좌담] 2010년 장편공모 당선 작가들과 함께  ◆ 일시_ 2010. 9. 9(목) 16:00~18:00 ◆ 장소_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회의실 ◆ 진행_ 고봉준(문학평론가, 문장 《웹진》 편집위원)  ◆ 참여작가 _ 김기홍, 『피리 부는 사나이』(문학동네)_ 제15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 _ 김혜나, 『제리』(민음사)_ 2010 오늘의 작가상 수상 _ 문진영, 『담배 한 개비의 시간』(창비)_ 제3회 창비 장편소설상 수상 _ 박솔뫼, 『을』(자음과 모음),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 _ 최진영,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한겨레출판)_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 고봉준 – 반갑습니다. 먼저, 늦었지만 다섯 분의 등단과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오늘 좌담은 최근에 장편 공모로 등단한[…]

2010년도 장편공모 수상작가들과 함께
고봉준 외 / 2010-09-30
돼지들 / 한세정

돼지들 한세정 내겐 몸을 움직일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야그러니까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관망하지 말 것당신이 날 기억하지 못한 건 오후의 일기가 나빴기 때문이었어당신의 눈동자에내 몸이 갇힐 때면나는 바닥에 배를 대고오지 않는 잠을 청했어그러니까 처음부터 내 몸을 채운 건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이었어이젠 당신의 눈이 깜박일 때마다리드미컬하게 꼬리를 움직일 거야안녕, 기분 좋게 말린 나의 작은 꼬리당신이 만든 한 권의 책 텅 빈 우리들의 주머니  《문장웹진 10월호》

돼지들
한세정 / 2010-09-27
더덕네 집 / 박성우

더덕네 집 박성우  참, 단출한 집이다 뽕나무 기둥 네 개 위에닥나무 가지 둘 건너지르고 대막대기 서까래를 얼기설기 올린 집이다 보증금도 월세도 없는 집,그냥저냥 짐을 풀던 더덕이하늘하늘 지붕을 올린 집이다 볕은 마침맞게 들이고비는 마침맞게 막아 주는 처마, 아래로 꽃등을 내어 건 집이다 내놓을 만한 살림살이 없어도사는 냄새 코끝 찡한 집이어서 왁자글왁자글 더덕 식구가 느는 집이다  《문장웹진 10월호》

더덕네 집
박성우 / 2010-09-27
언덕배기 소나무 / 박형권

언덕배기 소나무 박형권 천 년을 걸고                소나무가 가고 있다소나무의 아이들이 한 걸음 가고아이들의 아이들이 또 한 걸음 가고소의 걸음으로가고 있다물푸레나무가 물을 길어 주면한 모금 마시고 가고 있다어떨 때는 한 오백 년쯤 그윽해졌다가땔감이 되었다가집이 되었다가팔만대장경이 되었다가 멈춘 듯하여서 보면 가고 있고가는 듯하여서 보면 멈추어 있다나의 초여름, 마을 앞 언덕배기의 해송이가면서 한 번씩 사람 사는 마을을 보아 주었다가다가                              나를 만나면그냥 백 년만 바라봐 주었다백 년 그것아침인사 드리기에도 짧은 순간이지만천 년인 듯 나를 바라봐 주었다소나무에게 나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문장웹진 10월호》 *공즉시색(空卽是色): 집착 없는 눈으로 보았을 때 모든 것이 저마다 작동하여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언덕배기 소나무
박형권 / 2010-09-27
물그림 엄마 / 한지혜

물그림 엄마 한지혜    엄마는 극장에서 죽었다. 객석에 앉은 채로 발견되었다. 영화를 보다가 지루했는지 재미있었는지 웃었는지 울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호흡이 멎었다. 그 날 상영된 영화는 <안개 속의 풍경>이었다. 예술영화였고 관객이 많지 않았다. 엄마가 앉은 자리는 스크린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맨 앞자리였다. 굳이 그 자리에 앉기 위해 엄마에게 일어나 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므로 엄마가 언제 그 자리에 앉았고, 언제 죽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엄마가 영화를 보기는 했을까. 그 날 상영된 영화는 엄마가 절대 보지 않을 영화도 아니었지만, 엄마가 일부러 볼 만한 영화도 아니었다. 때문에 장례를[…]

물그림 엄마
한지혜 / 2010-09-26
결말 / 조말선

결말 조말선 테이블 위에 한 접시 요리가 올라오자영화가 끝났다사람들이 둘러앉아 요리를 먹는다결말이 어제 오늘 내일로 찢어진다결말이 그와 그녀와 그들로 찢어진다결말이 비극과 희극과 희비극으로 찢어진다결말이 있기 전까지 침묵하던 사람들이한마디씩 소감을 피력하는 동안한 접시 요리가 훼손된다이 영화는 결말이 문제야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으며투덜거리는 사람들 속으로다양한 결말이 쏟아진다한 사람은 담배연기로한 사람은 트림으로한 사람은 새로운 요리법으로결말이 나야영화는 이어진다  《문장웹진 10월호》

결말
조말선 / 2010-09-23
[읻다] / 윤해서

                          [읻다] 윤해서        그러니까.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날.    낯선 병명처럼.     어디선가 흙먼지가 날아왔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무덤가에서 검정 갈대가 바람에 흔들렸다.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편도 나무에서 목젖이 자라기 시작했다. 삶의 목적이란. 목젖 같은 것이다. 만질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의미 없는 문장들은 빗줄기처럼 이어진다. 서로가 서로의 입을 막으면서. 키가 다른 검정 우산과 흰 우산이 나란히 버려지기도 하는 것처럼. 어제 안 사실이지만. 멜 깁슨은 멜론을 제일 좋아하고. 아나마나한 어떤 사실들은 키위 주스 속에 들어있는 키. 위. 씨. 처. 럼.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 아무려나.[…]

[읻다]
윤해서 / 2010-09-23
세이렌의 노래 혹은 뮤지카 멜랑콜리아 / 김진영

[음악의 순간과 언어의 떨림] 세이렌의 노래 혹은 뮤지카 멜랑콜리아 김진영 늦은 밤 돌아와서 음악을 듣는다(조금 취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아리아 부분(특히 다 카포 파트) 혹은 브람스의 인터메조. 책상에 앉아서 또는 침대에 누워서 나는 마음이 ‘흔들린다’. 그런데 나는 내 마음이 왜 흔들리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건,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 내가 지금 어떤 특별한 감정 상태(신체 상태) 안에 들어 있다는 사실뿐이다. 하지만 모호하고 불확실해서 곤혹스러운 감정의 상태와는 다르게, 두 가지 사실은 오히려 내게 자명하다. 하나는, 음악이 건드려서 뜻없이 일어난 특별한  마음의 상태를 나는 그 어떤[…]

세이렌의 노래 혹은 뮤지카 멜랑콜리아
김진영 / 2010-09-23
익숙하지만 매우 낯선, 그들의 소설 / 박성원

[작가가 읽은 책] 익숙하지만 매우 낯선, 그들의 소설 박성원 김언수의 『설계자들』은 익숙하지만 새롭다. 조준경이 달린 7?26구경 소총으로 암살을 하고, 홍콩 무협영화에 나오는 자객들처럼 식칼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미국 영화에 나오는 특수부대원처럼 전투용 대검을 휘두른다. 우리나라 현실에선 보긴 힘든 ‘킬러’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익숙하게 보이는 까닭은 언제부터인가 우리들 일상에 킬러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수많은 영화를 통해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새롭다.  “웃기고 자빠졌네. 그런 건 요즘엔 만화영화에도 안 나와.”   (『설계자들』, p.299)  이 문장은 주인공 ‘래생’과 설계자인 ‘미토’가 나누는 대화다. 그렇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늘 새로운 이유는 익숙함이라고[…]

익숙하지만 매우 낯선, 그들의 소설
박성원 / 2010-09-23